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류성희 미술감독이 말하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 영화의 무드로 주제를 전달한다
2021-04-08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씨네21>은 영화인을 꿈꾸는 독자들을 위해 ‘커리어’ 지면을 신설했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스탭들이 한국영화계의 다양한 직무를 직접 소개하는 지면이다. 첫 번째 영화인은 류성희 미술감독이다. 한국영화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변곡점에는 늘 그가 있었다. 미술감독의 또 다른 명칭인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부터 충무로 현장을 지킨 그는 한국영화 미술 시스템이 전문화되어온 역사와 함께한 장본인이다.

-미술감독 그리고 미술팀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영화의 무드를 만들어서 어떤 주제를 전달한다. 컬러, 텍스처, 콘트라스트, 볼륨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요소까지 포함한 분위기를 만든다. 엔딩 크레딧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지만 각자 역할이 다르다. 먼저 미술감독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아트 디렉터가 있다. 내 경우 <암살> <아가씨> <외계인>(가제)을 최지혜 아트 디렉터와 함께했다. 아트 디렉터는 세트나 가구 등 제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당하고, 그 밑에는 도면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세트 디자이너가 있다. 그리고 세트 데커레이터가 있다. 데커레이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세트나 로케이션 장소에 가져와 세팅하는 역할을 한다. 그 밑에는 세트 데커레이터 어시스턴트와 세트 드레서가 있다. 세트 드레서는 굉장히 디테일한 드레싱을 정리하는데, 가령 담배를 피우다 1시간 전에 나간 사람의 흔적 같은 것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은 특히 이 영역이 좀더 전문화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영화미술은 공간별로 나눠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디자인부터 제작, 물건을 구해오는 것까지 모두 같은 사람이 한다. 정확한 역할 구분은 영화에서 멋지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있어 각자가 구체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 세트를 많이 짓기 때문에 아트 디렉터가 돋보이고,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의 경우 데커레이터의 역할이 크다.

-꼭 미대에 가야만 영화미술을 할 수 있나.

=아무래도 학교에서 시각적인 모든 것을 배우니까 유리하긴 하지만 스스로 감각이 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열심히 배워라. 가령 관찰력과 보는 눈이 중요한 세트 드레서 같은 경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아도 잘하는 분들이 있다. 그림이나 포토숍도 가능하다. 현장에서 급박하게 벌어지는 일에 대응하는 온셋 드레서(on-set dresser)들은 미술 능력과는 또 다른 센스를 요한다. 협업을 잘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캐치한다면 전공은 상관없다. 세트 디자이너는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전공한 친구들이 제일 쉽게 진입한다. 혹은 스케치업을 배우면 전공자가 아니라도 디자인할 수 있다.

-감독님의 경우, 홍익대학교 도예과에 입학해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미국영화연구소(AFI)로 유학을 떠났다.

=내가 고민한 것들을 선보일 대상이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영화 매체는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준 건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법’이었다. 돌이켜보면 영화미술은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그를 통해서 내가 부족한 점을 깨닫는 일이기에 꼭 필요한 공부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이 일이 적합하다고 보나.

=6개월, 길게는 10개월씩 한 작품에 열심히 매달려 있다가 지긋지긋해질 때쯤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 새로운 것을 또 배우게 된다. 루틴이 편한 사람들에겐 힘들겠지만 변화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재미있어할 일이다. 어렵게 얻어낸 보편이 관객의 마음에 닿았을 때 순수예술에선 경험하지 못한 힘이 있다. 여기서 ‘보편’은 누구나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르지만 불편하지만 좋아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어떤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다.

-미술감독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가까이, 세밀하게 그 안에 곁드는 미묘한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잘 포착하고 순수하게 열망하고 집중하라. 작가든 감독이든 그들의 가슴이 뛰는 어떤 지점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시나리오에서 그 순간을 찾아내고, 영화를 만드는 동안 그 설렘을 계속 느낀다면, 디자인은 분명 관객에게 전달된다.

영화미술 입문자들에게 추천합니다

미술의 모든 것이 총망라된 꿈의 프로젝트, 소설 <듄>과 아티스트 데이비드 보위

“당대 내로라하는 비주얼리스트들이 <듄>을 영화로 만들었다. 고대 문명, 무협, SF 등 미술을 하는 사람이 평생을 걸고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는, 드림 프로젝트다. 언젠가 이 작품을 디자인하는 나를 상상한다. 스토리는 물론 캐릭터, 공간, 사운드 등 모든 것의 상상력을 돋우는 걸작이기에 입문자들이 자신만의 디자인을 상상하기 좋은 작품이다. 더불어 데이비드 보위. 그의 선구적이고 용감한 곡, 가사, 이미지 변신은 굉장한 영감을 줬다.”

Filmography

2021 <외계인>(가제) <헤어질 결심> 2019 <나랏말싸미> 2016 <아가씨> 2015 <암살> 2014 <국제시장> 2013 <변호인> 2011 <고지전> 2010 <만추> 2009 <마더> <박쥐> 2007 <헨젤과 그레텔> 2006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괴물> 2005 <달콤한 인생> 2004 <쓰리, 몬스터> 2003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2002 <피도 눈물도 없이> 2001 <꽃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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