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커>의 모든 것②] <조커>에 영향을 끼친 영화들
2019-10-02
글 : 김현수
찰리 채플린에서 마틴 스코시즈까지

토드 필립스 감독이 <조커>를 구상할 무렵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몇편의 영화들을 모았다. 이미 많은 언론인터뷰에서 감독이 직접 언급한 작품도 있지만 <조커>를 보고 나면 여기 소개하는 영화들을 한번쯤 다시 찾아보고 싶어질 것 같다. <조커>가 지닌 고통과 비극의 뿌리가 지난 영화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그려졌는지 되짚어보는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웃는 남자> (1928)

<웃는 남자>

<조커>의 아서(호아킨 피닉스)가 보여주는 페이소스 짙은 억지웃음의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독일 표현주의 영화 <웃는 남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이 영화는 <노틀담의 꼽추> 등과 결을 같이하는 작품으로 토드 필립스 감독에 따르면, <조커>의 아서를 개발할 때 <웃는 남자>에서 주인공 그윈플레인(콘래드 베이트)이 보여준 양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잡아당겨 웃음짓는 모습이나 행색을 참고했다고 한다. <웃는 남자>와 <조커>의 시각적 유사성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서만의 레퍼런스였다기보다는 DC 코믹스 캐릭터 조커를 만들 때 이미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아버지의 반역죄로 인해 왕으로부터 영원히 웃는 얼굴로 박제당하는 형벌을 받은 그윈플레인은 자신의 처지를 장기로 살려 유명한 서커스 광대가 되고, 눈먼 여인 데아(메리 필빈)와 애틋한 사랑도 이어나간다. 그윈플레인의 운명은 자신의 의지나 감정과 상관없이 웃음이 터져버리면 멈출 수가 없는 병리증상을 앓고 살아가는 아서의 비극적인 삶과 연관 있다. 둘은 “난 내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했어.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건 코미디야”라는 예고편 속 아서의 대사가 지닌 삶의 무게를 공유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물론 영화 속 두 인물의 선택과 결과는 전혀 다르다.

<모던 타임즈> (1936)

<모던 타임즈>

앞서 <웃는 남자>와 <조커>의 캐릭터를 비교하며 언급한 아서의 대사는 실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으로 알려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에서 따온 대사다. ‘해피’라는 닉네임의 광대로 일하는 아서의 복장과 그가 자주 하는 동작 몇 가지는 평생을 광대로 살았던 찰리 채플린 고유의 캐릭터 ‘리틀 트램프’ 이미지와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아티스트>(2011), <팬텀 스레드>(2017)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그리고 제트스키를 부상으로 챙겼던) 마크 브리지스 의상감독은 해피의 복장을 디자인할 때 일부러 조그마한 모자를 씌움으로써 고전적인 찰리 채플린 이미지를 오마주했다. 또한 <조커>의 티저 예고편에 삽입됐던 곡은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의 배경음악으로 작곡했던 연주곡으로, 이 곡에 가수 존 터너와 제프리 파슨스가 가사를 입혀 <Smile>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냇 킹 콜이 부른 곡이 가장 유명하며 예고편에 쓰인 노래는 지미 듀란티 버전이다. 극중 아서는 고담시의 시장 후보로 출마한 토머스 웨인을 만나기 위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도 한다. 일종의 무성영화 같은 연출로 이뤄졌다는 점도 <조커>와 찰리 채플린의 연관성을 설명해주는 특징들이다.

<택시 드라이버> (1976)

<택시 드라이버>

“갈수록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말하는 <조커>의 아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웃음 유발 노하우를 노트에 기록한다. 거기엔 비뚤어진 글씨체로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이란 우울하면서도 반사회적인 메시지를 적어놓는다. 이는 “언젠가는 도시의 쓰레기들을 씻겨버릴 비가 내릴 것”이라고 일기에 쓰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라는 캐릭터와 닮아 있다. 도시 빈민층의 한 사람으로서 극도의 외로움과 고립감, 열등감 등을 갖고 살아가는 두 인물은 우연히 권총을 손에 넣으면서 본격적으로 비극 속으로 빠져든다는 플롯상의 유사한 특징도 공유한다.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데 있어 두 사람은 끔찍하리만치 닮았다. 아서는 같은 건물에 사는 소피(재지 비츠)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접근하는데 트래비스 역시 벳시(시빌 셰퍼드)라는 여인에게 대뜸 찾아가 데이트를 신청한다. 벳시는 트래비스에게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The Pilgrim, Chaper 33>이란 곡의 “그는 예언자요, 약쟁이요”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며 “상반된 면을 지닌 사람 같다”고 말하는데 이를 <조커>의 아서에게 한다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어 보인다. 현재 북미에서는 <조커>의 개봉을 앞두고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 <조커>와 <택시 드라이버> 사이의 이같은 연관성은 범죄자 존 힝클리의 사연으로도 이어진다.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이었던 조디 포스터의 사랑을 얻고 싶었던 존 힝클리는 망상에 사로잡혀 영화 속 트래비스가 했던 행동과 똑같이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

<코미디의 왕> (1983)

<코미디의 왕>

<조커>의 각본은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을 적절하게 배합해 만든 결과물 같다. 아서를 만들 때 <웃는 남자>와 찰리 채플린에게서 외형적인 디자인을 가져왔다면 반사회적 성향인 아서의 내면과 그가 겪는 비극적인 순간은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 플롯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을 웃기는 재주가 없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망생 루퍼트(로버트 드니로)가 유명 TV쇼의 사회자 제리 랭퍼드(제리 루이스)를 납치해 벌이는 어이없는 범죄는 <조커>의 아서가 벌이는 행동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코미디의 왕> 개봉 당시 미국 사회에서도 <택시 드라이버>와 함께 모방범죄의 위험성이 계속 언급되었다. 심지어 마틴 스코시즈 감독 본인도 과대망상증 환자인 루퍼트란 인물의 위험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조커>의 아서가 엄마와 함께 살며 코미디 쇼를 연습하는 장면 등은 <코미디의 왕>의 많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아서가 존경하며 즐겨 보는 머레이 프랭클린 쇼의 주인공으로 로버트 드니로를 캐스팅한 것 역시 마틴 스코시즈 영화들에 보내는 헌사와도 같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의 대본을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 보내 제작자로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은 적 있다. 스코시즈 감독은 <아이리시맨>(2019) 제작 때문에 직접 관여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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