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미성년> 박세진 - 처음이지만, 질 수는 없으니까
2019-04-08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처음 보는 얼굴, 4차까지 이어진 500 대 2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해 데뷔할 기회를 얻은 모델 출신 배우. <미성년>에서 반항기 넘치는 태도 아래 외롭고 여린 마음을 숨겨둔 소녀 윤아를 연기한 박세진의 존재감을 묘사하기에 앞선 수식어들은 사뭇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부모간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18살 윤아와 주리(김혜준)가 학교 옥상에서 얄궂게 서로의 마음을 할퀼 때, 다짜고짜 주리에게 입을 맞추고 “너 같으면 이게 없었던 일이 되겠냐?”라고 고함치는 윤아의 시원한 기백이야말로 박세진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여러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프로필 사진 속 박세진은 모델답게 또래보다 부쩍 세련되고 다듬어진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실제로 기자가 만난 그녀는 꾸밈없이 솔직한 기운이 생생한 사람이었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오랜 고민 끝에 다져진 구체적인 생각이 막힘없이 쏟아져 나왔다. 표지 촬영현장을 전하는 <씨네21>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 김윤석 감독은 박세진을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단단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 인터뷰 말미 즈음 어쩐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배우의 데뷔작에는 그 사람이 가진 본연의 성향이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미성년>의 윤아와 배우 박세진 사이에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첫인상이 차갑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낯을 많이 가리는데, 내 속마음을 얼마나 보여줘야 하는지 상대에게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윤아도 겉보기엔 세고 막힘없어 보이지만 내면은 여린 아이라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윤아가 어린 시절 굉장히 외로웠겠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김소진)가 식당을 운영하니까 어린 나이에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까. 나 역시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 오셨고,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데 익숙했다.

-어른들은 10대를 쉽게 아이 취급하지만 그 나이대의 당사자들은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조숙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윤아는 특히 매력적이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당차게 행동한다.

=맞다. 낙엽만 굴러가도 깔깔대는 나이지만 주변 환경 때문에 스스로 조금씩 껍데기를 만들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어른스러운 겉모습과 속에 있는 어린 소녀의 감성간의 괴리가 크달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내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2013년 SBS 슈퍼모델선발대회에서 최연소 본선 진출자로 뽑혔는데, 고등학교 2학년이던 당시에 어떤 계기로 출전을 결심했나.

=부산에서 집 근처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녔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웃음) 그런데 나보다 먼저 대학 입시를 경험한 친언니가 자꾸만 내 성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으니 슈퍼모델선발대회에 나가보라는 거다. 모델 자질이 있는지 테스트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4개월간 서울 할머니 댁에 머무르면서 서바이벌을 치렀는데, 처음의 가벼운 마음과 달리 ‘이렇게 된 이상 떨어질 순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 절박하게 매달렸다.

-연기의 갈증을 풀어준 작품이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이라니 더 재미있다. 연기 지도를 받는 과정은 어땠나.

=처음 전체 리딩을 하는 자리에서 ‘선배님들이 이렇게 못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기 바빴다. 감독님도 나를 불안해하셨던 것 같다. 촬영 전까지 감독님과 리딩을 많이 했는데, 매번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온몸이 두드려맞은 것처럼 아팠다. (웃음) 이후 사무실에 리딩하러 가면 일단 화장실부터 들어갔다. ‘지면 안 돼, 지면 안 돼!’ 되뇌면서 제자리달리기를 하고 잔뜩 기합을 넣은 다음 아무렇지 않은 척 감독님께 인사하러 갔다.

-김윤석 감독에게 배운 좋은 연기의 방법은 무엇인가.

=대본에 있는 모든 것을 나만의 상상으로 확장하고, 그에 대한 내 반응이 진심으로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꾸미거나 흉내내는 부분이 일절 없어야 한다는 게 감독님의 철칙이었고, 절대로 쉽게 넘어가지 않는 분이라 혹독하게 훈련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조금씩 상상과 진심이 맞닿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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