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기생충> 제작기] 최태영 음향감독, “스크린만의 리얼 사운드가 있다”
2019-06-12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기생충>이라는 밀도 높은 상상력의 구현에는 돌비애트모스 믹싱을 적용한 사운드의 힘이 컸다. 영화 초반부, 온갖 분주한 소리로 에워싸인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에서 벗어나 박 사장(이선균)의 주택 지역으로 이동하면, 갑자기 주변이 멈춘 듯 고요해지고 맑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생활감이 완벽히 표백된 공간음이 부의 척도처럼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렇게 <기생충>의 가난과 부, 지상과 지하, 현실과 장르는 사운드의 조화를 통해 비로소 관객의 몸과 마음에 체감된다.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기생충>까지 모든 작품을 함께한 살아 있는 봉준호 영화의 사운드인 최태영 음향감독은 자신의 일을 “감독의 느낌과 주관을 관객에게 객관적인 것으로 돌려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플란다스의 개>부터 <기생충>까지 창립 멤버로 있는 라이브톤 스튜디오에서 봉준호 감독과 20년을 함께했다. 많은 말 없이도 서로 척척 손발이 맞을 것 같다.

=함께 작업한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봉 감독님은 장황한 설명을 일체 안 한다. <괴물>(2006) 땐 괴물 모형을, <옥자>(2017) 땐 옥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걔네를 보며 그냥 계속 생각하라고 무언의 푸시를 하는 식이다. (웃음) <기생충>도 시나리오 처음 건네줄 때 감독님 첫마디가 “읽어보면 알 거야” 였다. 난 처음엔 거대 기생충이라도 나오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접한 시나리오는 전혀 달랐고 그 정교함을 가우디 건축물에 비교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 영화는 곧 공간’이라는 게 음향감독으로서 첫인상이었다. 사운드에 있어서 공간이란 곧 앰비언스(공간마다 고유하게 갖고 있는 특징적인 사운드) 차이다. 크리처가 없는 대신 생활 소음과 관련된 부분에서 이펙트가 많을 것 같았고, 감독님도 기택(송강호) 집과 박 사장(이선균) 집의 구분뿐 아니라 공간마다 시간대별로 앰비언스가 다 달랐으면 좋겠다고 디테일한 지점들을 요구했다.

-영화에서 인물의 냄새가 중요한 코드로 활용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인간에게 오랜 시간 깊이 배어 있는 것은 소리도 마찬가지일 텐데, 기택의 집과 박 사장의 집은 근본적으로 어떤 음향적 차이가 있나.

=기택 집에서 나오는 대사들을 잘 들어보면 공간의 에코가 아예 없다. 집이 매우 협소하다는 의미다. 박 사장 집으로 넘어가면 일단 대사에 공명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대리석을 비롯한 하드한 재질의 마감재로 꾸며진 매우 큰 공간. 관객은 소리를 통해서도 그 공간의 특성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기택 집과 달리 박 사장 집은 거실, 2층, 그 밖의 공간 등을 포함해 한집 안에서도 소리가 계속 달라진다.

-국내 최초로 돌비애트모스(영화 화면에 등장한 사물의 움직임과 위치에 따라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리는 최첨단 음향기술)를 도입한 <미스터 고>(2013), 넷플릭스가 최초로 돌비애트모스를 지원한 <옥자>를 거쳐 <기생충>에는 그간의 노하우가 집약돼 있으리라 본다.

=<기생충> 첫 미팅 때 감독님이 애트모스로 작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했다. 사실 막상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감독님 표현대로 ‘가족희비극’이어서 특별히 애트모스를 할 여지가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애트모스 믹싱을 적용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8)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내 스타일상 <로마>의 앰비언스는 다소 과하고 인위적인 감도 있었다. 공간음이 너무 과도하게 들린달까. 애트모스로 한다고 해서 너무 힘줘서 표현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밸런스와 방향감에 집중하자는 게 <로마> 이후 내 결정이었고, 그게 무슨 소리든 ‘이유 있게’ 들려주고 싶었다.

-영화 시작 전에 종소리가 6번 나온다. <옥자>부터 시작된 봉준호 애트모스 영화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각 방향의 소리를 들어보면서 스피커의 볼륨과 튜닝 상태를 체크하는 용도다. 이걸 체크하려고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 칸에서 귀국한 직후, 언론배급 시사회 전날 새벽에 같이 CGV용산아이파크몰 상영관을 돌아다니면서 부분적으로 테스트 상영을 지켜봤다. 연교(조여정)가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인력을 믿는다는 의미로 “믿음의 벨트”를 언급하는 장면이 사운드의 엑기스가 모여 있는 지점이라 그 장면을 중점으로 봤다. 롱테이크로 대사가 쉬지 않고 나오는 데다 몽타주도 복잡하고 전체적으로 완전히 혼을 빼놓는 오케스트라가 펼쳐진다. 과거에 <플란다스의 개> 작업할 때 영화 시작 전에 “개소리를 넣자”라고 해서 정말 뭔 소리인가 했던 적도 있었다. (웃음) 알고보니 그렇게 스피커를 확인하자는 말이었고, 덕분에 당시 낙원상가에 있던 허리우드극장에 같이 가서, 오른쪽 스피커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같은 날 오전에 내가 작업한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 시사회가 있었던 터라 일찍 알지 못한 게 어찌나 안타깝던지….

-기택네 반지하 공간이 묘사되는 영화 첫 장면부터 서민적인 동네의 생활 소음이 사방에서 생생하게 들려온다.

=오프닝에서 화면이 열리는 순간부터 서로 다른 방향에서 기택네를 에워싼 소리들이 밀려들어온다. 젊은 남자가 옆집 세탁소에서 따지는 소리도 있고, 왼편에는 동네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잡담하는 소리도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첫 장면의 층간소음이다. 기택네 인물들과는 싱크가 안 맞는, 화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천장 스피커에서 나온다. 아침 시간에 윗집에서 돌아다니는 발소리가 반지하 집에 유독 쿵쿵대며 울리는 거다.

-현실에 있는 진짜 소리와 영화에서 관객이 리얼하다고 느끼는 소리는 따로 있다. 가짜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느낀다고 할까. 그런 관점에서 <기생충>에서 영화를 더 그럴듯하고 믿게 하는, ‘만들어낸’ 소리는 무엇인가.

=나도 처음엔 무조건 사운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스크린만의 리얼 사운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엔지니어가 스토리 내에서 자기 귀를 자유자재로 뗐다 붙였다 할 수 있어야 함을 배웠다. 객관적 거리에 얽매이지 말고 인물의 감정에 기반해 귀가 주관적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와 박 사장의 딸 다혜(정지소)가 과외 중에 스킨십을 하다가 연교의 발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그게 말이 되나? 판잣집도 아니고 고급 주택인데. 1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나 복도 지나는 소리가 그렇게 잘 들릴까? 현실이라면 관객에겐 연교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고, 기우와 다혜의 리액션만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재미가 없다. 긴장 상태인 과외 선생과 학생의 귀가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에 민감해져 있다는 사실을 사운드로 확실히 표현하는 게 더 흥미진진하다.

-<살인의 추억>(2003)의 송강호에서 <기생충>의 송강호까지, 배우 송강호의 소리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강호 배우만큼 후시(녹음)를 동시(녹음)처럼 하는 배우가 또 없다. 전체 신을 새로 녹음하는 경우가 아니라 신 중간에 한컷만 따로 후시를 들어가는 경우에도 전후로 연결되는 컷과 어떤 이질감도 없는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이번 <기생충>에서도 폭우 신이나 자동차 이동 신 등에서 후시녹음을 할 때 역시 그 경지 그대로였다. 정말 놀라운 배우다.

● 내가 꼽은 이 장면!_ 비가 돌처럼 쏟아지던 순간

“기택과 아들, 딸이 폭우 속에서 비를 맞고 집까지 걸어오는 긴 시퀀스는 사운드 믹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장면이다. 몰아치는 빗소리에 음악도 강한 상황, 처음 내가 해석한 버전은 음악이 좀더 셌는데 파이널 믹싱 때 감독님이 빗소리를 더 강하게 올리면서 컷마다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다. 사운드에 있어서 봉준호 감독은 ‘느낌의 트리밍’을 중시한다. 대사, 음악, 이펙트, 앰비언스 등을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조율하는 과정이다. 어떤 컷에서는 음악과 대사가 같은 볼륨으로 쭉 이어지고, 어떤 컷에서는 극단적으로 앰비언스가 싹 사라지기도 한다. <기생충>은 특히나 400채널 이상의 콘솔에서 정말 많은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데 봉 감독님은 이 소리들을 꼼꼼하게 지휘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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