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의 첫 사극물 도전이다.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그가 연기한 부흥수는 무예가 뛰어나고 성정이 악독한 무관으로, 전장에 머무는 왕자 이방원을 찾아가 병사를 일으키라 부추기는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 연도는 태조 4년으로, 아직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기 전이다. 흥수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 주방이 황실 보물을 바다에 감춰뒀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찾아내 이방원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의 속내는 이방원이 왕이 되면 자신은 탐라의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와 캐릭터 모두 권상우에게는 여러모로 남다른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우선 배우 인생 최초로 사극에 출연할 결심을 하게 했다. “언젠가는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정훈 감독이 연출을 한다고 해서 결정하게 됐다”라는 그는 여기에 더해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데 대한 부담과 기대도 함께 가져야 했다. 최근작인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그가 보여준 정의감 넘치는 호쾌한 박태용 변호사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흥수란 인물은 더욱 권상우답지 않은 선택 같다.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관객에게도 ‘저한테 이런 면도 있어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맡고 싶었다. 왜 나한테 이런 작품이 들어왔을까, 의아해하지 않았느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배우는 한 가지 장르에 갇혀 있는 게 스트레스다. 나를 확장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좋은 도전이었다.” 한류 스타의 원조 격으로서 또 액션 스타로서 2000년대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던 ‘히트맨’의 답변치고는 너무 겸손하다.
사극 촬영이 처음이다 보니 현장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우선 “시나리오를 읽고 현장이 어떨지 상상이 안 가는 작품은 처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세트 촬영이 많았다. “검술 액션도 처음이었다. 맨몸으로 싸우고 부딪치는 액션은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편하고 익숙한데 검술로 액션의 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고. 부상도 일상이라 이번에는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 강하늘과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맞붙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이다. 잠시 쉬는 타이밍에 촬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운동하다가 다쳤는데 촬영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촬영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요새 깁스가 좋아져서 감쪽같더라. 그나마 편안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는데 다치지 않았다면 더 역동적인 액션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며 웃음 짓는다.
검색 사이트에 ‘권상우 부상’이라 치면 지난 10여년간 그가 출연했던 영화, 드라마와 관련해 ‘오른쪽 아킬레스건 파열, 촬영 지장 없다’, ‘부상 투혼 기사화 거절’ , ‘다리 부상 할리우드 진출 문제없다’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숱하게 쏟아지는데 이번에도 그는 부상이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영화 찍으면서 많이 다친다. 예전에는 손가락도 8바늘 정도 꿰맨 적 있다”라며 상처를 보여준다.
탐라의 왕을 꿈꾸며 해랑(한효주)과 무치(강하늘) 일당을 추격하고 방해하는 흥수가 마지막에 무치와 맞붙는 검술 액션 신은 영화 전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배우의 기량이 만들어낸 놀라운 액션의 힘을 보여준다. 검을 휘두르는 권상우의 어깨 힘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기 때문이다. 사실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흥수의 역할은 분량 면에서 비중이 크지 않다. 다른 배우들과 맞붙는 장면 역시 많지 않다 보니 “아쉽지만 좀 외롭게 촬영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주변 동료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늘이는 워낙 친절하고 현장에서도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효주는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들이 “신나 보이는 게 느껴졌다”.
연기 경력 20년이 넘어가는 권상우에게도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 “배우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용하게 쓰이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거다. 코미디영화를 하면 즐거움이 크다. 신나서 연기하는 동안 희열을 느낀다. 또 멜로영화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권상우는 여러 장르를 오간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게 배우로서의 목표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차기작이 많다. 마대윤 감독의 <크리스마스 선물>(가제)이 개봉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고, 최원섭 감독의 <우리들은 자란다>도 이르면 올해 안에 만날 수 있다. 웹툰 <청소부 K>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제작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OTT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국내 시리즈 가운데 액션을 내세우는 시리즈가 드물다고 하니, “순수한 마음으로 개발해놓은 작품도 있다. 올해는 적극적으로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우 권상우의 새로운 도전은 이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