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③] <레미제라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아저씨 x 아저씨> <리틀 조>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
2019-09-25
글 : 김현수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레주 리 / 프랑스 / 2019년 / 102분 / 오픈 시네마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1995)가 25년 만에 되살아난 것 같은 영화. 프랑스 파리 외곽 몽페르메유를 배경으로,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부패한 경찰과 종교, 인종에 따라 조직과 구역을 나누어 공생하는 각종 범죄 조직이 빈민가를 장악하고 있는 와중에 벌어지는 어떤 참극을 다룬 영화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과 배경 공간만 공유할 뿐 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21세기 도시 빈민층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범죄에 휘말려 희생양이 되는 비극적인 현실을 장르영화 문법으로 풀어낸다. 아이들과 범죄 조직, 경찰 조직이 뒤엉켜 벌이는 추격전을 비롯해 후반부 절정에 달하며 전세를 뒤집는 장르적 반전의 쾌감은 아이들의 분노가 어떻게 투쟁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2005년에서 2006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던 경찰과 청소년의 대립을 떠올리게 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국가의 이민정책과, 공권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만화적이면서 동시에 신화적으로까지 보이는 엔딩의 어떤 이미지는 서늘하면서도 서글프다.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

셀린 시아마 / 프랑스 / 2019년 / 119분 / 월드 시네마

서서히 타올랐으나 결코 서로의 마음을 뜨거운 채로 탐하게 놔둘 수 없었던 시대, 자신들을 찾아온 사랑의 형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어떤 연인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룬 멜로영화다. 1770년, 젊은 화가 마리 안느는 결혼을 앞둔 여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녀가 머무는 어느 섬의 영지에서 며칠간 머물게 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결혼을 위한 초상화를 그리는 걸 싫어한다는 이유로 화가 신분을 숨기고 하녀로 위장한 터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 곁에서 그녀가 지닌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친분을 쌓는 동시에 그녀의 결혼을 종용하는 도구로 사용될 초상화 완성에 매진해야 한다. 영화는 화가로서 그저 피 사체를 관찰하는 듯 시작된 마리안느의 냉정한 시선이 점점 엘로이즈라는 인물의 외모만이 아닌 내면까지 파고들면서 벌어지는 불가해한 화학작용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결혼이란 쓸데없는 관습에 갇혀 사그라들 위기에 처한 엘로이즈의 매력은 영화 전체를 마치 유령처럼 휘감고 돈다. 실제 편집이나 음악의 쓰임새가 때로 호러영화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마음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방식 중 하나다. 노에미 메를랑과 아델 하이넬 두 배우의 깊고 그윽한 표정을 내밀하게 관찰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했다.

<아저씨 x 아저씨> Suk Suk

레이 영 / 홍콩, 중국 / 2019년 / 92분 / 아시아영화의 창

숨쉴 틈 없이 빼곡한 홍콩의 평범한 주택가에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결코 평범한 노년을 누릴 수 없는 몇명의 사람들이 산다. 은퇴를 앞둔 택시기사 박과 손녀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할아버지 호이도 그런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게이란 사실을 가족에게 철저하게 숨긴 채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더이상 힘차게 걸을 수도 없는 나이에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뜨거운 사랑도 현실 문제 앞에서는 싸늘하게 식어버리곤 하는데, 이를테면 호이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동성애자 전용 노인주택 마련 계획을 위해 투쟁하는 데 앞장서려 하지만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아들의 싸늘한 시선 앞에서는 자꾸만 움츠러든다. 그것은 낮에는 엄격한 가부장으로, 밤에는 로맨티스트로 살아가는 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으슥하고 케케묵은 사우나를 전전하며 데이트를 즐길 수밖에 없는 두 노인의 애틋한 살결을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아내려 한다. 낡은 홍콩 택시의 차창에 비친 두 사람의 그윽한 눈빛 위에 현재 홍콩의 혹독한 정치·경제 상황이 오버랩된다. 낡고 병든 홍콩과 사랑에 관한 찬가.

<리틀 조> Little Joe

예시카 하우스너 /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 2019년 / 105분 / 월드 시네마

과학자 앨리스가 개발한 꽃은 묘한 기능을 지녔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따서 이 꽃에 ‘리틀 조’라는 별명을 붙인다. 같은 연구기관의 동료들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걱정을 수반한 시선을 보내는데 이 꽃을 둘러싸고 조금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리틀 조>는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기묘한 SF다. 사람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꽃을 개발하던 과학자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 무비이자 일하는 여성에 관한, 모성에 관한 영화로도 읽힌다. 물론 에일리언 보디 스내처 무비 카테고리에도 들어간다. 그리고 감독의 전작 <루르드>(2009)가 다루는 믿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절제된 카메라와 과장된 프로덕션 디자인, 1970년대에 활동했던 일본 작곡가 이토 데이지의 그로테스크한 음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앨리스 역의 에밀리 비첨과 그의 조력자 크리스 역의 벤 위쇼가 극의 서스펜스를 쥐고 흔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는 에밀리 비첨의 연기에 여우주연상으로 화답했다.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 The Gangs, The Oscars, and the Walking Dead

까오 핀촨 / 대만 / 2019년 / 106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영화를 너무나 찍고 싶었던 영화광 출신 갱스터의 포복절도 영화 촬영기를 다룬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는 쉽게 말해 ‘대만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같은 영화다. 어려서부터 좀비영화나 피칠갑 호러영화 같은 걸 찍고 싶어 했던 두 친구는 궁핍한 생활에 돈이 없어 예식 촬영 등으로 소일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이들이 이러저러해서 몸담게 된 조직 보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검은돈이 들어간 영화 제작 프로덕션이 제대로 꾸려질 리가 없다. 보스는 자신이 아끼는 애인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앉히라고 요구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영화 제작 축하파티 현장에서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다. 대만 장르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는 호러영화 제작 현장의 코믹한 풍경과 범죄조직의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을씨년스러운 뒷골목 풍경이 만나 벌어지는 불협화음을 리드미컬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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