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 시사회가 열리던 날, CGV용산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볼펜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것을. 근처 편의점에서 300원짜리 모나미 볼펜을 사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왜 항상 볼펜을 빠뜨리는가. 영화 기자는 눈으론 영화를 보며 손으론 스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보를 수첩에 메모한다. 리뷰를 쓸 때 종종 주인공 이름 철자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메모는 필수다. 특히 <프렌치 디스패치>처럼 온갖 지명과 인명, 인물의 사연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을 정신없이 따라가야 하는 영화를 볼 땐 더더욱 그렇다.
잡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프렌치 디스패치>는 한권의 ‘보이는 잡지’를 지향하는 영화다. 이번 영화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어릴 때부터 즐겨봤던 잡지 <뉴요커>와 그가 사랑하는 프랑스에 헌정하듯 만든 작품이다. 이를 알고 있던 편집장은 지난주 편집회의에서 <프렌치 디스패치> 특집을 여는 글은 리뷰가 아니라 영화 기자의 입장에서 쓴 에세이를 싣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내가 시사회 날 볼펜을 빠뜨린 사연으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다. 볼펜을 안 샀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프렌치 디스패치’(풀네임은 더 프렌치 디스패치 오브 리버티, 캔자스 이브닝 선)라는 잡지 표지의 ‘교정지’를 느닷없이 보여주는 영화의 첫신을 보는 순간부터 엔딩에 다다르기까지, 매 장면에 꽉 들어찬 정보들을 정신없이 받아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잡지의 구성 자체가 곧 플롯에 해당하는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잡지쟁이들의 마음을 꾹꾹 건드리고 지나간다. 미국 캔자스 리버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여행 잡지 ‘피크닉’이 어쩌다가 프랑스의 앙뉘 쉬르 블라제라는 가상의 도시에 지부를 둔 주간지 ‘프렌치 디스패치’로 탈바꿈하게 됐는지, 잡지의 발간 연혁을 짧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 잡지의 마지막 발행호에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리)의 부고, 짧은 여행기와 3개 테마의 기획 기사가 실려 있음을 ‘교정지’를 통해 알려준다. 이어지는 장면은 마지막 호를 만들게 된 편집부원들의 소개와 더불어 편집장이 어떤 태도로 잡지를 만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는 마감 풍경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편집부는 끔찍한 동시에 이상적인 마감을 이뤄내는 현장이다. 요약하자면 아서 하위처 주니어 편집장은 2천자를 쓰라고 지시했지만 1만자가 넘는 원고를 보내온 기자 J. K. L 베렌슨(틸다 스윈튼)의 기사가 “그녀가 쓴 최고의 기사”라고 추켜세우며 전부 실을 것을 지시하고, 팔을 다쳐 한손으로 타자기를 치며 마감하는 기자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의 방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편집자에게 “재촉하지 말라”고 말하며, 할당된 페이지가 넘쳐서 기사를 줄이거나 삭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인쇄 마감 한 시간 전까지도 계속해서 고민하는 편집장이다. 잡지사의 흔한 풍경을 보여주는 5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내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학창 시절부터 <뉴요커>라는 잡지를 즐겨 읽었던 웨스 앤더슨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를 만들고 평소 너무나 존경했던 <뉴요커>의 전설적인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을 시사회장에 초청했다. 당시 폴린 카엘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감독의 이름도 감독답지 못하다. 개명하는 게 어떠냐?”는 끔찍한 악평을 쏟아냈지만 그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각본집을 출간하면서 서문에 그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고 썼다. 만약 폴린 카엘이 살아 있었다면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어떤 평을 남겼을까. 이 정도로 자기 색깔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감독에겐 작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며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을까.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는 내내 26년째 모여 있는 ‘<씨네21> 오브 당산, 영등포’의 마감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메타버스’라는 네 글자에 주식시장이 들썩거리는 이 시대에 잡지를 만든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게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역설적으로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매 순간 증명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 20대 시절부터 오직 <씨네21>에 입사하는 꿈을 꾸며 살았고, 몇개의 영화 잡지 폐간을 겪었고, 그 회사의 사무실 집기를 내 손으로 치운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
웨스 앤더슨 감독이 폴린 카엘의 끔찍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성을 더욱더 단단하게 일궈왔던 것처럼 <프렌치 디스패치>에 담긴 4편의 에피소드에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사실을 기록하려 노력한 기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재 예술가 모시스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의 옥중 예술 작품 ‘콘크리트 걸작’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을 사명처럼 여겼던 J. K. L. 베렌슨과 학생운동 리더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의 성장담을 밀착 취재하며 그와의 심리적 거리두기를 두고 갈등하는 고독한 에세이스트 기자 루신다 크레멘츠(프랜시스 맥도먼드), 경찰서장 아들의 납치사건 현장에서도 기자 정신을 불살랐던 박식한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가 모여 편집장의 부고 기사를 한줄 한줄 나눠 써내려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헌정사 같은 엔딩이다. 블라제 거리의 낮과 밤 풍경을 샅샅이 취재하던 기자 허브세인트 새저랙(오언 윌슨)은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썼다. 그 비밀을 탐닉하듯 “팩트 체크”를 외치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자들이 계속해서 마감을 이어나가길 간절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