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기생충> 제작기]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을 듣다
2019-06-24
글 : 김혜리
사진 : 백종헌
명치에 얹힌 돌

※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된 인터뷰입니다. 관람 전에 읽거나 유포하는 일은 영화의 재미를 크게 해칠 수 있습니다.

<기생충>의 가난한 가족은 자본가와 갈등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실업자들이다. 일을 전전하며 빠짐없이 실패한 아버지 기택(송강호)은 아들 기우(최우식)가 계획을 입에 올리자 크게 놀라 다시 본다. 계획이란 그들의 삶에서 언제나 불길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다르다. 부잣집 친구가 선물한 재물운을 가져다준다는 산수경석은 과연 기우에게 기세를 불어넣고, IT 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 집 과외교사로 채용된 기우를 시작으로 나머지 세 식구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취업한다. 하지만 산수경석의 주문은 반지하방에 사는 이 가족을 더 높은 곳으로만 데려가지는 않는다. <기생충>을 뒤덮은 계단은 한층씩만 우리를 이동시키는 구조물이다. 그리고 운수 나쁜 날에는 추락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생각지 못한 ‘거기’에도 사람은 살고 있다.

봉준호의 관객에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기생충>은 가족 드라마이고 스릴러이고 코미디이자 호러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족애는 사기로 꽃피고 서스펜스는 짜파구리로 고조된다. 그리고 <기생충>의 가장 서늘한 공포는, 부잣집 어린이가 시달리는 트라우마의 실체가 생활 영역이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과의 대면이라는 사실이다. 공생이 불가능한 세계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출구 없는 불안과 공포는 특권을 독점한 이들의 집 지하로 스며들어와 넝쿨을 벋을 것이다. 봉준호 영화의 액션은 언제나 격투보다 추격이었지만 <기생충>의 그것은 단지 은신과 정당방위의 몸부림이다. 무엇을 찾고 추구하기는 언감생심이고 현재의 자리에서라도 버티려는 무산자들의 발버둥이 이 영화의 주된 운동이다. 박 사장의 “선을 지키라”는 말은 <설국열차> 속 메이슨(틸다 스윈턴)의 대사 “네 자리를 알라”(Know your place)의 메아리다. <설국열차>는 SF 판타지이지만, 실제 과거사를 가져와 계급투쟁을 선악 대결로 단순화한 <레 미제라블>보다 역사적이었다. <기생충> 역시 계급 사회의 축도처럼 보이지만, 당면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부조리한 인간성에 대한 봉준호다운 포착이 영화를 선험적 도식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를 축소판이 아닌 거대한 사실적 벽화의 일부로 보게 한다. 한국의 봉준호는 <어스>의 조던 필과 달리 중산층과 언더클래스의 배치도를 그리기 위해 판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생충>의 소실점은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의 검은 네모다. <살인의 추억>의 터널처럼, <괴물>의 둥지처럼, 무엇보다 <마더>에서 진실을 안 엄마의 까만 눈동자처럼 2.35:1 프레임의 정중앙에 열쇠구멍처럼 입 벌린 이 심연은 세계의 모순을 임시방편 우격다짐으로 삼키는 처연한 하수구다. <기생충>은 희망을 말하기 전에 철저히 슬퍼하는 영화다. 극장에 간 우리는 돌 하나를 받아 명치에 얹고 나온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여파로 온 세상이 그의 한 조각을 원하는 열풍의 복판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마른세수로 피로를 떨치려는 감독 앞에서 인터뷰의 기세를 높이기는 불가능했지만 봉준호는 이내, 남이 창조한 세계를 둘러보는 감식자처럼 이야기에 몰두했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결정한 심사위원단 중 개별 반응이 궁금한 심사위원이 몇명 있다. <이다> <콜드 워>의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어떻게 봤는지 혹시 들었나.

=뒤풀이 자리가 혼잡해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와 엘르 패닝의 이야기만 제대로 들었다. 심사위원 중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을 무척 좋아했는데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이냐리투 감독이 열정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멕시코 3인방 감독인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중 델 토로 감독과 친분이 있는 걸로 안다. 이냐리투가 건너 들은 이야기도 많지 않았을까.

=<옥자>(2017)가 초청된 2017년 칸영화제가 70주년이어서 역대 수상자인 켄 로치, 데이비드 린치, 난니 모레티, 제인 캠피온, 내가 좋아하는 조지 밀러 감독이 한자리에 모인 초현실적 광경이 연출됐다. 작고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도 그 자리에서 뵙고 <방랑자>와 <쿵푸마스터>를 사랑한다는 말씀도 드릴 수 있었다. 그때 보니 정말 멕시코 삼총사는 인절미처럼 뭉쳐다니더라. 남프랑스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엘 마리아치 악단까지 불러 늦도록 즐기더라.

-함께 영화를 본 틸다 스윈턴(<설국열차>(2013), <옥자>)의 반응은 어땠나.

=큰 만족을 표했지만, 찬찬히 대화할 틈이 없었다. <기생충>은 인물과 시추에이션 사이사이에 빈 공간과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서 6부작 내지 8부작 리미티드 TV시리즈로 하자는 스튜디오들의 제안도 있었다. 아직 미정이지만 이 프로젝트에 대해 틸다가 적극 의견을 내고 있다.

-2020년 방영 예정인 <설국열차> 미국 TV시리즈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 방침이었다. 만약 현실화된다면 <기생충> TV시리즈에선 어떤 역할을 담당할 생각인가.

=<기생충>은 연출까지는 몰라도 완성도와 세밀한 톤에 대해 직접 관여하고 싶다. <설국열차>를 마치고는 KTX도 타지 않고 있다. (좌중 폭소) 명색이 제작 총지휘(executive producer)라 지난해 가을 TV 시리즈 촬영 중인 밴쿠버 세트를 방문했는데, 죽 늘어선 기차 세트를 보는 순간 재입대하는 기분이었다. 원안인 그래픽노블보다 영화 <설국열차>를 이어가는 느낌의 시리즈다. 제니퍼 코널리가 캐스트 중 한명이라 만났는데 깡마른 모습이 물기 없는 가을 나무같이 너무 멋있었다. <TBS>에서 북미 방영하고 전세계 방영권은 넷플릭스에 있다고 하니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초인종이 울릴 때

-<옥자>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다음 영화에 관해 “작고 단단한, 손에 쥘 수 있는 돌멩이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말 영화에 돌이 나올 줄은 몰랐다.

=차돌멩이처럼 작고 딴딴한 영화라는 의미로 이야기했는데(웃음) 인터뷰 시점에는 <기생충> 시나리오에 산수경석이 아직 없었을 거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17년 9월 중순부터다. 구상한 4, 5년 동안 계속 두 가족의 이야기였다가 2017년 8월 김뢰하 배우 가족과 밥 먹으러가던 차 안에서 현재의 구조를 떠올렸다. 에필로그는 밴쿠버에서 쓰던 기간에 횡단보도 건너다가 생각났다. 2017년 12월 30일에 제작자 곽신애 대표에게 완고를 드렸고 2018년 1월 2일에 송강호 선배한테 드렸다.

-2017년 가을에 안부를 물은 적이 있는데, “과한 시나리오 작업으로 정신분열 상태”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그때가 절정이었다. 미친 듯이 딱 짜인 시간표대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밴쿠버의 세 커피숍을 종일 돌면서 썼다. 외국에서도 쓰다 드러눕지 않기 위해 카페에서 쓴다. 캐나다 버전의 이디야 같은 커피 체인이 있는데 저렴하고 작업하기 좋았다.

-<살인의 추억>(2003)의 원안이 연극 <날 보러 와요>고 <설국열차>가 그래픽노블 원작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누가 시나리오를 좀 써서 줬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의외로 보내오는 시나리오가 별로 없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꽤 들어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나리오가 요구하는 감정을 잘 다룰 확신이 안 선다. 성격 문제이기도 하고, 음역이 제한된 싱어송라이터가 본인이 잘 부를 수 있는 범위의 곡을 작곡하는 양상과 비슷한 것 같다.

-원래 <기생충>은 연극으로 연출할 생각이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극중 공간을 2개 내지 3개의 세트로 압축할 수 있으니 공연에 어울리기도 한다. 초기 착안 과정을 들려줄 수 있나.

=내가 쓴 스토리라인으로 존경하는 연출가 박근형 선생님이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리고 나는 영화로 찍는 안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박 선생님을 뵙기도 했다. 2013년에서 201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해무> 촬영장에서 가까운 스탭에게 얘기한 적이 있고, 17쪽 분량 스토리라인을 제작사에 넘긴 것이 2015년이었다. 초기 제목은 <데칼코마니>로 빈부차가 나는 두 가족만 나와 한 가족이 다른 가족에 완전히 침투한다는 내용이었고 후반부는 풀지 못한 상태였다. <기생충>은 <괴물>이나 <옥자>처럼 어느 날 이수교차로에서 괴물체를 목격했다거나 하는 명확한 구상의 계기가 없다. <기생충>은 언제 어디서 묻었는지 모르겠는데 저녁에 벗으려고 보니 바지에 남아 있는 얼룩 같다. 스파크가 튄 순간을 모르겠다.

-<기생충>의 한국 제목은 영어 제목과 뜻은 같아도 느낌이 조금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게 벌레라는 의미의 접미사를 달아 멸칭으로 부른다. 소수자뿐 아니라 ‘급식충’같이 일군의 사람을 싸잡아 타자화하는 특수한 말 습관이다. <기생충> 초반에 기택(송강호)의 가족을 향해 정면으로 해충 방제 소독가스가 밀려오기도 하고.

=도입부가 노골적이다. 기택이 집에 들어온 꼽등이를 튕겨낸 다음 방역가스가 밀려든다. 이들은 이런 신세다라고 보여주는 시작이다. 기택은 창문 닫지 말라고 한 당사자라 속으론 고역이면서도 기침을 참으며 태연한 척 피자박스를 접는다.

-그렇다고 인물 이름에까지 ‘기’자와 ‘충’자를 직접 쓰다니, 작명에 지친걸까.

=예리하다. 작명의 귀차니즘이다. 하지만 실제로 ‘기’자 돌림의 이름이 많고 김기영 감독님도 계시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아버지와 자식들의 돌림자가 같은 건, 한자가 다르겠거니 하고 합리화해보았다.

-영화 속 세 가족 가운데 어느 쪽이 기생하는 입장인지도 관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쉽게 모두가 기생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 불가능하진 않다는 정도고 영화적 정황을 보면 확실히 지하의 가족이 숙주에 안착한 기생충이고, 기택 가족이 새로 침투한 기생충이다. 정작 숙주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동안 두 가족끼리 맞선다.

-어쩌면 핵심적 질문은 누가 기생하는가가 아니라 왜 기생이라고 느끼는가일지도 모르겠다. 기택네는 박동익 사장(이선균) 집에 취업하면서 이력을 속였지만 갈취는 아니고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고 있다. 가정부 문광(이정은)은 저택에 숨어산 남편 근세(박명훈)의 밥을 월급으로 샀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상호의존해 공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형태가 상생이나 공생이 아니라 기생이라고 인식되는 데에는 감정이 연루되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예의에 관련된 부분이다. 동일한 상황이라도 기본적 예의가 지켜지느냐 허물어지느냐에 따라 공생과 상생이 기생으로 내몰린다. 이 영화에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예의가 붕괴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기택 가족은 채용 과정의 거짓말 때문에 위축돼 있는 한편 자기들끼리 있을 때에는 최대한 떳떳하려고 노력한다. 문광의 말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박동익 사장이 문광의 유일한 단점으로 2인분을 먹는다는 점을 거론하지 않나.

-박 사장은 살림에 관한 일은 아내 연교(조여정)에게 일임하고 신경쓰지 않는 척하지만 거기서는 먹는 양까지 알고 있음을 드러낸다. (웃음)

=“당신이 알아서 해”라며 대범히 맡겼지만 은근하게 감사 들어가는 느낌이다. 한편 연교는 남편에게 집안을 잘 경영하는 자기 모습을 부각시키고 인정받으려고 항상 쩔쩔맨다. 박 사장은 표면적으로 쿨하고 젠틀한 가장인 듯하지만 은근히 가부장적이다. 딸에 비해 아들을 편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 보는 관객은 그들의 사생활을 밀접하게 엿보니 알게 되지만 그들의 이웃은 모르는 면이다.

-전작 <옥자>의 경우 동물해방전선(ALF)도 취재했고 도축장 견학도 했다. 이번에도 취재가 있었나.

=영화에서 시나리오 크레딧에 이름이 오른 한진원씨가 <옥자> 연출부였는데 자료조사를 맡았다. 부잣집 수행기사,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 파출부나 가정부 여러 분을 인터뷰했다. 기택이 박 사장에게 하는 “38선 아래로는 골목까지 훤합니다”, “고독한 한 남자를 동행하는 일” 같은 표현이 취재에서 나왔다.

-<설국열차>, <플란다스의 개>(2000)도 종말 그리고 강아지 실종사건으로 평소에는 동선이 겹치지 않는 다른 계층 인물들이 만난다. 그런데 <기생충>은 신흥부자와 빈곤층의 사적인 생활공간이 온전히 제시되면서 둘의 접촉과 마찰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좀더 도전적이라고 느꼈다. 감독/작가의 입장에서도 본인이 속한 계급성이 있는데 두렵지 않았나.

=아주 신났다. 그중에서도 주로 부자 나라를 엿보는 쾌감이 있었다. 젊고 취향이 세련됐다는 사람들의 모습 중에 평소 접하기 힘든 결을 내밀한 사적 공간을 파고들어 하나씩 본다고 생각하니 흥분됐다. 여기서의 흥분은 다 영화적 흥분이다. 그렇게 한겹씩 벗겨간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180도 방향이 꺾여 아래쪽으로부터 큰 충격이 지표를 뚫고 올라오는 거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풀기 힘들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문제는.

=전작에 비하면 일사천리로 쓴 편인데, 제3의 가족으로 구조를 완성하고 그들이 어떻게 봉합될지까지를 같은 날에 순식간에 정리했다.

-제3의 가족은 이 이야기에 어떤 질적 변화를 불러왔다고 스스로 생각하나.

=영화를 지탱하던 에너지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다. 처음에는 설정으로부터 상상할 법한, 가난한 집 사람이 부잣집에 침투 작전을 완료하고 내부로부터 갉아먹어 모든 걸 차지하는 이야기였는데 굳이 나까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어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광과 근세의 존재가 영화의 흐름을 일거에 바꾸고 부자 숙주가 모르는 가운데 두 가족이 싸우고 덮으려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매력적이었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가서 집을 비운 날, 기택 가족이 술 파티를 벌이는 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고 문광이 인터폰 모니터에서 “안녕하세요오?” 하는 장면이 영화의 진짜 시작인 거다. 안전벨트를 매야지.

끝까지 따라다니는 돌

-참으로 이상한 궤적의 이야기다. <설국열차>는 기차 꼬리칸에서 기관실을 향해 앞쪽으로 이동한다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가 기차 밖으로 90도 시건을 돌리는 구조다. <기생충>은 A와 B의 메인 갈등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C가 솟구치면서, 관객의 동일시 대상이었던 B가 가해자로 변해 관객의 발밑에 깔려 있던 양탄자를 잡아채는 형국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동일시를 복구해 결말로 달린다. B가 처음부터 계급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2차 갈등에 떠밀려 최초의 갈등이 떠밀리듯 해소되는, 아니 터져버리는 특이한 스토리다.

=그 괴상함에 흥분했다. 거기에는 김씨 가족의 죄책감도 관계 있다. 기택을 취직시키기 위해 몰아낸 윤 기사를 염려하고 나름 합리화하는 대화가 거실에서 오간 직후 문광의 벨이 울린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썼느냐, 이야기의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먼저 이끌렸는데 그로부터 주제가 출현하느냐의 선후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같다.

-<기생충>의 내러티브에서 산수경석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대척점이랄까,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시학적 영물이다. 특히 기우(최우식)가 처음 수석이 든 오동나무 상자를 열 때, 돌이 인물인 양 기우를 올려다보는 시점숏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넋 있는 존재처럼.

=좀 유난스런 로앵글이고 의인화된 시점이다. 돌과 기우의 조우 같은 느낌이다. 기택네의 반지하 집은 천장이 낮아 올려다보면 화면이 평평해지는 핸디캡이 있음에도, 주변 인물과 분리시켜 기우와 돌이 일대일로 만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돌은 끝까지 기우를 따라가게 된다.

-돌이 왜 필요하다고 확신했나. 과외 소개는 돌 없이도 할 수 있다.

=돌로 인해 각인이 되기 때문이다. 수석을 보면 과외를 소개해준 친구 민혁(박서준)과 기우네와는 이질적인 그의 부유한 가족이 계속 떠오른다. 민혁은 초반에 나오고 사라지지만 계속 우리 눈에 아른거려야 하는데, 그 장치가 돌이다. 또 “죄 없는 자 나를 돌로 쳐라”라는 말이 있듯이 돌은 실체 이상의 강렬한 뉘앙스가 있다.

-<마더>(2009)에서도 도준(원빈)이 막다른 골목 안으로 돌을 던진다.

=가을에 <마더>의 사진집을 내기 위해 스틸 사진을 고르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돌의 모양이 산수경석과 비슷하더라. 산수경석은 수석협회가 보내준 표본 중에 내가 고른 돌이고, <마더>의 그것은 미술팀이 특수 스티로폼으로 제작한 것인데 이유를 모르겠다.

-산수경석이 손톱 밑의 가시처럼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육사 출신 군인이라는 민혁의 할아버지는 기우의 부모와 어떤 사이이기에 수석을 선물했을까? 민혁 역시 단순한 친구의 부모보다는 각별한 사이인 것처럼 말한다. 혹시 기택이 민혁네 운전기사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봤다.

=실제로 부잣집 자식인데 어른들 표현으로 ‘기마이’가 있는 애들이 있다. 배포가 크고 부자 친구하고만 어울리는 게 아니라 가난한 집 친구들도 몰고 다니는 호방한 아이들. 기사였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고 다만 할아버지의 배경과 외제 스쿠터, 이층집에 산다는 대사를 통해 둘이 절친이지만 속한 세계가 다름을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절친이면서도 콤플렉스가 있는 기우는 민혁의 모든 것을 조금 시시한 버전으로 앵무새처럼 흉내낸다. “정신 차려”, “나 진지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막바지에는 노골적으로 민혁에게 이입했음을 표시하는 대사도 나온다.

-영화에서 기세와 계획이라는 두 단어가 반복적으로 쓰이며 주제와 관련 있다는 인상을 심는다.

=기세는 키워드까지는 아니고 계획과 “선을 넘지 마라”의 선이 중요한 단어다. 이 가족에게 계획은 실패의 동의어다. 치킨, 카스테라 등 기택의 계획은 줄줄이 실패했다. 계획이 계획대로 된 적이 없어서 계획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됐다. 그것이 제일 안전하니까. 기택이 말하듯,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뿐이다. 아들에게 감탄하며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은 거꾸로 아버지에겐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박 사장 집에 취업하는 계획이 무슨 <미션 임파서블> 작전처럼 척척 처음으로 성공한 거다. 잠시 화양연화를 누리고 주인 가족이 없는 정원에서 반려견과 놀고 전직 운동선수 충숙(장혜진)이 해머를 던져본다. 최초의 성취를 맛보는 찰나 벨이 울리고 지옥문이 열리는 거다.

-그럼에도 가족 네명은 돌아가면서 거의 강박적으로 계획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사태가 비화된 다음 기우가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다 책임지겠다고 하는 말의 대상도 계획을 세워서 죄송하다는 말로 들린다. 어쩌면 <기생충>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별은, 실제 주거환경에서도 삶에서도 전망과 예측 가능성의 유무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별된다고 할까.

=그 절정이 이재민 대피소인 체육관에 누워 있는 기택이 팔뚝으로 눈을 아예 가려버리는 숏이다. 스스로 시야를 덮고 눈먼 사람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로소 심중의 칼 같은 말을 한다. 반면 부자일수록 글자 그대로 뷰(view)가 뻥 뚫려 있고 앞날이 창창하다. 반지하 가족은 시야가 제한되고 그 아래 지하에 사는 사람은 창도 없는 콘크리트 상자 안에 있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은 벽 위쪽 창으로 행인들의 노상방뇨 등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다 봐야 하고 행인들은 가족의 시선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반대로 박 사장의 모던한 저택은 보고 싶은 아름다운 것만 보이고 외부인은 이 집을 마음대로 볼 수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부잣집도, 반지하도 새로운 공간이 아닌데 <기생충>은 시야의 차이를 대놓고 강조한다.

=나열하기 불편하지만 빈부격차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피해가기 힘들다. 햇빛과 전망은 당연하고 소음도 그렇다. 부촌에 가보면 대낮에도 쥐죽은 듯 고요하고 고급 아파트는 강변인데도 이건 시스템 창호 같은 것이 있어 자동차 소음이 하나도 안 들린다. 반면 가난한 동네에 가면 수십겹의 노이즈가 들린다. 사운드 믹싱에서 그 점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영화에 나오는 대로 반려동물도 부잣집 개는 일본 게맛살을 간식으로 먹지만, 빈곤한 동네의 개는 폭우가 오면 똥물에서 헤엄친다. 거기서 오는 피로감이 있다.

-과거 봉준호 영화에도 슬픔이 있었지만 이번 영화는 지배적 감정이 슬픔이라고 느낀다. 특히 비애를 느끼게 하는 부감숏이 많아서 스스로 잔인해진 기분이었다.

=클라이맥스도 회전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인물을 내려다보는 숏이고 홍수 신도 침수된 동네를 부감으로 찍었다. 그 직전에 기택이 반지하 집에서 턱밑까지 물이 차서 빠져나올 때는 카메라와 더불어 우리도 구정물에 잠겨 있는데, 이어지는 숏은 카메라만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잔인한 부감이다.

-문광의 방문으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네 식구가 저택을 자기 집처럼 누리는 장면부터 문득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 지점까지는 속임수가 적중하는 성취감으로 달려가는데 막상 이루고나니 “자, 이제 무엇을 하지?”라는 적막하고 쓸쓸한 감정이 밀려온다.

=충숙 역의 장혜진 배우도 식구들이 나른히 낮잠을 자다 하나씩 일어나고 목욕하고 정원을 즐기는 장면이 그렇게 애잔했다고 하더라.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가고 기택네가 파티를 벌이는 그날이 영화에서 결정적 하루다. 이 지점부터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확 느려진다.

=문광의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이 1시간8분 즈음으로 영화의 50% 내지 55% 지점이다. 그러고는 폭주가 시작된다. 캠핑 간 사장 가족이 폭우로 돌아온다는 전화가 오면서 급히 짜파구리 물을 올리는 대목에서 템포가 정점을 찍고 그러다가 급히 몸을 숨긴 기택과 기우, 기정(박소담)이 빠져나갈 기회를 기다릴 때는 1분이 1년 같다. 비약 없이 분 단위로 플롯과 스크린의 듀레이션(duration)이 숨막히게 일치한다. (불현듯) 그런데 집을 설계한 전 주인 건축가 남궁현자가 문광에게 왜 비밀공간을 알려줬다고 생각했나? 그곳도 청소하고 관리하라고? 다른 생각은 안 들던가?

-문광은 기우가 면접을 보러갔을 때 예술가 남궁현자쪽에 동일시하듯이 지금 고용주 가족에 대해 엷은 경멸감을 표한다. “지금은 보다시피 애들 사는 집이지”라고 말을 흘리며 가족사진과 신문기사 액자 앞을 지나간다. <레베카>의 가정부처럼. 공식적으로 못 밝혀도 내가 남궁과 아주 가까웠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내비쳤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지 않나? 남궁현자에게 부인이 있었다는 암시는 대사로도 사진으로도 없다. 나는 문광과 남궁현자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고 추측한다. 베리만의 <산딸기>의 교수와 가정부처럼 어딘가 부부 같은 느낌으로. 기정도 문광이 “사모님 행세를 한다”고 말을 하지 않나. 그래서 6부작이 나오면 넣을 만한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아이디어가 있다. 근세가 이사 오는 날의 상황도 생각해봤다.

-이를테면 <문광정전>처럼 외전이나 문광 중심의 단편영화를 상상해보긴 했다. 말씀대로 남궁과 관계가 있었다면 근세를 남궁의 집에 은신시키는 결정이 미안함을 상쇄하는 면도 있었겠다. 그나저나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송강호)도 그렇고 남궁씨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는지.

=배우가 화면에 나오지 않으나 캐릭터가 계속 거론될 경우 그 인물의 이름은 엄청 이상하게 지어야 각인이 된다. 김민수, 이러면 기억을 못해서 최대한 뇌에서 걸리적거리는 작명이 필요하다.

-<옥자>에서 옥자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고 여러 전작에 출연했던 이정은 배우는 감독으로서 계속 다른 면모를 발견해가는 연기자인가보다.

=진짜 무궁무진한 배우다. 나중에는 기키 기린을 능가하는 존재가 될 것 같다. 기괴한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김혜자 선생님과 공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정보 없는 감정들

-<기생충>에는 지워진 부분이 있다. 우선 기이한 장면은 과외 면접을 보러간 기우가 연교 앞에서 다혜(정지소)에게 기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손목의 맥을 짚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학부모를 놀라게 할 리스크 있는 행동이다.

=아무튼, 기우 이 자식이 기세와 박력에 너무 집착한다. 민혁은 대학생이라 역시 기세 좋고 박력 있다는 말을 가족에게 들었던 기우는, 대학생이라면 곧 기세가 있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쭈뼛거리면 끝장이라고 결심한 거다.

-질투하는 다혜에게 제시카(기정)가 장미라면 너는 이거라고 기우가 적은 단어를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옥자>에서 미자의 귓속말이 뭔지 끝까지 드러나지 않듯. 다혜의 일기 내용도 마찬가지다. 윤 기사와 문광을 해고하는 대화는 사운드가 들리지 않는다. 막내 다송(정현준)은 절망한 근세가 센서등으로 보내는 모스부호를 어디까지 해독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찍고나서 편집으로 뺀 신은 거의 없다. 애초에 안 찍기로 한 부분들이다. 최우식 배우가 공책에 뭐라고 썼는지 나도 모른다. 감독도 궁금해하며 찍는 거다.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에 대해서도 인물과 관객 모두 이 청년이 범인이어야 한다는 열망에 매달리지만 “네가 범인이어야 해”라는 것은 무척 위험한 정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지만 <기생충>에는, 몰라도 메인플롯에 지장 없는 작고 가벼운 틈이 나열된다. 기우가 쓴 것을 보지 못하고 다혜의 미소만 본 우리에게는 리액션만 남는다. 정보 없는 감정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제시카가 다송을 어떻게 제압했는지도 안 나온다. 다송이 모스부호를 해독하는 장면은, 절망한 근세가 이마로 찍은 신호의 퀄리티 자체도 나빴을 것이고 다송이도 전문적 군인이나 뱃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시도하다가 잠들었을 거라고 봤다. 그 장면의 서스펜스는 다송이 아니라 근세를 위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기우를 향해 폭발할 에너지가 응축되는 장면이다.

-사운드에 관해서도 궁금증이 있다. 저택에서 보낸 하루 중 유리창 건너편 정원에 누워 있는 기우의 말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착각인가? <플란다스의 개>와 <옥자>에 이어 영화 오프닝에 스피커를 체크하는 종소리를 넣었는데, 영화 안에 이 소리의 근원이 있는지.

=종소리의 음원은 이야기 안에 없다. 기우의 음성은 의도적으로 유리창을 의식하지 않은 대화로 들리게끔 믹싱했다. 화면 사이즈도 그렇고 유리창 난반사도 없어서 식구들이 나눠져 있는 안과 밖 공간을 하나처럼 연출하려고 했다.

-<기생충>에는 식구끼리도, 가족 대 가족으로도 인물들이 사건의 실체를 놓고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없다. 봉준호 영화에 자주 나오는 취조 신도 없다. 갈등의 본체를 언어로 표현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의식한 행동만 나온다.

=가족회의를 하지 않는다. 기택 가족과 문광 가족 가운데에는 위기와 패닉을 관리할 사람이 없다. 기우가 실은 실전에서 기세가 약하다. (웃음) 문광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계획도 제법 세우고 아버지 연기지도도 하고 차근차근 드라이브를 해왔는데, 계획에 없던 일이 터지자 쉽게 바보스러워진다. 기정이 그보다 스마트하고 강단이 있다. 아버지는 평소대로 무마만 한다. 하지만 기우 아니라 롬멜 장군이 와도 갑자기 지하실에서 누가 나오는 상황을 침착히 맞이할 수는 없겠지.

-이튿날 모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엄청난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거 같은데 무슨 이웃과 음식물 쓰레기 문제로 다툰 것처럼 “어제는 우리가 너무 흥분을 해가지고…” “좋게 이야기해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일상적 말투로 문제를 풀 방도를 찾는다. 수수방관하는 아버지나 극단으로 비약하는 아들과 대조적이다.

=엄마들이 현실적이지 않나. 이튿날 다송 생일파티로 경황이 없어서 실행을 못했을 뿐 충숙은 협상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엄마가 지하로 가져다주라는 고기에 기정은 미트볼을 하나 더 얹는다. 그러나 연교가 등장해 모녀를 가로막는 셈이다. 그나마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점에서 이 대목이 가장 비극적이다.

-기택은 정치적 입장이 뚜렷하지도 않고 폭력적 가부장도 아니다. 살아가려면 온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 같기도 하다. 가장이 나서야 할 상황에서 멀찍이서 아내가 문제를 처리하는 걸 보고 있다. 비극의 원인을 따질 때 기택의 죄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괴물>(2005)의 강두와는 또 다르다.

=완전히 바보스럽지도 않고 소위 깨어 있는 시민도 아니다. 현실에서도 객관적 계급과 의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성향이 엉뚱한 요인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기택뿐 아니라 자녀들도, 충숙도 의식 있는 시민은 아니다. 물론 각성한 시민이 연대해서 투쟁하는 이야기도 훌륭하겠지만.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지 않나.

=아니다. 관심 있다. 켄 로치 같은 영화도 찍을 거다. (웃음)

-모욕받는 일에 둔감한 기택이 최종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방아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냄새와 관련해 기택의 자존감이 붕괴되는 일화가 켜켜이 쌓여간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그 에피소드들에 압력을 더해가는 스코어를 썼다. 그러나 그 모멘트들보다 결정적인 것은 박 사장이 돌아온 집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기택이 돌아가자 지금까지 살아온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겼을 때다. 폭우는 박 사장과 무관하지만, 이때 기택의 정신과 육체의 토대가 붕괴된다. 조그만 상자에 별것도 아닌 물건을 챙겨 턱까지 오른 물을 헤치고 나오는 송강호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이 사람의 근본이 무너지고 정신적으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영화에서 냄새는 씻지 않아서 나는 악취라기보다 후각 이상의 어떤 기운인가.

=슬프게 말하면 계급의 냄새다. 지하철 냄새도 아니고 지하철 타는 사람 냄새라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박 사장이 서슴없이 한다. 영화 전체에서 제일 불쾌한 대사다. 관객도 지하철을 타고 와서 영화를 볼텐데. 그러나 박 사장은 사적인 공간에서 아내에게 한 말이고 공적발언이 아니니 죽을죄를 진 건 아니다. 그것을 기택 식구와 관객이 듣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슬픔이다.

-서러운 부감에 대해서 앞서 말했지만, 원래 구부정한 송강호 배우가 달아날 때 소풍가는 아이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펄럭이며 뛰어가는데….

=감독은 동선만 정하고 주변에 부딪힐 물건 세팅만 거들었다. 송강호 형은 부감을 찍기 좋은 형태의 몸이다. 가령 최우식 배우의 부감은 재미없을 거다. 나무젓가락을 수직으로 찍으면 밋밋하듯. 강호 형은 수직으로 찍어도 자세의 표정이 풍부하고 카메라가 어디서 찍는지 동물적으로 아는 사람으로서 이미 여러 느낌을 생각했을 거다.

-많은 전작에서 송강호 배우 얼굴을 보여줬지만 기택은 음영이 더 짙고 붉은 기도 많이 올라온다.

=메이크업도 짙은 톤으로 했다. 피부만큼 계급이 드러나는 데가 없다. 기우는 가난해도 피부가 좋지만, 최소한 집안의 어른들에게서는 피부의 양극화가 드러나게 했다. 정말 노골적이다.

-이제 와서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고 후회하는 부분은 없는지.

=“민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기우의 대사가 너무 명시적인 것도 같지만 꼭 넣고 싶었다. 고다르가 그랬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말하고, 심지어 칠판에 적어도 된다고. (좌중 폭소)

-관객마다 인상적인 배우가 다르다는 것도 특징이다. 첫 관람에서 조여정 배우가 놀라웠다. 연기가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장화, 홍련>으로 염정아 배우를 재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연교는 반말과 존댓말, 영어를 무작위로 섞어 쓰고 아무데서나 잠이 든다.

=연교는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결코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맑고 귀엽고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일찍 결혼하고 임신해 맏딸과 나이차가 별로 안나는 맑고 귀여운 사람이다. 다만 험한 일을 겪을 기회가 없어 사람을 잘 믿어 사달이 난다. 남편이 차에서 여자 속옷을 발견했을 때 대뜸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박 사장이 집에서도 CEO의 위치라 아내인 연교는 부서장처럼 팀원의 실수를 대표에게 사과하는 광경이다. 아무 데서 누워 자는 습관은 연교가 가진 공간 크기에 대한 개념이 보통 사람과 다름을 보여준다. 우리라면 저런 광활한 집과 뜰에서 무방비하게 잠이 올까 싶은데 연교에게는 저택이 웅장하지 않고 아늑한 거다.

-기우와 기정은 유능하다. 충숙도 가정부로 채용되자 감쪽같이 교양 있는 가사관리자의 모습을 보인다. <기생충>을 보면서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대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갖게 되는 다재다능함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떠올랐다.

=주택가를 헌팅하러 다니다가 중급 외제차나 국산 고급 세단을 타고 오후 5시쯤 동네를 나서는 여성들을 보았다. 얼핏 상류층 부인 같은데 실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박 사장 가족의 집 내부는 전주 세트고 외관은 성북동인데, 열린 차고에서 나란히 서 있는 두 여성 중 누가 연교고 누가 충숙인지 스탭끼리 내기한 적도 있다. 정답률은 50%였다.

-기우는 반듯하면서도 최우식 배우가 예전에 연기한 <거인>의 영재처럼 필요하면 더 약한 사람을 이용할 수도 있는 ‘비전’ 있는 청년이다.

=기우는 사실 분노하는 장면이 없다. 한마디로 순진하고 교과서적인 스카우트다. 가난한 집 아들이지만 <문라이즈 킹덤> 같은 세계에 있고 가족 중 유일하게 기택을 대우해준다. 공격성이 전혀 없는 외모라 모종의 결심을 하고 돌을 들고가는 모습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떨어뜨리는 것이 필연으로 느껴질 정도다. 잠재의식의 발동일 수도 있다.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오버할 때가 있다.

-돌은, 계획은 기우를 사로잡은 저주 같다.

=기우는 돌을 들고 있지만 사실 깔려 있다. 그래서 침수된 집에서 기우가 수석을 건져낼 때 손으로 쥐고 드는 버전도 있었지만 결국은 잠수 스탭을 동원해 마치 돌이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찍은 테이크를 썼다. 기우와 기택의 관계가 영화의 정서적 축이다. 반지하 가족에게 내려진 가장 큰 형벌은 가족의 이산이라고 생각한다. 네 사람은 요즘 가족답지 않게 영화 내내 뭉쳐다닌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면 좁은 집에서 그토록 부대끼던 식구 중 둘은 다른 곳에 있고, 충숙은 귀가하는 기우를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맞는다.

-<기생충> 전체를 우화로 보는 입장에는 반대지만 묘사한 에필로그는 우화의 인상이 있다.

=편지 같은 보이스오버가 깔리는 에필로그는 내 예전 영화에 없던 부분이라 꼭 잘 찍고 싶었다.

광란의 헌팅

-장편 일곱편을 통틀어 가장 로케이션이 적은 영화다.

=두 가족의 집에서 85%를 찍었다. 15%가 야외 촬영이다. 단, 폭우 속에서 기택과 기정, 기우가 걸어서 집에 가는 대목에서 잠시 로드무비가 된다. 홍경표 촬영감독도 나도 로케이션 촬영을 좋아하는데 세트만 찍다보니 한이 맺혀 엄선을 거듭한 광란의 헌팅을 한 거다. (좌중 폭소) 로케이션으로 여정을 말하자면, 그날 밤 기택 가족은 전주세트 차고를 나와 성북동 언덕길을 내려와 자하문 터널을 통과해 후암동 도닥다리에서 남매가 싸우고 창신동 계단을 거쳐 북아현동에서 기택의 발목이 접질린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도 고양 세트에 도착했다.

-꼭, 그랬어야 했을까? (웃음)

=그래도 크랭크인 때 계획한 회차에 근접한 77회에 마무리지었다. 물론 비슷한 시나리오를 신인감독이 찍었다면 50회 미만에서 커트됐겠지만.

-통유리창 저택과 반지하, 밀폐된 지하까지 채광만으로 공간이 대비되는 이야기다. 박 사장이 기택의 운전을 시험할 때 고독한 남자 운운하자 무슨 커피 CF처럼 차 안에 황금색 빛이 떨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차 안 장면에서는, 촬영으로 기택이 박 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것을 곧장 보여주기도 한다.

=시험 운전 장면의 빛은 CG다. 선을 넘는 확 꺾이는 패닝은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 당연히 악센트였다. 강호 선배의 대사 처리도 이선균 씨의 측면 얼굴 리액션도 좋았다.

-빛과 반대로 문제의 지하실로 통하는 문의 검정 네모가 강렬하다.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올 때 점액질에 빠지고 떠오르는 듯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같지 않나. 감독은 문의 위치와 가로세로 비율과 사이즈만 주문했다. 그 주변에 미술감독이 조명이 내장된 진열장을 넣은 것이 주효했다. 암흑이 더욱 부각됐다. 다송의 트라우마가 발생하고 충숙의 일격이 드라마틱한 지점을 만드는 자리다.

-<옥자>보다 컷 수가 적어 보이는데.

=997컷으로 <설국열차> 다음으로 많다. <옥자>는 900컷이 좀 넘는다. 단, <기생충>은 <옥자>보다 상영시간이 12분 기니까 템포는 비슷하다고 봐야겠지.

-정재일 감독의 음악이 함량도 많고 <옥자>보다 더 존재감이 크다. 한 시퀀스를 온전히 몰아가기도 한다.

=연교가 ‘믿음의 벨트’를 말하고서 기택의 취직과 문광의 퇴출까지 이어지는 대목은 8분짜리 음악 시퀀스다. 보이스오버와 플래시백을 타넘으면서 모든 것을 아우른다. 현장편집에서 임시 음악은 비발디 곡을 썼는데 바로크풍 음악을 원했다. 바로크음악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기생충>의 스토리와 관련된 관점에서 바로크음악의 특징은 번듯하고 점잖은 척하는 기운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음악의 대위법이 어딘가 만물이 균형잡힌 척, 우아한 척하는 느낌이 있어서 기정 남매가 정장 입고 연기하고 기택이 “고독한 남자의 동행” 운운하는 상황과 딱 맞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짜파구리를 급히 끓이고 집을 치우는 대목도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그 대목은 숏들이 짧아 음악 템포가 더 빠르다. 두 스코어 모두 정확히 꽂혀 있는 엔딩의 깃발- 휴지를 들고 돌아보는 기택의 클로즈업과 충숙의 발길질- 에서 정확히 끝난다. 먼저 편집을 완료해서 정재일 음악감독이 세밀하게 쓰고 녹음했다.

-‘믿음의 벨트’ 음악 시퀀스는 흡사, 봉준호 감독 전작들에 한번씩 들어 있는 인물들이 구라를 푸는 장광설 시퀀스(<플란다스의 개>의 보일러 김씨 옛날 이야기, <괴물>의 강두가 머리를 다친 사연 등)를 대신하는 인상이었다.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해서는 사소한 것 두 가지를 묻고 싶다. 먼저 반지하 가족이 숨죽여 숨어 있게 되는 테이블의 디자인은 어떻게 나왔나.

=퍼니처 아티스트에게 이하준 미술감독이 형태를 요청해서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직사각형 목재 네개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단차를 두고 물려 있는 계단 형상이다. 그래서 아래쪽 공간의 높이도 높은 쪽이 있고 가려지는 쪽이 있다. 지하 벙커 바닥이 움푹한 것은, 주거공간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였다. 전쟁 시 잠깐은 몰라도 사람 살 곳은 아니라는 것을 하수로 같은 바닥으로 표를 내려고 했다. 평평하지가 않아 장비를 설치하는 그립팀이 고생했다.

-가정부로 입주한 후 충숙이 사용하는 방은 끝까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찍을 때는 선택을 하게 된다. 설정상 분명 존재하지만 스크린에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있다. 예컨대 <바톤 핑크>에서 존 굿맨은 한방에서 계속 나오지만 방의 내부를 우리는 보지 못한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양조위의 각자 배우자의 얼굴도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다. 문광이 썼고 충숙이 쓰는 방은, 문광이 알레르기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어느 쪽에 있는 지만 암시된다. 약을 먹으러 그가 달려가는 쪽이다. 가정부가 상주하는 방은 보통 자체 화장실도 딸려 있고 부엌에 붙어 있어 일어나자마자 일을 하고 2층으로 올라오지 않도록 동선이 정해져 있다.

반지하와 지하가 싸우다가

-<기생충>의 영감을 표현하면서 얼룩이라는 단어를 썼다. 거기에는 어떤 근본적인 죄책감도 포함이 돼 있는가? 감독 본인의 위치를 어디쯤이라고 느끼는가.

=내게는 박 사장에 가까운 환경의 지인도 있고, 10평짜리 집에서 살아가는 후배도 있다. 내 자신의 계급적 조건은 두 가족 중간일 것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기택의 가족에게 투사해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갔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려고 했다.

-약물이나 광기를 가진 인물이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설국열차>의 앞쪽칸 승객은 아편에 취해 놀고, <마더>에는 나쁜 일을 잊게 해주는 혈자리가 언급된다. <살인의 추억>에는 백광호라는 캐릭터가 있고 <옥자>의 동물학자(제이크 질렌홀)는 분열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기생충>에는 성적인 장면에서 마약이 잠시 언급되고 근세의 상태가 불안정하다.

=근세의 상태는 말로 규정하려고 할수록 실체에서 멀어질 것 같다. 보는 그대로다. 4대 보험 운운하며 처지를 설명할 때는 멀쩡하지만, 4년 이상 자발적 감금 상태였으니 정상적이라면 더욱 말이 안 된다. 지하 공간의 책상에 법전이 보이는데, 아마 고시공부를 하다가 숨어있는 동안 사법고시가 폐지됐는데 문광이 차마 그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게 아닐까 상상했다. 영화제 카탈로그나 해외 리뷰를 보면 내 영화를 두고 ‘absurd’(부조리한, 터무니없는)라는 형용사를 자주 쓰는데 정확한 뉘앙스가 뭘까 가끔 생각한다. 워낙 상황이 역설적으로 전개되고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이 등장하니 그것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것 같다. 세상이 광기에 휘말렸는데 미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사회적 주제를 가진 영화가 개봉하면 진영 논리를 기준으로 긍정적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유행이 있다. <기생충>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체념을 권하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한 친구가, 가난한 두 가족이 의기투합해 제대로 기생하는 결말은 어땠을까 하더라.

=기정과 충숙이 대화를 시도하려는 장면이 상식적인 접근이고 협상의 기회였는데 놓친 것이다. 그래서 잔잔하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공생과 상생이 가능했는데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마지막 파티의 혼돈을 보면, 충숙에게 공격당해 쓰러진 근세가 박 사장에게 이제야 뵙는다는 식으로 인사를 한다. 박 사장은 의도적으로 베푼 것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근세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다. 예스럽게 계급간 분노의 화살을 연결하자면 근세가 든 식칼은 다른 빈곤층 가정을 향한다. 떨어진 흉기를 주운 기택이 박 사장에게 칼끝을 돌리는 것이다. 분노가 지하에서 반지하로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바통 터치하듯이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기택의 ‘스파이크’를 만드는 배구의 토스 같은 행위가 근세의 냄새에 코를 쥐는 박 사장의 모습이다. 과해 보이기도 했지만 현장편집을 하면서 저걸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사장은 근세를 직접 조롱한 적이 없지만 지하철 타는 사람의 냄새에 관한 이야기를 기택이 들었고, 서로 맞대고 대화한 적이 없는데도 그런 식의 연결고리가 생긴 거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해고 노동자에게 찔린 사장을 연기했던 송강호 배우가 반대편 입장으로 이동한 셈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사회적 좌절을 인접한 계층의 사람들을 공격함으로써 표출하는 일이 많다. 정작 상층부의 힘을 가진 사람은 마주칠 일도 싸울 기회도 없다.

=재벌 총수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가맹점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이 싸운다. 그렇게 싸우고 한달 후 갑이었던 점주는 폐점하고 발레파킹을 한다. 점주는 반지하에,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살고 있다. <기생충>은 반지하와 지하가 싸우다가 우연히 그 칼끝을 상층을 향해 꺾어버린 경우인데, 뉴스에서는 동기가 불분명한 묻지마 살인으로 보도된다.

-<기생충>에서 가장 호러적인 부분은 기우가 기택의 소재를 알고도 당장 구할 염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연히 그 집을 살 때까지 다른 방법은 없다는 체념이 무섭다.

=기우는 다짐하는 아이다. 기우다운 선택이긴 하다. 자문을 구해봤더니 최저임금을 한푼도 안 쓰고 모아서 박 사장 저택 같은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실 마지막 내레이션을 쓴 편지는 부칠 방법도 없다. 원래 각본의 대사를 촬영하며 바꿨다. 아버지에게 건강을 당부하고 편지를 맺은 다음 그런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멍해지고, 기택에게 아들의 메시지가 도달조차 못함을 명백히 짚는 결말이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설국열차>가 관념적이지만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주고 <옥자>가 옥자와 아기돼지를 구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절망을 피한 것에 비해, 시대극이지만 <살인의 추억>과 <마더> <기생충>처럼 동시대 한국 사회를 다룬 봉준호 감독 영화들은 훨씬 절망적이다. 어째서일까.

=SF <설국열차>는 그야말로 희망적이다. 목동 메가박스에서 김혜자 선생님을 모시고 보여드렸는데 끝나고 선생님이 “봉 감독, 북극곰은 희망이죠? 난 희망을 느꼈어요”라고 물으셔서 “예, 맞아요” 하고 크게 대답했다. SF 장르의 미덕이기도 하고 우화로서 호기롭게 희망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옥자>는 과연 희망적인지 모르겠다. 두 소녀, 미자와 옥자는 검은 상자를 열어 보아선 안 될 것을 보고 피냄새를 맡고 돌아왔다. 구조한 아기돼지가 뛰어노는 모습을 희망이라기엔 도살당한 수십만 마리의 연상이 따라온다. 절망적이라기보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는 것이 도리어 더 절망적이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기생충>의 시나리오와 콘티북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는 시각효과, 특수효과가 많아서 반씩 나눠 스토리보드 작가와 함께 그렸고 <살인의 추억> <마더> <기생충>은 100% 내가 그렸다.

-몇달 후에는 외국어영화상에서 이름을 바꾼 오스카 장편국제영화 부문 후보지명으로 한차례 다시 떠들썩할 것 같다. 최근 비미국영화에 감독, 각본, 작품상 후보지명이 늘어나기도 했고 <설국열차>와 <옥자>의 지명도를 고려해 이미 유력하다고 손꼽는 미국 저널 기사도 봤다. 미국 배급사가 어느 정도 의지를 가졌냐가 중요한 변수일 텐데.

=우리쪽에서 말을 꺼낸 적은 없는데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노미네이션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뉴욕타임스> 등에서 예측 기사를 쓴 것 같다. 6천명 넘는 회원이 투표하는 오스카는 캠페인의 영향이 커서 지자체 선거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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