너무 많은 걸 알게 된 소녀. <미성년>의 주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고등학교 시절에 충격적인 어른들의 사정을 알게 된다. 한없이 사랑받고 싶을 나이에 어른 중 누구를 믿고 사랑해야 할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는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출연한 영화 <봄이가도>(2017)나 드라마 <최고의 이혼>(2018)에서 맡았던 역할도 대부분 현실을 버티지 못하는 어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였다. 아직은 현장이 낯설고, 보이는 모든 걸 배워나가야 하는 막내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작품에서 미리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 삶을 배우고 그것을 다시 연기로 보여주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나 할까. <미성년>의 주리를 연기하면서 김혜준은 한뼘 더 어른에 가까워졌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1차 서류심사 오디션과 2차 카메라 오디션을 거친 뒤 감독님과 3차로 일대일 심층면접을 보기 전에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다. 이야기가 뜨거웠다고 해야 할까? 명치 끝을 때리듯이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고 꼭 출연하고 싶었다.
-주리가 아빠(김윤석)와 윤아(박세진)의 엄마 미희(김소진)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어른들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주리의 심정은 어땠을 거라 상상하며 연기했나.
=주리는 안정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일상이 깨지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밉지만 한편으로 이 상황을 엄마가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주리가 처한 상황이나 그의 생각이 무엇 하나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찍을 때도 복잡했다.
-영화에서 주리와 윤아의 관계가 건강하게 묘사된다. 서로 이해하며 서서히 물들어가는 모습을 연기하는 동안 실제 두 배우의 관계는 어떠했나.
=사실 둘 다 연기에 미숙하고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박)세진이와 연기한 장면에선 서로 잘하자며 격려했다.
-촬영 전에 만나 어떤 연습을 했나.
=촬영 들어가기 한달 전부터 감독님과 셋이 거의 매일 만나 연습했다. 리딩도 해보고 장면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다른 어떤 작품 할 때보다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대사도 우리가 생각하는 주리와 윤아에 맞춰서 수정하기도 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장면인데, 복도에서 윤아와 싸우는 장면이 격렬하고 굉장히 사실적이다. 실제로 격렬한 싸움으로 묘사돼 있었나.
=감독님이 죽기 살기로 싸웠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화가 너무 나서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드는 느낌을 만들어달라고 하셨다. 영화를 보면 정말 극렬하게 싸운다. 머리도 진짜 많이 뜯겼다. 진짜로 잡아당겼으니까. (웃음) 한달 정도 액션스쿨 다니면서 연습한 장면이다. 체력단련부터 동선대로 싸우는 동작의 합을 계속 연습해서 만들어냈다.
-<미성년>을 촬영하는 동안 주리로 살면서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극중 윤아가 힘들다며 모든 걸 내려놓으려는 순간이 있는 반면, 주리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모든 상황을 본인이 안고 가려고 한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야 할까. 영화 내내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 없다 보니 찍는 동안 마음에 눌러담아야 하는 게 힘들었다. 촬영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야 주리의 외롭고 답답한 상황이 전해져 감정이 터지더라.
-박세진 배우와의 호흡뿐만 아니라 선배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들의 연기를 직접 보니 진짜 날것으로 연기한다는 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감독님의 디렉션에 어긋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종종 꾸며낼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선배들은 모든 장면에서 대사 한마디에 진심을 담고 연기하시더라. 그래서 부끄러웠고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다.
-배우 김혜준은 주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미성년>을 찍는 내내 10대의 마음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말하면 호들갑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배우 김혜준이 다시 쓰일 수 있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