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젊은 시절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여의치 않자 포장도 풀지 않은 작품 13점을 그러모아 “창고 피스”로 명명하여 정체성을 드러낸 미술가 양혜규는 다음 세대에 관심을 받을 작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작가의 화두가 미래에도 유효할지 생명력을 언제나 따져봐야 한다고 냉철하게 말한다. 고통스럽고 불편하면서도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를 평생 연기해온 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자신이 연기한 역할에서 “작은 불꽃을 봤고, 이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은 예술가 19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분량은 만만치 않으나 예술문화계의 슈퍼스타들이 포진해 있고 질문과 대답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심슨 가족>에서 골프공으로 건물 하나를 찌그러뜨린 역할로 등장한 바 있는 유명 해체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 “언젠가 영화 투자를 받지 못하면 사진가로 일하겠다”는 감독 박찬욱.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언제나 고된 현실과 부딪쳤다고 고백하는, 사적 경험의 작가 아니 에르노.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숨막힌 올해 4월, 텍스트로 작업하는 미술가 제니 홀저는 인스타그램에 문장 하나를 띄웠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Protect me from what I don’t want) 40년 전인 1982년에는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라는 문장을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쏘아올렸었는데 말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여전히 유효한 문장으로 잡아내는 이 노련한 미술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수채화를 그리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 시대이고 미래는 어떻게 흐를지 불안이 가시지 않는 현시점에서, 재해 지역 아이들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인터뷰는 작은 위안이 된다.
깊은 슬픔
“미술관을 찾은 관객도 휴대폰 창을 통해 작품을 봅니다. 시선의 분산은 지금의 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방식이에요.” -아이작 줄리언(188쪽)
“트럼프가 나를 슬프게 해요. 깊은 슬픔은 정확하고 현실적이며, 고귀하고 잘 표현되어야합니다.” -제니 홀저(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