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①] <쏘리 위 미스드 유> <배신자> <파이어 윌 컴> <야구소녀> <커밍 홈 어게인>
2019-09-25
글 : 장영엽 (편집장)

<쏘리 위 미스드 유> Sorry We Missed You

켄 로치 / 영국 / 2019년 / 100분 / 아이콘

‘아이콘’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처음 선보이는 섹션으로, 지역 구분을 뛰어넘어 거장 감독의 신작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필두로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그네츠카 홀란드, 올리비에 아사야스, 브루노 뒤몽,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신작을 선보인다. 아이콘 부문의 첫 번째 추천작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2016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켄 로치의 신작이다. 수년 전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최근 강력한 정서적 파급력을 지닌 영화들을 연달아 만들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영화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건 그의 주요 관심사인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폐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쏘리 위 미스드 유>는 남자주인공 리키가 택배회사에서 임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뒤 그와 가족들이 경험하는 삶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자신의 차로 택배를 운송한다는 점에서 리키의 작업 방식은 꽤 자유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계를 뛰어넘는 택배량과 끊임없이 울리는 호출 신호는 리키에게서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를 빼앗고, 자존감마저 무너뜨린다. 그의 고단함은 가족들에게도 서서히 전이된다. 리키의 운송업을 위해 차를 포기한 사회복지사 아내는 매일 고된 출근을 해야 하고, 부모의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은 황폐해진다. 통렬한 엔딩 신에 이르면 <쏘리 위 미스드 유>라는 제목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배신자> The Tralitor

마르코 벨로키오 /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브라질 / 2019년 / 152분 / 아이콘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실화 기반의 마피아 범죄영화. <배신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피아 소탕작전으로 알려진 ‘대재판’(Maxiprocesso)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맥시 재판’이라고도 불리는 대재판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이탈리아의 젊은 법조인이 ‘반마피아법’에 근거해 수백여명의 마피아 단원을 검거하고 형을 집행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 재판이 가능했던 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일부 마피아 고위 간부들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인데, <배신자>는 그들 가운데 가장 저명한 인물이었던 토마소 부세타의 시선으로 혼돈의 시대를 바라본다. 영화는 마약 사업에 있어서 협력을 도모하는, 마피아 세력간의 휘황찬란한 파티의 밤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살얼음 같던 평화도 잠시, 곧 세력간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시작된다. 가족들과 함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터전을 옮겨 마약 사업을 이어가던 토마소는 이탈리아에 남았던 아들과 동료가 라이벌 토토 리나에게 살해당하고, 그 역시 경찰에 검거되며 고초를 겪는다.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마피아에 등을 돌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토마소는 험난하고 고독한 밀고자로서의 운명을 선택한다. 영화는 토마소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건조한 시선으로 30여년에 걸친 한 남자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선악의 경계를 오가는 회색지대의 마피아를 연기한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의 명연이 인상적인 작품. 마피아들의 고성과 비명이 오가는 법정(교도소를 개조한)에서 토마소가 증언하는 시퀀스가 압권이다.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파이어 윌 컴> Fire Will Come

올리비에 락스 / 스페인, 프랑스, 룩셈부르크 / 2018년 / 85분 / 월드 시네마

교도소에서 2년을 복역한 뒤 풀려난 방화범 아마도르의 일상을 좇는 <파이어 윌 컴>은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이 불타오르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진하는 영화다. 공교롭게도 방화범은 인적 드문 숲속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나무가 울창한 숲속을 끊임없이 배회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 내내 오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모자의 일상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숲속을 거니는 어머니와 아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인간과의 소통이 거의없는 이들의 삶은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런 모자의 일상에 파란을 일으키는 건 출소한 아마도르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다. 마을 남자들의 비웃음과 여자 수의사와의 좌절된 로맨스는 아마도르의 마음속에 분노의 불씨를 키운다. 스페인 태생의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락스는 부모의 고향이자 유년 시절의 많은 부분을 보냈던 스페인 북서부 산악 지역 갈리시아를 배경으로 장대하고 유려하며 감각적인 자연의 미장센을 선보인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조만간 올리비에 락스를 더 큰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야구소녀>

최윤태 / 한국 / 2019년 / 105분 /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한때 천재 야구소녀로 불렸던 수인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남학생들에게 뒤처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 상대도 되지 않았던 리틀 야구단 동기가 어느새 키 큰 소년이 되어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만두라고 말할 때에도 수인은 절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바람은 ‘여자’ 야구선수가 아니라 프로야구팀의 일원이 되어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안 되는 거면 빨리 포기해. 그거 부끄러운 거 아냐.” 수인의 엄마가 딸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야구소녀>는 지금까지 어떤 여성도 이루지 못한 프로 입단의 꿈을 위해 의연하게 전진하는 한 소녀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패배의 감정에 주목하기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성취의 순간을 보여준다는 데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근성의 야구소녀로 분한 이주영의 연기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훔친다.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웨인 왕 / 영국, 한국 / 2019년 / 86분 / 갈라 프레젠테이션

<조이 럭 클럽>(1993)의 웨인 왕이 돌아왔다. 그의 신작 <커밍 홈 어게인>은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이창래의 자전적 에세이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가정이 배경으로, 새해 전날,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돌보던 아들이 어머니가 즐겨해주던 음식을 직접 만들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긴다는 내용이다. 아들의 기억 속 어머니는 농구선수로 활약하던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가족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지만 때로는 쓸쓸하고 공허한 속마음을 아들에게 내비치는 사람이었다. 기억 속 어머니와 가족들의 다양한 일화가 삶의 말미에 다다른 어머니의 현재와 교차하며 먹먹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서 슬픔은 사소한 디테일로부터 비롯되는데, 어머니와의 추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한국 음식이 극의 주요 소재로 들어온다. 서로에 대한 이들의 유대는 “갈비뼈에 붙은 살”처럼 결코 분리되지 않는 무엇이다. 영미권 영화에서 자주 만나볼 수 없었던 재미동포 가정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