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①] <로맨스 빠빠>, <고래사냥>,<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19-04-10
글 : 김성훈
<씨네21> 창간 24주년,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 스페셜...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과 그 감독들 이야기

●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

개봉 1960년 1월 28일 / 출연 김승호, 주증녀, 최은희, 김진규, 남궁원, 도금봉, 신성일, 엄앵란, 김석훈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로맨스 빠빠>는 김희창의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가족 드라마다. 보험 회사에서 일하는 그(김승호)는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웃음을 잃지 않아 2남2녀의 자식들에게 ‘로맨스 빠빠’라 불린다. 장녀 음전(최은희)은 기상관측사인 우택(김진규)과 결혼한다. 장남 어진(남궁원)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부모 몰래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현장에서 일한다. 셋째 바른(신성일)은 자신에게도 인격이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고3 학생이며, 막내 이쁜이(엄앵란)는 남학생들에게 러브레터를 받는 인기 많은 여고생이다. 하루도 웃음꽃이 피지 않는 날이 없는 가운데, 보험 회사에서 감원 바람이 불면서 그는 해직된다. 그는 자신의 실직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기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은 그를 격려할 방법을 찾는다. 1960년 1월 개봉한 영화는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에 성공해 19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장르적으로는 배우 김승호를 서민의 아버지로 내세운 ‘김승호식 가족 드라마’의 첫 작품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감원 대상이 되고, 가계경제를 책임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위기에 처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꽤 위태롭다. 가족들이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생일 파티를 열어 아버지의 기를 살려주는 해피엔딩이 씁쓸한 것도 그래서다. <로맨스 빠빠>는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신필름의 첫 작품으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은 덕에 신필름은 한국 최고의 영화 제작사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 영화도 주목! <지옥화>(1958)_ 관능적인 팜므파탈(최은희)을 통해 변화와 욕망이 뒤범벅된 혼란스러운 시대를 풍자한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연기하던 최은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사자 머리를 하여 더욱 강렬하다.

● 배창호의 <고래사냥>

개봉 1984년 3월 31일 / 출연 김수철, 이미숙, 안성기, 이대근

‘한국의 스필버그.’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데뷔한 뒤로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등 내놓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트렸던 배창호 감독을 두고 당시 언론이 즐겨 쓴 표현이다. 신군부의 검열 정책으로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던 1980년이지만 배 감독은 흥행 불패였다. 그때 제작된 영화 중 하나인 <고래사냥>은 최인호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휴교령이 떨어진 학교에 염증을 느낀 철학과 학생 병태(김수철)는 거지 민우(안성기)를 만나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가 창녀 춘자(이미숙)를 만난다. 춘자에게 사랑을 느낀 병태는 민우와 함께 윤락가에서 춘자를 빼내 그녀의 고향인 우도에 데려다주기로 한다. 줄거리만 보면 병태와 민우 그리고 춘자, 세 남녀가 춘자의 고향으로 가는 로드무비 형식을 띤다. 소심하고 용기 없는 병태가 억눌린 욕구를 표출하기 위해 (목적 없는) 도피를 꿈꾸고, 민우가 과거 운동권 학생이었으며, 공권력(경찰)이 이들을 불심검문하며 세 남녀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장치를 통해 영화는 1980년대 암울한 시대상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길>(2004) 촬영 중에 <씨네21>과 인터뷰한 배창호 감독은 “<적도의 꽃>부터 <깊고 푸른 밤>(1984)까지 흥행적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고통스러웠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생각해보니 그게 흥행이니 명예니 하는 결과에 너무 집착해서 그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황진이>(1986)를 기점으로 달라진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했다.

이 영화도 주목! <기쁜 우리 젊은 날>(1987)_ 일상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일상적인 대화를 영화의 대사로 활용하며, 인간의 평범한 모습을 친밀하게 그려낸 작품. 수많은 후배 감독들이 ‘내 인생의 멜로영화’로 꼽았던, 당시 흔치 않던 스타일의 영화.

●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개봉 1999년 7월 31일 / 출연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 최지우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 걸까.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2000년 직전에 나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붓는 부산 중앙동 40계단, 한 남자(송영창)가 정체불명의 괴한 장성민(안성기)에게 살해당한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시퀀스는 모든 움직임이 느린 화면과 정지 이미지로 구성됐다. 화면 밖에선 록 밴드 비지스의 <Holiday>가 흘러나온다. 시공간이 독특한 스타일로 재구성된 이 장면은 서사의 출발점이자 동력이다. ‘주인공 우 형사(박중훈)가 살해 용의자 장성민을 뒤쫓는다’라는 한줄로 설명이 가능한 서사와 달리 영화 속 모든 움직임은 각기 다른 스타일과 이미지로 펼쳐진다. 프레임 안과 밖을 재기 넘치게 활용하고(우 형사가 용의자(권용운)를 쫓는 롱테이크 시퀀스에서 우 형사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 투숏이 되고, 용의자가 더 빨리 달리면 우 형사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는 장면), 달빛에 비친 그림자와 왈츠곡을 조합해 추격전을 우스꽝스러운 숨바꼭질로 변모시키며(우 형사와 짱구(박상면)의 옥상 추격 신), 무려 20여년부터 ‘먹방’(우 형사와 김 형사(장동건)가 범인을 잡고 나면 먹고 싶은 음식을 언급하는 대화 신)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우 형사와 장성민이 나뒹구는 폐광 액션 신은 영화가 움직임과 이미지로 보여주는 매체임을 일깨우는 명장면이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2003)을 포함한 많은 영화가 이 장면에 오마주를 바치거나 숱하게 패러디했다.

이 영화도 주목! <첫사랑>(1993)_ 애니메이션, 소품, 스틸, 연극 등 거리두기의 다양한 형식들을 동원해 펼쳐낸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 20대 김혜수의 풋풋한 내레이션이 거리두기를 훌쩍 뛰어넘고 서사에 당도한다. 너무 일찍 세상에 등장한 걸작.

● 윤제균의 <해운대>

개봉 2009년 7월 22일 / 출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 송재호

쓰나미가 100만 인파로 가득한 해운대를 집어삼키는 이미지는 충격적이었다. 일상적인 공간이 재난의 무대가 되었을 때 영화 속 재난은 더욱 실감나는 법이다. 하지만 <해운대>는 <퍼펙트 스톰>(2000)이나 <투모로우>(2004) 같은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스펙터클과 인간의 고통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메가 쓰나미’를 이야기 초반에 터트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보다는 해운대 상인(설경구, 하지원), 관광객(강예원), 구조요원(이민기), 지질학자(박중훈) 등 여러 에피소드로 엮인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메가 쓰나미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감독의 전작 <1번가의 기적> 같은 가족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스펙터클보다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 덕에 영화 후반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메가 쓰나미가 더욱 위력을 발한다. <해운대>는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낭만자객> <1번가의 기적> 등 주로 코미디 드라마를 만들어온 윤제균 감독이 블록버스터 연출로 방향을 틀어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딥임팩트>(1998), <투모로우> <퍼펙트 스톰> 등에서 물 시각특수효과(VFX)를 작업한 할리우드 VFX 슈퍼바이저 한스 울릭이 참여해 촬영 전부터 화제가 된 바 있다. <해운대>가 구현한 물 VFX는 해운대와 그 주변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을 집어삼키기에 충분할 만큼 생생했다. <해운대>는 개봉 당시 관객 1132만명(영화관 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았다.

이 영화도 주목! <국제시장>(2014)_ 6·25전쟁부터 서독 파견 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를 거쳐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한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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