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②]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니나 내나> <마리암> <#존 덴버> <미스터 존스>
2019-09-25
글 : 이주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김동령, 박경태 / 한국 / 2019년 / 115분 /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기지촌의 여성과 공간에 천착해온 김동령, 박경태 감독이 <거미의 땅>(2012)에 이어 다시금 같은 주제, 다른 이야기를 시도한다. <거미의 땅>에도 등장했던 의정부 미군 기지촌에서 살아온 박인순씨가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주인공이다. “옛날옛날에 수락산 북쪽자락 아래 이름 없이 죽은 자들이 묻힌 야산이 하나 있었다.” 영화는 마치 전설이나 민담을 들려주는 듯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후 살아남은 여자 인순과 죽어서 유령이 된 여자, 그리고 이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이야기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미군 위안부로 일하다 이름도 무덤도 사연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무연고 여성들이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유령이 되어 떠돌자 저승사자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준다는 이야기. 기록되지 못한 숱한 기지촌 여성들의 생전과 사후를 고집스럽게 기억하기 위한 이야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지우는 형식적 실험이 흥미롭다.

<니나 내나>

이동은 / 한국 / 2019년 / 101분 /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환절기>(2017), <당신의 부탁>(2018)을 만든 이동은 감독의 세 번째 ‘가족’영화다. 오래전 집을 나간 엄마에게서 “보고 싶다”는 문장이 덩그러니 적힌 엽서가 도착한다. 발신지는 파주의 병원. 미정(장혜진), 경환(태인호), 재윤(이가섭) 삼남매는 부산에서 파주까지 엄마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사고로 세상을 뜬 막내와 그 뒤 집을 떠난 엄마의 이야기는 가족에게 일종의 금기어였지만, 예상치 못했던 여행길에서 이들은 사랑했던 가족의 부재가 남긴 상처를 돌아본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인물은 가족의 불행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늘 가족 걱정을 하는 미정이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가족 때문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현실감 100%의 대사로 표현된다. 이때 부산 사투리가 주는 말맛이 상당하다. 참고로 제목인 ‘니나 내나’는 ‘너나 나나’의 경상도식 표현이다.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쳐야 마땅한 서사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이동은 감독의 연출이 한결 무르익은 느낌이며, <기생충>에서 충숙으로 활약했던 장혜진 배우의 연기가 더없이 사랑스럽다.

<마리암> Mariam

샤리파 우라즈바예바 / 카자흐스탄 / 2019년 / 76분 / 아시아영화의 창

카자흐스탄의 시골 마을. 눈바람이 불던 어느 날, 말 타고 도시에 간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마리암은 경찰에 남편 실종 신고를 하지만 경찰은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네 아이의 엄마인 마리암은 홀로 아이들을 돌보고 소 목장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 남편에 대한 걱정은 당장 먹고살 일에 대한 걱정으로 바뀐다. 마리암은 생계를 위해 소떼도 떠나보내고 말도 팔고 남편의 죽음까지 팔아본다. 경찰이 된 동창생의 도움으로 남편의 사망신고를 완료하고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시작하는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창생의 끈적한 태도도 왠지 싫지 않다. 영화를 가득 채우는 건 카자흐스탄의 황량한 풍경과 억센 생명력을 지닌 여인의 표정이다. 메마른 겨울 땅처럼 굳어 있던 마리암의 얼굴에 화색이 돌 무렵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해둔다. 가사와 육아라는 울타리 너머의 세계를 맞닥뜨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카자흐스탄의 여성 신인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존 덴버> #John Denver Trending

아덴 로드 콘데즈 / 필리핀 / 2019년 / 96분 / 뉴커런츠

<#존 덴버>는 SNS를 통해 확산된 악의적 루머 혹은 가짜뉴스가 어떻게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14살 소년 존 덴버. 학교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하다 일찍 집에 가버린 존 덴버는 그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다. 한 친구가 존이 자신의 아이패드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그에 동조한 친구들은 존의 가방을 열어보려 하고 억울한 존은 친구를 패버린다. 존의 폭행 영상은 고스란히 페이스북에 업로드된다. 경찰까지 진상 조사에 나선 상황이지만, 인터넷상에선 더 빠른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좋아요’와 ‘공유하기’가 이어지고, 존이 아이패드를 훔쳤다는 거짓 목격자까지 등장한다. 가짜는 진짜로 둔갑하고 사회적 타살은 손쉽게 이루어진다. <#존 덴버>의 주제가 더욱 힘을 받는 건 10대 아이들을 이야기의 주인공, 가해자와 피해자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SNS를 경유할 때 폭력은 교묘해지고 잔인해진다. 아이들은 죄책감 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사회적 타살에 동조했음에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전통과 미신이 여전한 필리핀 시골사회의 모습과 SNS를 통해 전세계와 접속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결하는 것도 흥미롭다.

<미스터 존스> Mr. Jones

아그네츠카 홀란드 / 폴란드, 우크라이나, 영국 / 2019년 / 119분 / 아이콘

<미스터 존스>는 웨일스의 젊은 저널리스트 개러스 존스의 실화를 그리는 영화다. 개러스 존스는 조지 오웰이 그 유명한 정치 우화 <동물 농장>을 쓰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3년. 개러스(제임스 노턴)는 스탈린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세계경제가 불황을 겪고 있는데도 소비에트연방이 새로운 공장이며 비행기 등을 생산해내는 것이 의아했던 개러스는 자금이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지 취재하기로 한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개러스는 즉각 감시의 대상이 되고 어렵게 우크라이나에 도착해선 스탈린 정치의 실체를 목도한다. 가난과 허기가 마을을 덮쳤고, 길가에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스탈린에 의한 수탈로 우크라이나 사람 수백만명이 기근으로 사망한 ‘홀로도모르’를 목격한 개러스는 이 사실을 영국에 알린다. 신화화된 스탈린 정권의 이면을 파헤친 개러스 존스의 실화는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에 의해 강렬한 역사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전장의 로망스>(1985),<유로파 유로파>(1990), <토탈 이클립스>(1995) 등으로 유명한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서 히틀러와 스탈린이 살았던 광기의 시대를 스크린에 종종 옮겨왔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개러스 존스에 매료된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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