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열렬한, 관계의 영화: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 인터뷰
2022-01-28
글 : 배동미
사진 : 오계옥

변성현 감독은 <나의 PS 파트너>(2012)를 끝낸 뒤 <킹메이커>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시나리오를 동시에 썼다. 그만큼 “<킹메이커>는 오래 갖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누아르영화 <불한당>을 준비하며 만난 설경구 배우가 첫 술자리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했던 사람이 왜 누아르물을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 시나리오까지 건넸을 정도다. 대선 정국에 정치영화를, 그것도 선거를 다룬 <킹메이커>를 개봉하는 변성현 감독은 외려 오랫동안 꿈꿔온 영화를 “대선과 떨어뜨리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창작자로서 “오롯이 영화로만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코로나19로 영화는 운명처럼 대선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킹메이커>는 정치라는 겉옷을 둘렀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다룬 영화다. 감정을 전하는 두 사람이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책략가 서창대(이선균)였을 뿐이다.

- 1960~80년대 선거판에서 활약한 엄창록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시대에 대한 호기심이었나 아니면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었나.

= 이른바 ‘공신’이라 불리는 인물들은 선거 후 한자리를 차지하는데 엄창록은 그러지 못했다. 출신지가 북한이고 그의 수완이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했고, 그런 내용을 담아 시나리오를 썼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모두가 그를 필요로 하지만, 막상 그는 드러낼 수 없는 어떤 비책과 같다. 거기서 그림자라는 모티브를 얻었고, 배우 연기와 조명, 미술에서 그림자를 표현하려 했다.

- 당대 상황을 모르는 관객이 봐도 매끈한 장르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 같다.

= 10대가 봐도 재밌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당시 정치 지형이 중요하지만 이를 설명적으로 풀어내면 영화가 지루해질 수 있다. 극을 진행하면서도 시대 배경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만담 신을 은유적으로 그려냈다. 다만 아쉬웠던 건 더 깊은 내용까지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 이선균 배우가 <킹메이커>를 두고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감독은 <킹메이커>를 어떤 영화라 표현하고 싶나.

= 영화의 첫 번째 텍스트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가졌을 때 옳지 않은 수단도 괜찮은가,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 선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물음이다. 서브텍스트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다. 그림자는 빛을 사랑하지만 빛이 세질수록 점점 더 까매지는 역설을 지닌다. 예를 들어 영화의 마지막에 창대가 혼자 남아 있는 신에서, 빛인 운범이 걸어 들어올 때 창대가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첫 번째 텍스트보다 서브텍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영화를 냉정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 “냉정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 기본적인 형식은 건조한 걸 좋아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쿨하지 못하다. 외피는 차가워 보여도 감정만은 뜨거운 걸 좋아한다.

- <불한당>이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가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끌리는 이야기라면, <킹메이커>는 한배를 타고 있으면서도 생각의 결이 다른 두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킹메이커>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떤 감정인가.

= <킹메이커>의 감정이란, 결국 창대의 감정일 것 같은데…. (고민하다가) 멋있게 표현 안 하겠다. 좋아하면 잘 삐지잖나. 보통 다른 사람한테는 삐지지 않을 문제도 좋아하는 사람에겐 삐지는 이유가 된다. <불한당>의 경우, 설경구 선배가 시완이를 더 좋아했다고 생각하고 썼다면 <킹메이커>에선 창대가 운범을 더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인정 욕구도 있는 창대가 운범에게 삐진 거다. 그런 창대를 운범은 철저히 인정해주지 않았고.

- 중후반부의 경선 신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느껴진다.

= 경선 장면은 많은 인력이 나오는 커다란 시퀀스다. 그만큼 미술과 촬영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럼에도 결국 배우들이 긴장감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킹메이커>는 크게 3막으로 구성돼 있다. 앞부분은 목포, 두 번째는 전당대회까지의 경선, 마지막은 경선 이후의 대선까지다. 막마다 장르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찍었다. 우선 1막인 목포 시퀀스는 명랑하다. 2막 경선 장면은 장르적이고, 3막은 1막 오프닝에서 등장했던 질문을 한번 더 반복한다. 장르적인 2막의 경선을 기준으로 앞뒤에 같은 얘길 배치하되 연출 톤을 다르게 갔다. 엔딩에서의 질문은 1막의 명랑함과 다르게 슬프게 다가올 것이다.

- 실제로 엄창록은 극중 김운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극중 운범과 창대가 환상처럼 만나는 장면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모티브가 된 두 인물이 갈라선 이후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다고 한다. 엄창록은 1988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운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1988년 선거에서 졌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 시기를 그때로 잡았다. 두 사람에게 나조차도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가졌을 때 옳지 않은 수단도 괜찮은가라는 질문. 여기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선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상향을 다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을 상징하는 운범이 실은 그 장소에 없다. 물론 관객에 따라 창대에게 마음이 갈 수도, 운범에게 마음이 더 갈 수도 있다. 관객마다 결말을 받아들이는 게 다를 것이다.

- 차기작은 무엇인가.

= ‘최애’ 배우 전도연 선배와 함께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촬영에 들어갔다. 스스로를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를 하게 된 건 그 시기 한국영화 덕분이다. 한국영화가 가장 빛나던 시기에 활동한 감독과 배우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전도연, 한석규, 설경구, 세 배우를 좋아한다. <길복순>의 시나리오를 본 넷플릭스가 시리즈를 제안했지만 영화를 고집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인 전도연, 설경구 선배와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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