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혼자 사는 사람들' 서현우 - 심장이 뛰는 순간
2021-05-12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물리적으로는 대단히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굉장히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사이.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이가 그렇다. 진아(공승연)의 옆집으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제 안면을 튼 진아에게 ‘옆집’이라 부르며 살갑게 대하고, 고독사한 앞선 세입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기까지 한다. 성훈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진아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유연하게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준다.

이런 성훈만의 질감을 만들어낸 배우 서현우는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령>(감독 이해영) 촬영을 마무리하고, 라이브 더빙쇼 <이국정원> 공연을 돌고 있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모럴센스>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혼자 사는 사람들>로 대화를 나눈 건 <이국정원> 서울 공연과 부산 공연 사이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대본 읽을 때 어떤 이야기로 다가왔나.

=처음엔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성훈은 진아와 다른 질감을 가진 캐릭터인 데다 또 어떤 순간에는 진아에게 정확하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해서 어떻게 톤을 잡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홍성은 감독이 성훈을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성훈이 나이스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웃음) 시나리오를 놓고 봤을 때도 홍성은 감독에게 성훈은 주제 의식을 띠고 있는 인물이자 해결사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의사(<침입자> <죽여주는 여자>), 기자(<악의 꽃>), 군인(<남산의 부장들>) 등 전문직을 연기한 것과 달리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성훈은 <테우리>의 짱구와 더불어 직업에 대한 정보가 없고, 캐릭터만 도드라지는 인물이다. 성훈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진아와 비교했을 때 사회성이 있고 나이스한 사람이지만, 성훈도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혼영(혼자 영화 보기)하고 혼밥(혼자 밥먹기)하는 시대이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혼자만의 삶에 뛰어드는 사람과 달리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는 사람이다. 성훈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지인과 통화하면서 “아, 이제 그만 모여 살아야죠. 언제까지 거기 모여서 살아요”라고 말한다. 성훈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이제 막 도전을 하는 입장이다. 그런 과정에서도 고인에 대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예의를 지키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성훈은 진아를 ‘옆집’이라고 부른다. 친근하지만 거리가 느껴져서 산뜻하게 다가오는 호칭이다.

=진아를 어떻게 부를지 감독님과 고민을 많이 했다. 선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살갑게 파고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저기요’ , ‘이웃집’이라고 부를까, ‘죄송한데…’라고 운을 뗄까 싶기도 했다. 그러다 고안해낸 단어가 ‘옆집’이다.

-실제 다리 부상을 겪으며 극중 성훈에게 ‘다리가 아픈’ 컨셉을 더했다. 연기할 때 성훈이 일시적으로 다친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니면 장애가 있다고 설정했나.

=영화에는 성훈이 잠시 다리를 다친 것인지 아닌지 정확한 정보가 담겨 있진 않다. 그게 재밌는 부분인 것 같다. ‘목발을 짚으면 이 인물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다’라는 계산 없이 나 스스로를 상황 속에 던졌다.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 촬영 막바지에 무릎 뒤 근육이 찢어졌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상대 배우를 뒤에서 끌어안고 한두 시간 연기를 하다 보니 무릎이 저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추격 신을 찍었는데 무릎에 물이 찼다.

-아픈 다리로 제사를 지내며 절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감독님도 엄청 걱정하셨다. 나도 과연 절하는 자세가 나올까 싶었다. 살짝 폴짝이면서 납작 엎드렸던 것 같다. (웃음) 정말 다리가 아픈 상태로 연기하는 것과 다리가 아픈 연기를 하는 건 참 다르더라.

-연기가 실제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데 아닌가.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 상황을 그대로 담으면 오히려 과장돼 보이기도 한다. 연출된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어서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보일 때도 있다.

-성훈은 좋은 작별을 할 줄 아는 캐릭터다. 배우이자 인간 서현우가 좋은 작별을 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

=이별을 잘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상태를 고려해보지 못했고 내 마음만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게 괜찮은 이별이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훈이 좋았던 건, 자기 마음 편하자고 혼자 제사를 지내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아니라 이웃 사람들을 모아서 고인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제사를 나름대로 공식적인 행사로 만들어 고인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점이었다.

-데뷔한 지 12년이 됐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연기 철학에는 변함이 없나.

=지금은 나 자신을 믿고 그냥 몸을 던져본다. 성훈에게 목발이란 뜻하지 않은 컨셉이 생겼을 때 계산하기보다 목발을 짚음으로써 내게 느껴지는 것들을 현장에서 얻어내고 촬영에 임한다. 배우로서 내 성향이 열린 방식으로 바뀌면서 나란 사람의 성향도 바뀌어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조바심을 내거나 불필요한 예를 갖춘다기보다 그냥 온전하게 그 순간에 소통하고 즉흥적으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여지가 많은 게 좋다. 배우로서나 인간 서현우로서나 여러모로 더 과감해진 것 같다.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도 독립영화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독립영화에 애정이 큰 것 같다.

=애정이 많다. 독립영화는 가감 없이 소통하고 여러 방식을 시도할 수 있는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면 정형화되기 시작한다. 그럴 때 나를 깨워주는 존재가 있다면 순수한 영화학도들이다. 연극영화과 졸업을 앞둔 영화학도들이 독립영화 현장에서 내 심장을 막 뛰게 만들 때가 있다. 이런 순간들이 내게 어떤 에너지이자 자양분이 된다. 독립영화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데, 어찌 보면 집착이기도 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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