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커>의 모든 것⑥]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 "좋은 이야기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2019-10-02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실없이 웃긴 코미디 감독이라고만 생각했던 토드 필립스가 어둡고 우아하며 전복적이기까지 한 <조커>로 돌아왔다. <행오버> 삼부작을 만든 감독의 영화로 줄긋기 어려운 <조커>에 대해 토드 필립스 감독과 베니스국제영화제 진출 소식에 앞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 밖 정치적 상황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던 필립스 감독과 나눈 2번의 인터뷰를 정리해 전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커는 히스 레저다. <조커>를 시작할 때 이런 사실이 걱정되지는 않았나.

=글쎄, 히스 레저가 조커를 연기할 때 아마 걱정스러웠을 거다. 그전까지 가장 알려진 조커는 잭 니콜슨이었으니까. (웃음) 사실 걱정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지만 이 문제는 아니었다. 영화를 시작할 때 오히려 신났던 건 조커에게 어떤 규칙도 없다는 거였다. 거부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에 잭 니콜슨부터 자레드 레토에 이르기까지 매료됐을 거다.

-<조커>의 각본을 쓰고 연출도 했다. 각본을 쓸 때 어떤 특정한 장면을 마음에 그려두고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한 장면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나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각본가인 스콧 실버와 나는 몇달 동안 첫 장면을 쓰기 위해 이야기한 뒤에 아웃라인을 정할 수 있었다. 각본을 쓸 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함께 점심을 먹었고 되도록 3시간 정도는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한 장면씩 써나갈 수 있었다.

-코믹스로 원전을 확장하면 엄청난 수의 레퍼런스가 있었을 것 같다.

=특정한 코믹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로 했고, 각자 조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억에 근거하기로 했다. 어떤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기보다는 여기저기서 참고했다. 그중 킬링 포인트는 조커가 코미디언이었다는 설정이다. 그 아이디어에서 시작했고, 코믹스의 톤을 유지하면서 유니크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워너의 DC 유니버스 안에 이미 조커가 존재하는데, 새로운 조커를 창조하는 것을 설득하기 어렵지 않았나.

=물론 어려웠다. 75년 이상 조커는 정립된 캐릭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캐릭터의 기원에 대해 영화를 만들겠다니,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안 돼’라고 말할 근거가 충분했다.

-코믹스 원작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느껴졌다.

=지난 10년간 할리우드영화는 코믹스 원작이 대세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잘 만들어진 영화가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좀더 현실적인 설정에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너브러더스에 현존하는 DC 유니버스와는 좀 다른 “DC 블랙 디비전”(토드 필립스가 작명한 디비전으로, 실제하는 레이블은 아니다.-편집자)을 제안했고, 그 첫 번째로 <조커>를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컨셉인지 수없이 설명해야 했다.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 역의 첫 번째 후보였나.

=<조커>의 각본은 그를 위해 썼다. 처음부터 그랬다.

-호아킨 피닉스가 어떤 배우이기에.

=두려움 없이 연기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조커를 연기한 배우들을 떠올리면 그들은 공통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대담하다. 호아킨에게서도 그 점이 보였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올인할 배우를 원했다. 호아킨은 연기에 모든 것을 다 건다. 그는 불가능할 것이 없는 아름다운 배우다. 그가 나쁜 연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그는 우리 세대의 가장 훌륭한 배우 중 하나다.

-아서(조커)는 야위고, 발작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늘 등을 굽히고 앉아 있다. 이런 디테일도 의견을 나눴나.

=영화 속의 어떤 것도 그냥 일어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논의를 거쳐 완성됐다. 아서의 신발, 아서가 피우는 담배까지도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이 장면에서는 그가 왜 담배를 피우는지, 이 장면에서는 왜 담배를 피우지 않는지까지도 이야기를 나눴다. 아서가 얼마나 말랐는지에 대해 어떻게 논의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영화 속 모든 것을 피곤할 정도로 이야기했다.

-호아킨과 당신이 영화를 위해 보낸 시간은 데이트하는 커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밀했다.

=배우로서 호아킨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완전히 스며들게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호아킨은 장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어쨌든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기억할 필요조차 없이 그에게 장면의 모든 것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데이트라고 부르긴 이상하지만 우리의 방식이 재밌기는 했다.

-영화의 선곡이 상당히 클래식하다.

=음악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도구다. 그 도구로 감독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내 영화에서 음악은 항상 진지하게 다루어졌다. 정확하진 않지만 영화 속 시대가 1970년대라면 아서와 그의 엄마의 취향은 그보다도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렌스 웰크, 프랭크 시내트라는 그 시대에서 바라보아도 올드한 취향인데, 어쩐지 클래식해서 선곡했다.

-영화 속 모든 것이 세밀하게 계획됐겠지만 거짓말 같은 우연은 없었나? 촬영하는 동안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멋지게 완성된 장면 같은 것 말이다.

=내 생각에는 영화란 행복한 우연이 4만5천번쯤 일어나야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아서가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춤추는 장면이 가장 좋은 예다. 촬영하기 전에 여러 가지로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명확하지 않았는데 촬영 뒤 정말 멋진 장면으로 완성됐다.

-계단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마지막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 장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전까지 아서는 어두운 밤 피로한 몸으로 긴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광기로 가득 차 계단을 내려오는 거다. 각본에는 “조커가 머릿속에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온다”라고만 쓰여 있다. 그 한 문장을 위해 우리는 6주 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안무가를 고용했고, 연습을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아서가 조커로 변하는 과정이 점진적이라 언제라고 특정하기 어려운데, 마지막 계단 장면은 그중에서도 가장 명백하게 그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킬 더 리치’(Kill the Rich) 무브먼트와 영화 속 상황을 연결해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지만, 실제로 각본은 2017년경에 쓰였다. 당연히 현실 상황이 제 길을 찾아서 이야기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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