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위기다. 코로나19로 대면 집합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극장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멀티플렉스며 독립예술영화관이며 전국의 모든 극장들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다. 극장의 위기가 코로나19로 갑작스레 대두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가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에 결정적 한 방을 날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스오피스만 살펴봐도 전년 대비 숫자의 단위 자체가 달라졌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에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5편이나 있었지만 올해 최고 흥행작인 <남산의 부장들>은 관객수가 500만명을 넘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의 10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 관객수는 전년 대비 70.6%, 누적 매출액은 70.4% 감소했다. 상반기 결산에서의 수치와 거의 차이가 없다. 3월의 1차 대유행, 8월의 2차 대유행, 현재의 겨울 대유행까지 거치며 박스오피스의 그래프는 1년 내내 급격한 등락을 반복했다.
주요 멀티플렉스의 실적도 좋을 리 없다. CJ CGV의 경우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7.6% 감소, 2분기는 91% 감소, 3분기는 68.8% 감소했다. 그에 대한 자구책으로 상영관 감축과 일부 지점 영업 정지, 탄력 운영제 실시, 비효율 사업 재검토, 임원 연봉 반납, 임직원 휴업/휴직, 해외 법인 지분 매각, 국내외 비수익 자산 매각 등이 시행됐다. 앞으로 3년 내 119개 전국 직영점 중 35~40개가량을 줄인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이는 직영점의 약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롯데시네마도 비슷한 상황이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9.3% 감소, 2분기는 82% 감소, 3분기는 67.2% 감소했다. 지난 11월 발표한 롯데시네마의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자구책 마련을 보면 역시나 영화관 사업 전면 재검토를 통한 몸집 줄이기가 중심이다. 향후 2년간 전국 100여개 직영관 중 손실이 막대한 20여개 지점은 단계적으로 문을 닫을 계획이며, 해외의 경우 중국과 홍콩, 인도네시아 영화관 사업을 철수하고 베트남에서 운영 중인 영화관의 20%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메가박스중앙 역시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대비 66% 감소하며 상반기부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에 멀티플렉스 3사는 차례로 영화 관람료를 인상했다. 가장 먼저 10월 26일 CGV가 영화 티켓값을 인상했다. 주중(월~목) 오후 1시 이후 일반 2D관람료는 기존 1만1천원에서 1만2천원으로, 주말(금~일) 오후 1시 이후 관람료는 1만2천원에서 1만3천원으로 올랐다. 4DX와 아이맥스 같은 특별관 요금 또한 1천원 올랐다. 이코노미, 스탠더드, 프라임으로 세분화됐던 좌석차등제는 폐지됐다. 이는 2018년 4월 영화 관람료를 인상한 이후 2년6개월 만이다.
메가박스는 11월 23일부터 영화 관람료를 인상했다. 2D 일반 영화 성인 기준으로 주중 1만2천원, 주말 1만3천원으로 1천원을 인상했다. 돌비 시네마와 프리미엄 특별관 더 부티크, 발코니, 프라이빗은 인상에서 제외됐다. 롯데시네마의 영화 관람료도 12월 2일부터 평균 1천원 인상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할인권 배포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월 1만원 안팎의 가격에 익숙해진 관객이 영화 티켓 가격 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영화 관람료 인상의 효과는 좀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언택트 시네마로의 전환과 안전한 극장 만들기 캠페인도 올해 눈에 띄는 극장의 변화다. 6월 CGV를 시작으로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도입해 현장에 비치된 QR코드를 통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티켓 발권과 신분 확인, 나아가 팝콘 주문과 주차 인증까지 비대면으로 하는 언택트 서비스도 늘고 있다. CGV는 지난 4월부터 CGV여의도를 대면 서비스를 최소화한 언택트 시네마로 운영하고 있다. 매점의 경우 팝콘과 음료 등을 주문하면 ‘픽업박스’에서 메뉴를 찾아갈 수 있고, 자율주행 로봇 ‘체크봇’이 상영관 주변을 돌며 상영시간표 등 간단 정보를 제공한다. 상영관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는 일도 스마트 체크 기기가 대신한다. 롯데시네마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매점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바로 팝콘’ 서비스와 스마트 자판기 ‘씨네투고’를 일부 극장에 도입했다.
관객의 안전과 관련해 극장의 달라진 풍경 중에는 관객과의 대화(GV) 진행 시 오픈채팅방을 운영하는 것도 있다. GV에 참석한 감독과 배우에게 관객이 마이크를 들고 질문하는 대신, 메신저 앱의 오픈채팅방을 통해 문자로 질문과 의견을 남기는 방식이다. 관객과 영화인이 보다 안전하게 만나는 뉴노멀의 풍경이다.
멀티플렉스뿐 아니라 전국의 작은 영화관과 독립예술영화관의 상황도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지난 10월 말부터 현재까지 KT&G상상마당의 극장 운영이 중단됐다. 상상마당 영화사업부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자 KT&G상상마당 배급으로 영화를 개봉했던 김경묵, 연상호, 신연식 등 18명의 감독은 SNS를 통해 ‘상상마당 시네마를 지켜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KT&G측은 재정비 차원에서 극장 공간을 임시 중단한 상태라고 했지만, 상상마당 영화사업부 관계자는 12월 10일 현재까지도 재정비의 내용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인 10월 26일, 시네필들이 애정하는 공간이었던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의 영업도 중단됐다. 코로나19장기화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이유였다.
독립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의 주희 이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내년 3월까지 지속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극장이 하나 사라지는 건 구멍가게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다르다”면서 “극장이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좀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시작된 독립예술영화관을 지키기 위한 캠페인 ‘#SaveOurCinema’와 11월부터 시작된 ‘세이브 아워 시네마 프로젝트: 우리 영화의 얼굴’ 기획전 또한 팬데믹의 장기화로 극장의 존재 의미가 의심받는 현실에서 출발했다.
극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당장은 생존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와 비대면 서비스, 안심 캠페인과 버티기를 한다지만 극장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 담당은 “극장 입장에선 관객이 극장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며 멀티플렉스의 경우 “4DX 등체험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식과 대안적 콘텐츠들, 즉 콘서트, 연극, 뮤지컬, 게임 등을 극장 스크린으로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도 말했다. “앞으로의 극장은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롯데시네마의 경우 ‘SUPER S’ 등 지금보다 진일보한 기술 특화관 및 서비스 제공을 고민하고 빠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주희 아트나인 이사는 “영화적인 영화를 상영하는 더 영화적인 영화관이 살아남지 않을까”라며 “관객이 영화관에 바라는 건 영화적인 순간을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라 했다. “일기일회. 일생에 한번뿐인 지금 이 순간의 (영화와의) 만남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