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는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라는 부제처럼 언어와 예술, 유머, 대중문화, 뉴스,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소비에트연방의 마지막 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제목만큼이나 도입부가 의미심장한데, “소비에트연방에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게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고사하고요. 누구도 그걸 기대하지 않았어요. 어른이건 아이건 말이에요. 모든 게 영원할 거라는 완전한 인상이 있었죠.”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에 성년을 맞은 사람들은 ‘침체기의 아이들’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이전 세대의 정체성이 혁명, 전쟁, 스탈린의 숙청 등의 사건으로 형성되었고 이후 세대의 정체성이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다면,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의 정체성은 브레즈네프 시기의 규범화되고 불변하며 만연한 권위주의적 담론의 경험을 공유하며 형성되었다.
이 책은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자유를 제한하는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권위적 언어를 단일화하고 예측 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인 문체는 사라지고 텍스트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최소화되는 것이다. 소비에트의 종말이라는 사건이 등장했을 때 ‘갑자기’라고 생각했던 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어떤 일도 갑작스럽지 않으며 최후에 해당하는 징조들이 곳곳에서 예정된 파국을 앞서 연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리라. 소련의 붕괴를 동시대에 경험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무척 흥미진진한 텍스트이며, 어디까지나 ‘내부’의 사건들에 대해 후일 추가한 긴 주석과도 같은 글임을 명심할 것(‘당대’에는 혼란 뒤가 반등인지 추락인지 내다보기 어려우니까). 흔히 사유의 깊이가 없다는 식으로 비판받곤 하는 대중문화의 순간들을 해석하는 후반부는 6부와 7부를 꼼꼼히 읽어볼 만하다.
모든 것은 끝난다
그가 좋아하고 감동받았던 많은 것들은 그 어떤 위기도 맞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던 그 평행우주에서 온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비에트의 영원성과 동일한 운명에 의해, 그저 어느샌가, 전복되고 말았다.(3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