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사냥의 시간> 최우식 - 나의 버킷리스트
2020-03-12
글 : 김현수
사진 : 오계옥

최우식은 전혀 계획이 없었다. <사냥의 시간> 제작보고회가 열리던 날, 그는 배우들과 윤성현 감독이 모두 블랙 계열의 옷을 입고 기자회견장 무대에 등장하자 당황했다. 혼자 주황색과 하늘색 옷을 믹스 매치해 의도치 않게 ‘주인공’이 되었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지난해 <기생충> 제작보고회 때도 “<부산행>과 <옥자>와 비교해 더 큰 역할을 맡았다”는 말이 화제가 되어 ‘분량상 주인공’이 되기도했다. 공교롭게도 <사냥의 시간>에서 그가 맡은 기훈은 무리 중 가장 인기가 많고 사교성도 좋은 캐릭터다. “나와는 너무 다른 친구라서 연기하기 어려웠다”는, <사냥의 시간>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신작 <경관의 피>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아카데미 시상식과 베를린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스케줄 조정에 힘쓰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경관의 피> 촬영에 몰두하면서 틈날 때마다 오스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감독님 혼자 고생하는 것 같아 배우들이 한명이라도 더 참여해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모두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기생충> 촬영 전인 2018년 상반기에 촬영했는데 의도치않게 캐릭터 이름이 기훈이다. 관객이 느끼기에는 <기생충>의 기우 다음 이름이 기우와 비슷한 <사냥의 시간>의 기훈으로도 기억될 것 같다.

=시나리오를 보니 꽤 분량이 많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내가 제일 마지막에 캐스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부담감도 느꼈다. 시나리오의 지문에 따르면 기훈은 내 실제 모습과는 좀 다른 인물이었다. 내가 맡게 되면서 나와 어울리는 인물로 조금씩 바꿔나갔다.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지만 거기 사는 아이들은 지금도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나 개인보다 친구들과의 미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다.

-윤성현 감독과는 기훈에 관해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평소의 나처럼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감정을 좀더 드러내는 친구가 되길 바랐던 것 같고. 풀어져 있는 모습을 원하셨다. 시나리오에 쓰여진 대사대로 연기하면 왠지 오케이 사인을 던져주지 않았다. 연기하다가 서로 대사가 엉키게끔, 우리끼리 실제 대화하는 느낌을 원했다. 대사와 동선에는 전혀 터치하지 않고 감정선의 표현에 집중하셨다. 나한테는 새로운 작업이었다.

-기훈은 준석(이제훈)의 어떤 계획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 인물이다. 현실주의자 같기도 하고.

=기훈은 양극단을 오가는 친구들 가운데에서 무게를 잡아주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는 역할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지만 의리 때문에 친구를 선택하기도 한다. 사실 기훈의 타고난 은은한 매력을 연기해야 하는데 나와는 너무 달라서 연기하기가 어려웠다.(웃음)

-윤성현 감독은 영화광으로서 굉장한 레퍼런스를 지니고 있는데 기훈에 관해서도 다른 영화에 빗대어 가이드를 주지는 않았나.

=기훈은 영화에서 쿨가이 느낌이다. 감독님이 <시티 오브 갓>을 보여주신 기억이 난다. 어디를 가도 인기가 많은 인물을 원하셨던 것 같다.

-이제훈 배우는 <사냥의 시간>이 <고지전> 때보다 육체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하면서 윤성현 감독의 집요한 연출 스타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윤성현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배우의 손을 잡고 끝까지 함께 가는 감독이라 말하고 싶다. 형들이, 현장에서 내가 기죽지 않고 눈치도 안 봐도 되는 학교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줬는데 그런 기운이 감독님과의 친구 같은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질문도 막 하고.

-할리우드 진출 기사가 났다. 스튜디오 A24가 제작하는 <패스트 라이브스>라는 로맨스영화라고.

=아직 이야기 중인데 할리우드 진출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기생충> 덕분에 그곳 관계자들도 좋게 봐준 것 같다.

-이제는 물어볼 수 있다. <기생충>의 기우는 이후 어떤 삶을 살 것 같나.

=기우는 분명히 뭐라도 잘할 거다. 머리가 좋고 낙천적이고 다 계획이 있는 친구니까. (웃음)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지를 구출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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