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2021-11-17
글 : 남선우
배우 스티브 박

코엔 형제의 <파고> <시리어스 맨>,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얼굴을 비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브 박은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잊을 수 없는 표정으로 각인된다. 그가 연기한 경찰서장의 셰프 네스카피에 경위는 두꺼운 안경 뒤 온화함을 장착한 프로페셔널. 스티브 박은 네스카피에에게서 남다른 영혼을 연상한 동시에 조용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고독을 발견했다. 그는 그 동화의 여정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차기작 촬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연결된 줌 화면을 통해 들려줬다.

SHUTTERSTOCK

<프렌치 디스패치>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세계에 첫발을 들였다. 시나리오의 첫장부터 검토했는지 당신이 출연하는 에피소드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부터 읽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웨스와 <개들의 섬>으로 먼저 만났다. 일본식 악센트가 가미된 영어를 구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몇몇 캐릭터의 목소리를 녹음했었다. 최종적으로 내 목소리는 쓰이지 않았지만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에 관한 이야기는 2018년 가을에 처음 들었다. 그때 웨스는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 시나리오만 읽게 해줬다. (웃음)

네스카피에 경위는 경찰이자 서장의 전담 셰프다. 영화는 그가 어떻게 이런 독특한 자리에 놓였는지 설명하지 않는데,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 나온 정관 스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녀가 수련생들을 대하는 마음, 멋진 요리를 해내려는 태도 등을 네스카피에에게 도입해보려 했다. 내게 네스카피에는 승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네스카피에의 외양은 웨스의 분명한 레퍼런스가 있었다. 일본인 현대 미술가이자 한때 프랑스에 거주했던 후지타 쓰구하루다.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앞머리를 짧게 잘랐다.

네스카피에가 착용한 굵은 뿔테 안경도 그를 설명하는 소품 중 하나다. 흑백 화면에서도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신경 쓴 것 같다.

웨스와 함께 수많은 안경을 착용해봤다. 12개가 넘는 후보가 있었던 것 같다. 최종적으로 고른 안경이 가장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 웨스가 특정 신에서 안경을 벗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도 있는데, 나는 안경이 캐릭터의 일부니 벗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가 계속 안경을 쓰고 있었던 이유다. (웃음)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늘 품고 살았다는 네스카피에의 대사는 그가 이민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게 한다. 당신이 할리우드 내 아시아계 배우들의 권리를 강조하는 선언을 발표한 지도 어느덧 24년이 흘렀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서 네스카피에의 대사를 읊으며 남다른 감정을 느꼈을 테다.

그 신을 찍을 때 내게도 어떤 공명이 일었다. 카메라가 안경 가까이 와 렌즈에 얼굴이 비쳤는데, 그걸 보지 않으려 애쓰는 와중에도 감독의 디렉션을 들으며 연기했다. 아주 내밀한 경험이었다. 네스카피에는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왜 그랬을지 생각하며 이민자로,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겼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은 인종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 내 오랜 친구인 샌드라 오의 성공, 첫 아시안 슈퍼히어로 샹치의 탄생을 보며 변화를 느끼고 있다. 내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지 않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고, 그건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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