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의 네오 클래식]
[김호영의 네오 클래식] 빔 벤더스의 '리스본 스토리'
2020-08-31
글 : 김호영 (한양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기억의 도시 리스본, 기억으로서의 영화

<리스본 스토리> Lisbon Story

감독 빔 벤더스 / 상영시간 103분 / 제작연도 1994년

누군가에게는 1990년대가 자신의 영화 세계를 확립하고 많은 이의 찬사를 이끌어낸 시대였겠지만, 빔 벤더스에게는 뜻밖의 침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였다. 사실, 뜻밖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1980년대 그가 누렸던 영광은 샘 셰퍼드와 페터 한트케 같은 뛰어난 작가들과의 협업 덕분이었을 수 있고, 하강은 이미 그전부터 예견되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리스본 스토리>는 지치고 무기력해진 그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만든 휴식 같은 영화다. 그는 이전 영화들에서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휴가를 떠난 여행자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스본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지난 시절 내내 그를 따라다녔던 영화에 대한 질문을 천천히 곱씹는다.

마주 보는 두 영화 - <사물의 상태>와 <리스본 스토리>

영화는 음향기사 필립 빈터스(뤼디거 포글러)와 영화감독 프리드리히먼로(파트리크 보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필립은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프리드리히의 엽서를 받고 독일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자동차로 달려온다.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집에 없고 찍다 만 영화필름들만 남아 있다. 동네 아이들과 영화음악을 녹음 중인 뮤지션들은 바로 전날까지 그를 보았다고 하지만 정작 필립은 그를 만나지 못한 채 3주 동안 홀로 빈집에 머문다. 그사이 매일 프리드리히를 찾아 돌아다니고 또 그가 남긴 흑백필름에 소리를 입히면서, 점점 더 리스본의 삶과 문화에 매료되어간다. 마침내 두 사람은 거리에서 마주치는데, 프리드리히는 영화 만들기를 포기한 채 캠코더로 도시를 기록하는 일에만 매달려있다. 필립은 절망에 빠진 그를 설득하고, 둘은 다시 영화를 찍는다.

<리스본 스토리>는 벤더스가 1982년에 발표한 <사물의 상태>와 대구(對句)를 이루는 영화다. 두 영화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과 몇몇 차이점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일단 두 영화 다 리스본이 배경이며, 배우 파트리크 보쇼가 둘 모두에서 영화감독 프리드리히먼로 역을 맡았다. 전작에서 프리드리히가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젊은 영화감독이었다면, <리스본 스토리>에서는 영화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중년의 영화감독으로 등장한다. 두 영화에서 그는 스토리에 집착하거나 자극적 이미지를 요구하는 제작 현실에 시달리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사색으로 이어진다. 또한 두 영화는 영화 내내 사라진 주인공을 찾아다니는 동일한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고, 흑백영화와 고전영화에 대한 향수도 드러낸다.

아울러 두 영화에는 영화 자체를 향한 경외와 애정의 표현들이 산재해있다. 가령 <사물의 상태>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일의 고전 영화감독 프리츠 랑에 대한 오마주를 표하며, <리스본 스토리>는 영화를 기획할 무렵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시네아스트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애틋한 작별 인사를 보낸다. 또 <사물의 상태>에서는 미국 영화감독 새뮤얼 풀러가 제법 비중 있는 배역으로 출연하고, <리스본 스토리>에서도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가 의미심장한 카메오 역으로 등장한다. <수색자>(감독 존 포드, 1956)와 <카메라를 든 사나이>(감독 지가 베르토프, 1929)를 비롯한 다수의 고전영화들이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두 영화 사이의 이 무수한 공통점들, 1부와 2부처럼 서로를 이어주는 이 긴밀한 연결고리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하나의 질문을 향하고 있다. 영화란 무엇인가? 아니 정확히 말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스타일의 로드무비를 선보이며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끌었던 젊은 감독 벤더스는 <사물의 상태>를 찍을 당시 이미 지쳐 있었고, 영화를 만드는 일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리스본 스토리>에서 그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질문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그 다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리스본이라는 도시 자체다.

페소아, 파두, 올리베이라 그리고 리스본

“눈부신 햇살처럼 빛나는 소리들을 듣고 싶다.” 영화는 마치 페소아의 이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듯하다. 영화에서 틈틈이 페소아의 책을 읽는 필립은 이 문장을 직접 실천에 옮기려는 것처럼, 태양이 빛나는 리스본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온갖 소리들을 녹음한다. 프리드리히도 “내가 모두가 되어 어디든 있을 수 있다면”이라는 페소아의 시구(詩句)를 좇아, 도시 곳곳에 캠코더를 숨겨놓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한다. 또 리스본을 대표하는 파두 그룹 ‘마드레데우스’가 직접 출연해 여러 차례 음악을 들려주는데, 리스본의 풍경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그들의 음악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시청각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사물의 상태>에서 리스본이 세상의 끝과 같은 느낌의 황량한 이미지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소박하면서도 신비로운 그 본연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올리베이라의 독백은 영화의 핵심을 분명하게 암시한다. 당시 이미 80대 후반이었던 이 노감독은 녹음실에 홀로 서서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데,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그의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영화 속에서 프리드리히와 필립이 찾아 헤매던 대답이자, 어쩌면 감독 벤더스가 애타게 찾던 대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시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영화는 그 시간의 그림자를 그려낸다. 영화는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음에 대한 기록이자 기억인 것이다.

벤더스가 리스본을 영화의 배경이자 진짜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적어도 유럽인들에게 리스본은 20세기가 다 끝날 때까지 어떤 과거 혹은 어떤 기억을 의미했다. 대륙의 맨 끝자락으로 밀려나 있고, 현대 문명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도시. 영화는 특히 프리드리히의 구형 카메라에 담긴 흑백필름을 통해 리스본이 곧 유럽인들이 과거이자 기억임을 강조한다. 칠이 벗겨진 낡은 집들과 좁은 골목들, 그 사이를 오가는 오래된 전차들도 그렇고, 공동빨래터에 모인 여인들과 골목에서 마주치는 칼갈이, 구두닦이들도 그렇다. 한편의 무성영화처럼 관객의 눈앞에 펼쳐지는 리스본은 유럽이 이미 지나오고 잊어버린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 도시이고, 여전히 그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도시다. <리스본 스토리> 이후, 벤더스는 다시 활발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픽션영화들은 예전만 못하지만, 예술을 다루는 그의 기록영화들은 변함없이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인생의 쉼표 같은 영화 <리스본 스토리>에서 그는 무엇을 깨달은 걸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이전의 무거운 질문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쉼 없이 영화에 옮기고있다. 영화만이 그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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