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미성년> 김윤석 - 연기를 아는 감독
2019-04-08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배우 김윤석’보다 ‘감독 김윤석’과의 작업이 더 좋았다. (웃음)” <미성년> 스탭의 농담 섞인 증언을 접했다. 30년간 배우의 내공으로, 현장에서도 자신의 배역뿐 아니라 영화 전체의 판을 읽고 감독들과 교류해온 까닭에 ‘현장의 감독’으로 수식되어온 배우 김윤석. 처음 현장의 메가폰을 잡은 그는 컷 하나하나에, 배우, 스탭 등 현장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를 모두 돌아보는 세심한 연출자였다. 그렇게 한국영화계가 다채로운 재능을 지닌 신인감독 하나를 새로이 얻었다.

-기술 시사까지 끝냈으니 한시름 놨겠다. 영화의 완성까지 불면으로 지새운 날이 많았겠다. (웃음)

=현장을 온전히 안고 가야 하니 준비가 안 되면 잠이 안 오더라. 머릿속에 계속 컷 연결할 것만 생각나고. 그런데 그게 고통스럽지 않고 재밌었다. 끝까지 고치고 또 고치니 편집감독님이 혀를 내두르시더라. 나홍진 감독 이래로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웃음)

-‘연출’을 하게 되면서 발견한 특성인가.

=연극할 때부터 그랬다. 사부가 김민기 선생님(극단 학전 대표)이잖나. 그분이 워낙 끝까지 디벨롭시키는 분이다. 옆에서 보며 나도 훈련이 된 거다. 그러니 나는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쯤하면 됐겠지 하는 순간 내가 뒤집고 또 뒤집고 하니 달리 보였을 거다.

-완성된 영화는 예상 밖이자, 최근 충무로에서 접하기 힘든 탄탄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한편으론 반갑더라.

=무슨 영화를 상상했기에(웃음)…. 친한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이런 작품을 할 줄 알고 있었을 거다.

-배우 김윤석이 특화된 스릴러적 장르들과는 다르다. 한국영화가 가진 센 장르, 남성 서사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로서 그걸 환기하려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다들 나를 마초 기질의 사람이라 생각하니 ‘진짜를 보여주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40살이 넘어서이지만 23살 때부터 계속 연극을 해왔고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전체를 디렉팅하는 과정에 익숙하다. 언젠가는 연출을 하려 했고 그땐 배우의 연기력과 드라마로 온전히 채워지는 작품을 만들겠다 다짐했었다.

-그 ‘언젠가’의 타이밍이 왜 지금이었나.

=더 늦으면 나이를 점점 먹게 되고. (웃음) <미성년>이 1번 주자가 된 것뿐 사실 준비한 아이템이 많다. 내 노트북을 보면 정말 끔찍하다. (웃음) 항상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작업 중인 작품의) 촬영이 없는 날은 늘 썼다.

-연출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하지 않던가.

=당연히 안 말리지. 누가 날 말려. (웃음) 농담이고. <황해> 끝나고 하정우씨랑 서로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정우씨가, 형님 먼저 하라고 했는데, 그사이 정우씨는 벌써 두 작품(<롤러코스터> <허삼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저예산으로 계획했는데 용케 염정아씨, 김소진씨가 시나리오를 보더니 흔쾌히 참여한다고 하면서 상업영화 틀이 갖춰졌다.

-영화의 원작인 연극에서 출발한다.

=젊은 연극인들이 조그만 공간을 빌려 창작극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5작품 정도를 올렸는데 그중 하나였다. 원작은 주리와 윤아 같은 아이들이 극의 70%정도를 차지하고 잠깐잠깐 등장하는 부모는 아이들의 시각으로 희화화된다. 또, 원작의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아이였는데 성별을 모두 여학생으로 바꾸고, 어른의 비중을 늘렸다. 한 사건을 통해 성숙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 상태에서 내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사람, 남이 해결해주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사람 등 다양한 ‘미성년’의 모습을 녹여내고자 했다.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 각자의 성장 드라마다.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를 많이 떠올렸다. 중년이 되어서도 삶은 점점 가치가 없어지고, 유혹에 잘 빠지고, 그게 또 무감각해지고.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 남자와 현실을 직면한 여성의 이야기가 밀도 있게 펼쳐지는 영화다. 중년의 고민이 담긴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베테랑 배우인 염정아도 촬영 첫날, ‘감독 김윤석’과의 작업에 긴장됐다고 할 정도로 연기하는 배우가 발견하는 배우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 염정아, 김소진의 또 다른 얼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할리 베리 같은 배우들을 보면서 목마름이 있었다. 한국의 중견 여배우들이 정말 멋있다.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배역을 주면 굉장한 연기가 나오는데 자꾸 장르영화 안에서 타입캐스팅만 주어진다. 이들이 가진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카메라 안에서 그 보석 같은 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달라고 했고, 이런 것들이 배우들에게 재밌는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둘이 만나는 장면에서 현장엔 정말 불꽃이 튀었다. (웃음)

-두 가정을 혼란에 빠트린 대원(김윤석)의 묘사와 그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했다.

=대원을 어떤 인물로 그릴지 딜레마였다. 사건이 밝혀진 후 대원을 두 가족 사이에 위치시키니 극이 가지를 않더라. 변명밖에 대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인물을 안타고니스트(악당)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럼 내가 생각한 드라마에서 멀어질 게 뻔하고 익숙한 불륜 드라마가 되겠더라. 대원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려 했다. ‘대원’이라는 이름도 평범하게 군부대나 집단의 구성원에서 따왔고, 익명성을 가지기 위해 꼭 필요한 클로즈업 컷을 빼고는 옆모습과 뒷모습만 잡았다. 그래서 일단 누군가가 보더라도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내가 감독하고 쓰는 영화에 단순히 소비되는, 야비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연출자로서 포지션을 잡은 이상 대원을 직접 연기하지 않으려 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안 하려고 했다. (웃음) 그런데 이 배역이 다섯 캐릭터 중 알게 모르게 긴장을 조절해야 하는 역할이다. 비중은 적지만 네 배우에게 긴장의 공을 패스해줘야 하는데 다른 배우에게 그 역할만 하라고 하기가 좀 그렇더라. 그리고 익명의 연기인데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하면 캐릭터가 너무 도드라져 보일 우려도 있었다.

-데뷔작을 끝냈는데, 차기작도 궁금하다.

=알려진 배우로 30년 가까이 영화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내가 영화를 만들면 관객이 안심하면서 보는 작품을 내놓고 싶었다.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를 떠나 안심이 되는 작품을 위해 정면 돌파하고 싶었고, 좋아하든 싫어하든 ‘저는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웃음)

-다음 연출작이 벌써 기다려지는 신인감독과의 만남이라 반갑다. 노트북의 그 많은 아이디어가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겠다.

=이러면 괴로워지는 거야. (웃음) 만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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