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주에서 만난 영화인들①] <내일부터 나는> 이반 마르코비치 감독 - 현실적으로 절망을 짚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
2019-05-15
글 : 김소미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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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니의 재림”이라는 전주국제영화제 장병원 프로그래머의 찬사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내일부터 나는>은 세르비아 감독 이반 마르코비치와 중국 감독 우린펑이 공동 연출한 영화다. 첫 장편 극영화를 만든 이반 마르코비치 감독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한 <나는 집에 있었지만…>(감독 앙겔라 샤넬렉, 2019)의 촬영감독 출신. 베이징 외곽의 지하방에 머물며 매일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는 이주민 청년 리의 삶을 60분간 예의깊게 기술해 나간다. 스토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상태 혹은 존재를 포착하는 감독의 길고 정밀한 숏이 현실의 고독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인터뷰는 수상 소식에 앞서 나누었다.)

-베이징에 있는 거대 빌딩의 야간관리인으로 일하는 리와 그와는 생활 패턴이 정반대인 룸메이트가 나온다. 둘은 지하방의 한 침대를 오가며 완벽하게 교대로 잠을 잔다.

=처음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2014년 무렵에 우린펑 감독과 베이징 외곽에 있는 어느 낙후 지역의 지하 아파트를 찾았을 때다. 집이 아니라 대피소 같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꾸며놓아서 마음이 움직였다. 1999년 코소보 분쟁으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폭격이 가해졌을 때 나도 가족과 피난소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베이징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부서뜨릴 수 없이 굳건하게 팽창하는 도시, 그 속에서 점점 초라해지고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은 중국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세르비아 혹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중 베이징은 이미지적으로 무척 강렬한 도시다. 영화에서 리가 거대한 교각 앞을 지나치는 장면을 보면, 교각 위에 ‘뉴 페이스 베이징’이라는 캠페인 문구가 걸려 있다. 오래된 거리의 풍경, 고물상 등을 도시 중심부에서 밀어내고 가난한 사람들이 시야에서 점점 더 보이지 않도록, 그들이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단편영화 <흰 새>(2016) 등 우린펑 감독과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세르비아의 학생영화제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로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다. 세르비아, 중국 모두 예술영화가 투자받기 힘든 토양이고, 그래서 우린펑 감독과 나는 돈을 벌려고 부업을 굉장히 많이 한다. 지난 3년간 쉬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우린펑 감독은 상업영화 조연출로 일하느라 영화제에 오지 못했다. <내일부터 나는>을 비롯해 이전에 우린펑 감독과 함께한 단편 모두 베이징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우린펑 감독이 통역 등을 담당하느라 작업 외적으로 특히 고생을 많이 했다. 은혜를 갚으려면 다음 작품은 그를 세르비아로 데려가서 찍어야 하지 않나 싶다. (웃음)

-밤이 되어 리가 깨끗한 유니폼을 입을 때, 옷 갈아입는 행위를 무척 조심스럽고 절도 있게 행한다. 영화가 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현실과 그의 내면 풍경은 무척 다르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듯 리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좋은 아파트에 살고, 좋은 옷을 입은 모습인데 그의 현재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공들여 유니폼을 입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재현된 외양을 스마트폰에 비춰보는 것이 리에겐 일종의 제의일 수 있다. 잠시나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혹은 그런 척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일면 유치하고 미성숙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리가 잠자는 시간도 부족하고 생각할 겨를도 거의 없는 생활을 지속 중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룸메이트를 향한 리의 마음을 영화는 일부러 자세히 드러내지 않는다. 보는 이에 따라 훨씬 복잡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데.

=누군가는 굉장히 섹슈얼한 감정으로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형제냐고 묻기도 했다. (웃음) 분명히 무언가 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인지 영화가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리 자신도 잘 모르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착이든 동경이든 혹은 다른 욕망이든 리가 원하는 것은 대체로 금지되어 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룸메이트는 리와 비교해 좀더 ‘정상적인’ 사람이다. 낮에 일하고, 여자친구도 있고, 리 외에 바깥의 관계망도 있고, 더 젊다. 상대방에게 가까워지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해 현실적인 감각을 극대화했다. 배우들은 어떻게 만났나.

=평소에도 신체를 사용하는, 진짜 노동자를 만나고 싶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자주 간 곳이 다리 밑에서 열리는 인력시장이었다. 그곳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영화에 출연할 사람을 찾았다.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리추안은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유달리 대화가 잘 통했다. <내일부터 나는>의 캐릭터는 그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몸짓, 얼굴 표정에 기인해 인물이 자라났다.

-배우만큼 로케이션 선정이 중요한 영화다. 특히 어떤 경관 속에 인물을 배치할 때, 매우 구조적인 프레이밍을 보여준다.

=건물 창문을 닦는 청소부 등 우연하게 침입한 장면도 있다. 주로 낮과 밤, 안과 밖의 경계를 고민했다. 리는 낮에는 지하에서 잠자고, 밤에는 밖으로 나와서 크고 빈 공간의 어둠에서 일한다. 이 대비감이 직관적으로 다가왔으면 했고, 특히 낮 신의 경우 일부러 더 밝게 찍으려고 했다. 컴컴한 터널을 걷다가 밖으로 나오면 엄청 환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장, 더러운 골목, 언더그라운드 아파트에 있던 주인공이 영화 후반부에 고층 아파트, 백화점을 거쳐 초록이 무성하게 가꾸어진 공원에서 잠든다. 비극적인 실상에 반하는 풍경이 더해지면서 일순 초현실적인 인상도 안긴다.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같은 감독들이 떠올랐다.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을 존경한다. 영화 후반부를 약간의 환상처럼 바라볼 수도 있겠다. 그의 욕망이 지하에 있던 그를 점점 더 고층으로 끌어올리고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니까. 내 경우는 좀더 현실적으로 절망을 짚고 싶었다. 룸메이트가 떠난 후 리는 혼자 집에 머물지 못하고 밖에 나와서도 더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배회한다.

-영화가 그저 부유하는 상태의 나열이라면, ‘내일부터 나는’이라는 제목에선 일말의 의지가 서술된 것 같다.

=리가 옷을 바꿔 입을 때의 기분 같은 게 아닐까. 중국의 현대 시인 하이쯔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 ‘내일부터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내일부터 나는, 바다를 향하는 집에 살면서 건강한 음식을 먹을 거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시를 쓰고 시인은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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