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사냥의 시간> 박해수 - 야생동물처럼
2020-03-12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소문이 무성하다. 배우 박해수가 연기한 킬러 한은 네명의 친구들을 소리 없이 쫓으며 죽음의 사자 같은 초현실적 기운을 뿜는다. 심중을 알기 어려운, 연기 같고 암흑 같은 존재다. 배우에겐 해석과 표현의 여지가 무궁무진했을 캐릭터를 만나, 박해수는 여느 때보다 즐거운 고통으로 침잠했다. <마스터>(2016)를 기억하는 관객에겐 배우의 도약과 확장을 지켜보는 만족감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기억하는 관객에겐 반전에 가까운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사냥의 시간>을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현장. 역할과 일대일로 맞짱 뜬 느낌”이라고 회고한 박해수에게 킬러 연기의 묘미를 들었다.

-윤성현 감독이 캐스팅 이유를 밝힌 적 있나.

=한창 연극 공연하던 시절에 인터뷰 도중 찍힌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좋게 보신 것 같다. 2010~11년쯤 찍힌 사진이었는데, 머리를 바짝 깎은 모습이었다. 아마 그래서 눈매가 더 돋보였으려나. (웃음) <파수꾼>의 열렬한 팬이어서 감독님의 제안이 정말 반가웠다.

-대표적으로 <마스터>에서 연기한 진 회장(이병헌)의 심복처럼 매섭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는 건 이미 증명한 바 있는데, 한은 기존 캐릭터와 비교해도 가장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여준다.

=인물이 가진 동기와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서 가까이 접근하기까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규정지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계속 함께 찾아나가보자는 게 감독님 말씀이었다. 특수요원, 군인 등과 같이 과거에 항상 사선에서 죽음과 함께했던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후유증, 트라우마로 인해 본능적으로 죽거나 혹은 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인물이다. 매일 연기 일지를 쓰면서 조금씩 실마리를 잡았다.

-한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하다.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의미에서 작품 제목에 있는 ‘사냥’을 한다. 게임처럼 살인을 즐기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했나.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게임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하는 전사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인물의 해석이 가벼워지는 것 같더라. 내가 내린 결론은, 한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 했다는 것이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에 있어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직관적으로 움직이고 총기 사용법이나 전술 등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캐릭터를 떠올릴 만하다. 당시 회자됐던 바르뎀의 버섯 모양 헤어스타일처럼 한에게도 특징적인 외양이 있나.

=매서운 눈이다. 단순히 독하다기보다는 모든 걸 꿰뚫어보는 눈이라고 할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야생동물 같은 눈이 필요했다.

-대사는 적고 뒷모습이나 실루엣이 많이 부각된다. 스크린에서 피사체의 존재감, 아우라 자체가 강렬해야 하는 경우 같은데 어떤 것을 신경 썼나.

=현장에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이게 맞나’ 하는 생각에 조금 위축되어 있으면, 감독님이 기가 막히게 내가 걷는 모습만 보고도 그런 기운을 알아차렸다. 다른 네 배우들은 같이 티키타카하는 호흡이 있으니 좀더 자유롭게 풀어주신 것 같은데, 감독님이 유독 내게는 혹독하셨다. (웃음) 일부러 고독하고 외롭게 만드신 거다.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나도 그게 훨씬 편하더라. 보통 추격 신이 밤에 있으니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혼자 빈방에 들어가 있는 식이었다. 나중에 후시녹음을 할 때 들어보니 평소 내 목소리가 아닌 되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역할에 몰입하고 있는 동안엔 고통스러워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지나고 나니 배우 인생에서 가장 신기하고 기억에 많이 남을 순간 중 하나가 됐다.

-연극무대에서부터 몸 쓰는 연기를 즐기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몸 쓰는 연기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거다. 몸이 자유로워야 연기도 자유로울 수 있고 말보다는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대사는 일단 던지면 어떻게든 전달되지만 몸은 평소에 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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