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첫장을 열기 부담스러운 두꺼운 소설도 여름밤에는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7월의 <씨네21> 북엔즈에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이 꽂혔다. 데이비드 I. 커처의 <모르타라 납치사건>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손으로 영화화가 결정된 논픽션이다. 교황청이 6살 난 유대인 소년을 납치하고, 이 사건은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억압과 19세기의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숨가쁘게 전개된다. 사카이 마사토 주연으로 2013년 방영된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는 방영 당시 높은 시청률과 함께 많은 유행어를 남겼다. 원작 소설 역시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 은행에서 일하는 주인공 한자와의 눈을 통해 대기업 도산을 지켜본다. 드라마가 한자와라는 인물에 집중했다면 원작 소설은 그 주변 사회상을 더 세세하게 그려내 90년대 어지러운 일본이 손에 잡히듯 그려진다. 윤성희의 장편소설 <상냥한 사람>은 아역스타였지만 드라마 하나에 출연한 이후 내내 내리막길 인생을 살았던 ‘형민’의 일생을 통해 누구나의 삶에 닥칠 법한 고비고비를 들여다본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때로는 재수 없게 불운을 만났던 형민은 토크쇼에 나와 인생을 돌이켜본다. 과학도 출신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SF라는 장르 속에서 미래와 현실을 연결시킨다.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을 탐험하고, 로봇과 어울려 사는 세상이 되어도 거기에 인간이 산다면 차별과 소외, 폭력이 잔존할 것이다.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우주 속에서 풀어내는 작가의 문장이 7편의 단편에서 반짝인다.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일본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닐까. ‘뇌이식’을 소재로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사소한 변화>는 역시나 치밀한 인간성에 대한 분석과 곳곳에 배치된 반전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뇌과학이라는 소재 안에서 ‘개인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는 소설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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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소설을: <상냥한 사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한자와 나오키1,2>, <모르타라 납치사건>, <사소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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