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 주성저 감독 - 그래서 다시 우한으로 갔다
2021-09-14
글 : 남선우

2020년이 닻을 올릴 무렵, 전세계인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지역이 있다. 사람들은 그 이름 뒤에 병명을 붙였고, 진행형 유령도시로 그곳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후베이성의 경제 중심지이자 양쯔강이 흐르는 교통 요충지 우한 이야기다. 팬데믹이 중대한 맥락을 부여하기 전부터, 우한에서 나고 자란 감독 주성저는 심상히 변해가는 고향의 풍경에 주목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가족을 따라간 <새로운 해>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라이브 스트리머들을 쫓은 <프레젠트.퍼펙트.>로 제48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하는 등 불안정한 배경에서 흔들리는 초상에 오래도록 집중해왔다.

우한을 찍은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20대를 보낸 그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떠나기 전의 고장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매일 다른 우한!’(Wuhan, Different Everyday!)이라는 공식 슬로건이 있었을 만큼 공사가 잦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연달아 펼쳐졌다. 그대로인 건 가족과 시민들뿐. 주성저 감독은 가장 오랜 시간을 발붙였던 공간으로부터 설명하기 힘든 “소외감과 소원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중국의 다른 도시들이 그렇듯 우한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감독은 “편집 없이 롱테이크로, 풍경이 그 자체의 리듬을 보여주길 원했다. 관객을 강가에 더 오래 머물게 하고 싶었다”.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가 오직 수분간의 롱테이크들로만 채워진 이유다. 일례로 타이틀이 뜨기 전 8분간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봉쇄됐던 거리 한구석을 연달아 찍어 이어붙인 것이다. 이 장면을 제외한 모든 푸티지는 2016년 여름부터 2019년까지 촬영했다. 주변의 소음이 공간감을 전할 뿐 마땅히 들리는 대사는 없다. 영상 속 정적은 빠르게 바뀌는 환경과 대조된다.

그렇게 카메라는 CCTV처럼 건조하게 공터를 관망하다 엽서처럼 낭만적인 순간을 길어 올린다. 강가에서 낚시하고, 운동하고, 포옹하는 이들로부터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마저 품게 한다. 주성저 감독은 희망 사이로 건설 현장의 혼란을 여러 차례 삽입해 착각의 싹을 틔운다. “언젠가 사라질 걸 알면서도 크고 강한 구조물들 앞에 서 있으면 그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라는 그는 “공사장과 기계들의 흥미로운 이미지에 적잖이 붙들려 있었다”고 고백했다.

느리고 고요한, 그래서 더욱 실험적으로 다가오는 이 영화가 마냥 낯설지 않은 이유는 네개의 편지 때문이다. 편지들은 강가에, 공사판에, 공터에 한줄씩 떠오르며 영화의 핵심 정서를 관통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문장으로 점철된 이 편지들은 모두 감독이 인터넷에서 읽은 사연, 댓글,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완성한 가상의 메시지. “이는 내가 고향 우한에 띄우는 편지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관객 또한 우한을 바라보는 시선에 두려움이 있을 테다. 그러나 내게 영화 만들기는 현실을 짓고, 부수고, 다시 재건하는 방법과 같다. 관객이 현실과 영화 사이의 장소에서 그들 각자의 경험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사진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