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페미니즘 운동 가까이엔 늘 윤가현 감독의 카메라가 있었다. <바운더리>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이 걸어온 길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윤가현이 주목한 4년은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로, 불꽃페미액션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움츠러든 여성들에게 밤거리를 돌려주기 위한 ‘밤길걷기 집회’, 여성의 가슴 해방을 주장한 ‘찌찌 해방 운동’, 여성의 겨드랑이 털을 가시화한 ‘천하제일 겨털대회’ 등을 주도했다.
<바운더리>가 주목한 건 페미니즘 운동의 승리만이 아니라, 지난한 사회운동의 과정 그 자체다. 사회운동을 주도한 활동가들의 복잡한 내면까지 소상히 보여주는 게 다큐멘터리스트 윤가현의 선택이었다.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전선 최전방에 있어 겉으로 보기에 강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실패했던 운동도 있고 여성들에게조차 공격받았던 운동도 있었다. 이를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활동가들이 필요했다.” <바운더리>는 이들이 카메라 앞에 앉아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와 실제 현장을 뒤섞는 문법을 취한다. 주인공 가현, 세정, 미현은 윤 감독과 함께 활동해온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들로, 서로 1~2살 차이나는 넷페미 세대다. 특히 가현은 윤 감독의 전작 <가현이들>의 주인공이자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을 공동연출한 정치인이자 활동가로, 윤 감독과는 동명이인이다.
불꽃페미에 갈등의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벅찬 환희의 순간도 있었다. 찌찌 해방 운동 이후 바닷가를 찾은 페미니스트들이 가슴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파도를 맞을 때, 선배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낙태죄 폐지 운동이 마침내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을 때, 윤가현 감독은 “이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될 거다. 클라이맥스다”라고 직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경계를 넓혀나간다. “이 운동(페미니즘 운동)이 그렇다. 웹에 선언문이나 활동을 담은 사진을 올리면 지워지고, 다시 올리면 삭제되곤 한다. 그럼에도 계속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윤가현 감독의 카메라가 이들을 좇는 4년 동안 누군가는 정치에, 누군가는 법정에, 또 다른 누군가는 여성학계에 뛰어든다. 작품 제목을 <바운더리>라고 지은 것도 이들의 활동 때문이었다. 윤가현 감독은 “이들은 울타리를 치면서 안전한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친구들이고, 어떤 사회적인 규범과 관계를 건드렸으며, 자신의 위치를 사회 어디에 놓을지 그 선을 정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윤가현 감독은 마지막 편집 때 불현듯 제목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건 완벽한 울타리와 경계의 영화”라고.
극영화를 전공한 윤가현 감독은 <경계도시2>를 보고 다큐멘터리에 빠졌다. 그길로 2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노동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가현이들>과 여성운동을 다룬 <바운더리>, 공동연출작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을 완성시키며 쉼 없이 달려왔다. “겁 없이 만들어본 걸로 만족하고, 아직 차기작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라고 털어놓았지만 그가 다시 카메라를 들 순간이 곧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