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2020년의 승자라는 데 이견이 있을까. 영화산업의 위기 속에서 넷플릭스는 기회를 선점했다. 이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와 시리즈 뿐 아니라 코로나19로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넷플릭스에 가입해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더니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 공개를 택한 작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첫 주자는 <사냥의 시간>이었다. 2월 극장 개봉예정이었던 <사냥의 시간>이 개봉을 잠정 연기한 뒤 4월 23일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배급사 리틀빅픽처스와 해외세일즈사 콘텐츠판다 사이에 불거진 갈등은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의 큰 이슈 중 하나였다. 11월 27일 공개된 박신혜·전종서 주연의 <콜>, 내년 1월1일 공개 예정인 차인표 주연의 코미디영화 <차인표>, 송중기·김태리·진선규·유해진 주연의 SF우주영화 <승리호> 또한 극장 개봉의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K-콘텐츠의 가능성과 인기도 실감할 수 있는 한해였다. 지난 3월 공개된 <킹덤> 시즌2의 경우 <뉴욕타임스> 선정 ‘2020년 최고의 인터내셔널 TV쇼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킹덤> 시리즈는 갓과 호미 등 예상치 못한 소품까지 세계적으로 유행시키며 좀비물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다른 좀비물인 <#살아있다>는 6월 극장 개봉 뒤 9월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됐는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이틀 만에 미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 전세계 35개국 넷플릭스 영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영화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된 비영어 콘텐츠 중 제작 국가 외 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4위를 차지하며 한국 장르영화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데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한몫한 셈이다.
한편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로 자기만의 영화색을 다져왔던 이경미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만든 것처럼 영화인들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연출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는 <오징어 게임>, <뺑반> <차이나타운>을 연출한 한준희 감독의 <D.P.>,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만든 김성호 감독의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등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 중에 있다.
산업의 영역에서든 관객의 입장에서든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도 머지않아 수정될지 모른다. 넷플릭스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고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에 돌을 던졌다. 극장에서 영화가 먼저 개봉하고 배급의 마지막 단계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영화가 공개되던 구조가 바뀌고 있다. 투자배급사의 역할도 조정될 것이고, 창작자들의 여건도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엔 극장과 스트리밍이 상호보완적 관계였다면, 코로나19 이후 극장과 스트리밍은 철저한 경쟁 관계가 됐다. 넷플릭스의 성장은 영화산업 전체에 큰 화두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