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기생충> 제작기] 장영환 프로듀서, “봉준호 감독은 결정이 빨라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효율적”
2019-06-12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2018년 5월 18일 크랭크인, 총 4개월에 걸친 촬영. 순제작비 135억원. 영화의 배경이 되는 대규모 세트 진행까지. <기생충>은 압도적인 규모 면에서 프로듀서의 역량이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간 <고지전>(2011), <조작된 도시>(2016), <1987>(2017) 등을 거치며 규모가 큰 작품을 진행한 경험이 있었던 장영환 프로듀서는 <기생충>의 ‘움직임’을 차질 없이 가능하게 해준 손과 발이었다. 키스탭 대부분이 봉준호 감독과 전작을 경험한 것과 달리 장영환 프로듀서는 봉준호 사단에 새롭게 합류한 스탭이기도 하다. 77회차의 촬영 동안 그가 경험한 <기생충> 제작 과정에 대해 들었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칸 현장에 있었나.

=개봉 준비로 먼저 서울에 왔다. 새벽에 칸 공식 라이브와 <씨네21> 유튜브 라이브를 동시에 켜놓고, 단톡방에 모여서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웃음) 수상 후에는, 시간되는 사람들 다 모여서 같이 술 마셨다.

-봉준호 감독과는 이번 작품이 처음인데.

=<조작된 도시> <1987>을 함께한 CJ엔터테인먼트쪽 소개로 <기생충> 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와 인연이 닿았다. 2017년 10월경, 봉준호 감독님이 시나리오 쓰러 가기 전에 만났다. 워낙 유능한 프로듀서들이 많지 않나. 그냥 이 기회에 감독님께 인사나 드리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헤어질 때 감독님이 “잘해봅시다” 하시더라. 그게 시작이었다. 20페이지 트리트먼트를 먼저 받았고, 두달간 작업시간을 달라고 하시더라. 그 중간중간, 감독님이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시나리오 쓰고 있는 카페 풍경 사진도 찍어서 보내주곤 하셨다. 그리고 2018년 1월에 책을 받았는데, 마감일정을 정확히 지킨 것이었다.

-촬영(홍경표), 미술(이하준), 음악(정재일), 의상(최세연) 등 키스탭 상당수가 일찍 합류를 결정한 상태였다.

=주요 스탭 대부분이 <옥자>(2017), <설국열차>(2013) 그리고 감독님이 제작한 <해무>(감독 심성보, 2014)에 참여한 분들이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정해진 상태였고, 이하준 미술감독님도 <해무> 때부터 이번 작품은 같이하자고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 봉준호 감독님과 작업해보니 프로듀서로서 풀 게 거의 없더라. (웃음) 감독님이 직접 콘티를 다 그려서 감독님 머릿속에 그림이 이미 있었다. 명확하고 정확하고 특히 결정이 빨라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었다. 조감독과 함께 매일 촬영 시간을 아끼려고 한 시간 세이브한 플랜을 짜가는데, 진행을 하면 오히려 1시간이 남았다. (웃음) 내 역할은 어떻게 하면 감독님이 편하게 작품을 잘 찍으실지 서포트하는 일 정도였다.

-시작 단계에서 자료조사 등은 어떻게 진행했나.

=시나리오 나오기 전에 이미 로케이션을 찾고 있었다. 공동각본을 쓴 한진원 작가가 스크립터까지 했는데, 그 친구와 함께 먼저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 기택(송강호) 집의 분위기, 박 사장(이선균) 집의 분위기 등 메인 공간이 될 동네가 연상되는 레퍼런스도 많이 찾고,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도 많이 찾았다. 그렇게 찾은 사진들을 가지고 또다시 헌팅을 다녔다.

-기택 집과 박 사장 집 주요 촬영 장소가 세트다. 주요 공간이 모두 세트라는 건 의외였다. 오히려 세트를 지양했을 것 같은데.

=기택 집은 고양 아쿠아스튜디오에서, 박 사장 집은 전주영화종합촬영소에서 진행했다. 박 사장 집 1층 외관, 마당 등은 오픈세트로, 2층은 실내 세트에서 진행했다. 처음엔 로케이션으로 진행하려고도 했는데, 후반부 반지하가 물에 잠기는 설정 때문에 세트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반지하는 바닥을 1m20cm 정도 높여서 지었고, 그 연결지점에서 거리 세트를 지었다. 헌팅 다니던 시기에 재개발하는 곳들이 있었는데, 철거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자재들을 가지고 왔다. 덕분에 창틀이나 문 등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을 세트에 최대한 반영할 수 있었다.

-세트 규모가 상당하다. 특히 박 사장 집은 2층 구조라, 계단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관리해야 했다.

=박 사장집 같은 경우, 건축가 자문을 구했는데 실제 집은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짓지 않는다고 하더라. 창이 커서 열효율이 떨어지고 구조도 이상한 거지. 조경공사 때부터 계속 봤는데, 막상 이렇게 큰 규모가 될 줄 나도 몰랐다. (웃음) 정원을 포함해 단층 면적만 500평 정도였다. 얼핏 생각하기에 주요 세트가 2곳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제작비가 많이 들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계단 설정이 제작비 상승에 영향을 끼쳤다. 세트를 높게 지으면 안전문제로 훨씬 고강도로 지어야 한다.

-규모가 상당한 세트 촬영을 진행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컸겠다.

=내부에서 찍을 때는 효율적이었는데, 계속 야외 세트와 병행하는 바람에 그 점이 어려웠다. 빛과 광선이 중요해서 일광량에 맞춰서 숏들을 조정해서 찍었다. 지난여름 더위를 빼고는 날씨는 대부분 잘 맞았다. 눈 오는 장면이 한번 걸림돌이 된 적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눈이 오지 않아 촬영을 늦추고 그 장면만 후반작업 때 찍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눈이 너무 안 오더라. 감독님과 2월 15일로 마지노선을 정했다. 그날이 되면 눈이 오든 안 오든 찍자. 당일에도 안 와서 그냥 포기하고 찍으려는데, 촬영장 가는 길에 거짓말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웃음)

-주요 배역의 수가 많아서 배우 캐스팅부터 관리 규모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10명의 배우가 가족 같았다. 전주 촬영 때는 각자 촬영 분량이 없을 때도 다 같이 현장 보고 식사하고 그랬다. 야외 촬영 때 일광량 때문에 순서가 바뀌어도 모두가 현장에 있어서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다.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됐나.

=송강호,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등 주요 배우들은 내가 합류하기 전 정해졌었고, 시나리오 쓰는 중간에도 다시 캐스팅 작업을 더해나갔다. 박 사장 집 자식들인 다혜, 다송 역의 정지소, 정현준 배우를 비롯해 오디션도 많이 진행했다. 가족과 잘 어울려야 하는 게 오디션의 가장 큰 원칙이었다. 재밌게도 정지소는 뽑은 후 봤더니, 10년 전 TV광고에서 이선균 배우의 딸로 출연한 적 있다고 하더라. 감독님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룩테스트를 많이 하셨다.

-영화계 입문 과정이 궁금하다.

=영화과를 다니다 대학 2학년 때 휴학하고, <재밌는 영화>(2002), <중독>(2002) 제작부에 참여했다. 이후 <혈의 누>(2004) 등에 참여하면서 ‘내 포지션은 프로듀서다’라는 걸 인지했다. 새로운 작품으로, 다른 감독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잘 맞더라.

-규모가 큰 작품에 연달아 참여했는데, 이번 <기생충> 참여로 새롭게 터득한 프로듀서로의 나만의 방법론이 있다면.

=<기생충> 시사 뒤풀이에서 장준환 감독님도 만났는데, 그런 좋은 작품을 연이어 할 수 있었다는 게, 나에겐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작은 부분에 세세하게 많이 매달렸는데, 규모가 큰 작품을 거치면서 총론을 보게 됐다. 큰 틀에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들을 많이 생각한다.

● 내가 꼽은 이 장면!_ 7분30초의 롱테이크

“연교(조여정)가 믿는 사람만 고용한다는 의미로 ‘믿음의 벨트’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 7분30초간의 롱테이크 장면이다. 시나리오에 보면 “아리아가 흐른다. 제목 ‘믿음의 벨트’”, 이렇게 써 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시나리오를 볼 때 가장 기대한 장면이었다. 크랭크인 때부터 8월까지 이 장면의 촬영이 이어졌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장소도 서울, 전주로 바뀌어서 프로듀서로서도 각별히 주의를 요하는 장면이었다. 감독님도 마지막 장면을 찍고 나서 ‘드디어 믿음의 벨트가 완성됐다’고 하셨던 말이 기억난다. 나중에 음악을 넣어서 믹싱실에서 보는데 전율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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