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완벽에 가깝다
2021-11-17
글 : 남선우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

틸다 스윈튼이 분한 베렌슨 기자가 들려주는 ‘콘크리트 걸작’의 중반부, 희대의 미술상 줄리안 카다지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홀연히 공기를 뒤바꾼다. 그는 매끄러운 언변으로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들을 사로잡는다. 수의 차림일 때나 턱시도를 갖췄을 때나 동일하게 냉철하다. 웨스 앤더슨 사단의 오랜 멤버인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이번에도 잘 짜인 세계의 뾰족한 일부가 되어 태연한 인생을 살다갔다. 그는 감독을 향한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프렌치 디스패치>의 시각적 완벽함을 설파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는 <다즐링 주식회사> <판타스틱 Mr. 폭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어 웨스 앤더슨 감독과 네 번째로 협업한 영화다. 감독의 다음 작품에도 출연한다고 들었는데, 웨스 앤더슨 감독의 어떤 면모가 배우로 하여금 계속 그와 함께하게 만드는가.

웨스에게 전화나 메일이 와서 무언가를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언제나 황홀하다. 그는 단연 유일무이한 감독이다. 그가 만들어주는 친밀한 현장 분위기를 사랑한다. 그의 작품 또한 매혹적인 동시에 진실한 목소리를 지녔다. 그런 수준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협업하는 것은 배우로서 특권이다. 웨스의 진화를 지켜보며 그와 깊은 우정을 쌓았는데, 그가 부르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려 한다. (웃음)

‘콘크리트 걸작’에서 미술상 줄리안 카다지오를 연기했다. 실존한 미술상이자 갤러리 후원자였던 조셉 조엘 두빈 경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인데, 그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자료들을 참고했나.

웨스에게 두빈이 쓴 글에서 스토리를 구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빈은 예술계 노동자들과 엘리트 계층을 설득하는 데에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떠한 예술품이 지닌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주장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런 점이 내 레퍼런스가 되었다. 그렇지만 줄리안 카다지오는 철저히 가상의 캐릭터이기에 웨스와 새로운 인물을 함께 창조해간다는 생각으로 연기하려 했다.

영화에서 줄리안 카다지오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시스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와 보낸다. 베니시오 델 토로와 합을 맞추는 경험은 어땠나. 클라이맥스의 장관을 만들기 위해 손발을 많이 맞춰야 했을 것 같다.

베니시오 델 토로, 레아 세두와의 작업 모두 즐겁고 훌륭했다. 특히 베니시오의 연기를 늘 좋아했는데 이번이 그와 처음 작업하는 거였다. 그가 고뇌에 빠진 아티스트 연기를 멋지게 해낸 것 같다. 클라이맥스에서 펼쳐지는 싸움 시퀀스를 찍을 때 정말 재밌었는데, 촬영 과정에서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베니시오에게 마구잡이로 던진 상자를 그가 그대로 받아내 내게 다시 던지는 그런 우연 말이다.

이번 영화는 흑백과 컬러를 수시로 오간다. 이런 화면 변화가 배우들의 준비 과정이나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배우도 의상 등을 신경 써야겠지만 의상감독과 미술감독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옆에서 지켜본 그들은 매 장면의 컬러 팔레트가 흑백 환경에서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며 톤을 조절했다. 빨간색이 빨간색으로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도 흑백 화면에서 돋보일 수 있는 특징을 고려하는 식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영화가 관객을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다. 덕분에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완벽에 가깝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취하는 기분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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