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박찬욱 감독의 오랜 동지들과 뉴커머外
2022-03-12
글 : 임수연

박찬욱 감독의 오랜 동지들과 뉴커머

<일장춘몽>에는 박찬욱 감독의 장편영화에 꾸준히 참여해왔던 스탭진이 합류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를 만들었던 아티스트들의 인장을 이어간다. 먼저 박찬욱 감독 영화의 무드를 완성할 프로덕션 디자인은 <올드보이> <쓰리, 몬스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을 함께한 류성희 미술감독이 그대로 배턴을 이어받았다. 그에게 박찬욱 감독은 “늘 새로운 이야기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인물이며, “나 역시 스탭이면서 같이 창작하는 입장에서 그런 작업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이후 <일장춘몽>으로 박찬욱 감독과 재회했다. “촬영감독이 지켜야 할 중요한 덕목은 연출자가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창작자이기 때문에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다.” (김우형 촬영감독) 이번 작품 역시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룩을 의도적으로 상이하게 하기보다는 이야기의 의도에 맞게 촬영을 끌고 가는 박찬욱 감독의 요구를 따랐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어어부 프로젝트 시절부터 <휴머니스트>(각본 박찬욱), <복수는 나의 것>,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각본 박찬욱)의 음악으로 인연을 맺었고, <파란만장> <고진감래> 등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파킹찬스’ 프로젝트에 줄곧 동행했던 아티스트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일장춘몽>은 처음부터 판소리 형식의 음악으로 극을 진행한다는 계획이 있어 시나리오가 나온 직후부터 함께 작업했다”라며 <일장춘몽>은 특히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님은 음악감독이 다른 식의 접근을 했을 때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고 낯설더라도 포용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의 해석을 많이 존중해주는 느낌을 받는다.”(장영규 음악감독)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과 <안시성> 등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이진희 의상감독은 이번에 박찬욱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그는 “동시대를 읽어내고 시각적으로 과감한 시도를 하는 박찬욱 감독만의 감각이 의상 작업자인 나와 굉장히 잘 맞는 지점도, 또 다른 에너지로 충돌하는 부분도 있어 의미 있는 작업으로 기억될 것 같다”라며 <일장춘몽>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신명나는 페스티벌

<일장춘몽>은 호러로 문을 열어 판타지 무협, 로맨스, 뮤지컬로 시시각각 장르가 바뀐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처음부터 박찬욱 감독은 영화가 담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을 구분해서 설명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원래대로라면 장르마다 구분을 하되 공통 고리를 찾아 결국 하나로 모이게 되는 식으로 촬영 계획을 짰을 것이다. 그림으로 치면 물감을 달리 써서 수채화로 시작해 유화로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일장춘몽>은 매 순간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훨씬 중점을 뒀다.” 가령 <일장춘몽>은 초반 무덤 장면에서 호러 장르를 위한 특별한 장치를 한다거나 무협풍의 액션 시퀀스에서 카메라를 화려하게 움직이는 변화를 주지 않는다. 검객과 흰담비가 지붕 위에서 춤추듯이 재미있게 싸우는 장면과 여러 안무가들이 춤을 추는 장면의 접근 방식은 본질적으로 같다. “기존 액션이나 뮤지컬 장르에서 봤던 촬영 방식을 선택하기보다는 어떻게 매 장면 순간순간의 움직임을 잘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한다”는 기준점은 <일장춘몽>의 이질적인 요소를 한 그릇에 담는 단단한 중추가 된다. 반면 미술은 의도적으로 장소의 이동을, 색채의 다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각 신의 톤 앤드 매너에 따라 상이하게 설계되었다. 빛이 거의 없는 어둠의 공동묘지에서 시작해서, 무협의 공간으로 이동한 후, 땅을 밟는 꼭두의 행렬이 이어진 뒤 몽유도원으로 상징되는 저승의 세계가 나타난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초반에는 블루 중심의 제한된 색을 보여주며 실루엣이나 선 중심으로” 표현했고, 점점 색이 강렬해지면서 마지막엔 “추상 표현처럼 화려하고 표현적인 색상”을 쓰며 마무리된다고 미술의 흐름을 설명했다. 그래서 초반 장의사의 집에는 나무를 가로와 세로로 엮어 창을 덮는 가림막이 등장하고, 검객과 흰담비가 싸울 때는 실루엣이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 것이다. 장의사와 꼭두가 등장하는 행렬 장면은 옐로의 땅이 강조된다. “꼭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채로운 색을 갖고 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컬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조금씩 채색된 옷을 입히고 컬러가 있는 깃발을 배경에 더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트렌디한 재해석

류성희 미술감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 고유의 문화에는 다양한 비주얼이 존재한다”라며 전통의 재발견이라 요약할 수 있는 이번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일례로 검객은 우산으로, 흰담비는 부채로 싸우는데 이들의 소품은 현대의 시각에서도 세련됐다. “우산의 경우 붓으로 뿌리듯 그림을 그려서 트렌디한 느낌을 담았다. 부채에 그려진 별자리는 기하학적으로 매우 세련된 패턴이 될 수 있다. 서양권의 추상 표현주의와 맞닿은 부분이 있다.”(류성희 미술감독) 전통 한복을 트렌디하게 재해석하며 특히 젊은 층까지 아우르는 사랑을 받았던 이진희 의상감독은 단연 <일장춘몽>의 적임자다. 그는 “<일장춘몽>은 동양적인 세계관에 서양의 IT 기술이 충돌하며 생기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젊은 세대가 오히려 한국 전통문화를 힙하고 럭셔리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에 착안해 이번 작품을 풀어나갔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전우치>의 “얼쑤! 얼쑤!” 궁중악사와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국악을 접목시킨 중독성 강한 O.S.T 등 시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물을 만들어왔다. <일장춘몽>에서는 현대극에서 국악을 삽입했던 것과는 반대로 사극에 현대적인 음악을 넣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판소리가 들어가긴 하지만 그외의 악기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사이키델릭 음악을 떠올렸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오르간, 드럼, 베이스가 주가 되고, 국악기를 연주하는 마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는 장구, 북, 꽹과리, 징, 태평소 등의 악기가 추가된다.” <일장춘몽>의 O.S.T 전곡은 애플 뮤직에서 들을 수 있다.

꼭두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일장춘몽>에서 꼭두는 의도적으로 현대화를 하지 않은 소재였다. 꼭두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신비롭고 비일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서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았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그 자체로 세련되고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초현실로 넘어가는 연결점에 꼭두가 본래적인 의미를 갖고 등장하는 것은 <일장춘몽>이 지향하는 동양철학적인 세계관과 이어진다. “서양이나 중국, 이집트에서 시체와 함께 수장했던 인형들은 약간 경직된 자세로 있다. 부자나 고위관료들이 죽을 때 함께 저승으로 가는 하인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꼭두는 즐겁게 저승길에 함께하는 동반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선비나 관리는 물론 광대, 포졸, 동네 아낙부터 어린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동작 역시 무척 유연하며 인형 하나하나가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며 만들어졌다.”(류성희 미술감독) 죽은 사람이 다시 현실 세계로 소환되고, 망자들이 부부의 연을 맺어 또 다른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일장춘몽>의 스토리는 불교 사상 더 나아가 양자물리학의 종교적인 해석과도 이어질 수 있다. “죽음을 다른 시공간으로 가기 위한 연결고리로 생각하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것이다. 때문에 한국 전통문화를 깊이 파고들수록 이는 전 세계인의 시대적 관심사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류성희 미술감독)

피사체 곁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아이폰으로 모든 장면을 촬영한 <일장춘몽>은 이동이 용이한 카메라의 특성이 현장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가령 이번 현장은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움직이는 장비가 별도로 필요했던 기존 상업영화보다 적은 인력으로 촬영팀을 꾸릴 수 있었고, 대부분의 현장에는 아예 그립팀이 존재하지 않았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대부분의 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었지만 카메라가 가볍기 때문에 마치 그립 장비 위에 카메라를 둔 것처럼 촬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계획 단계에서는 현장에 장비가 없으면 불안하다. 현장에서 갑자기 촬영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대비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일장춘몽>은 인력이 줄어들면서 현장이 좀더 가벼워졌고,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다.” 카메라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배우들의 클로즈업을 찍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기존 영화 현장에서는 배우들의 얼굴을 근거리에서 잡을 때 렌즈를 사용해 줌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카메라의 물리적 크기 때문에 실제로 피사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비가 시야를 막기 때문에 카메라 옆이나 카메라 오퍼레이터의 신체에 배우들의 시선을 결정할 표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장춘몽>에서 검객과 흰담비가 관 하나에 몸을 부대끼고 누워 상대를 바라보는 신은 카메라가 최대한 피사체와 밀착한 곳에서 촬영됐고, 덕분에 배우들의 미세한 피부 주름까지 잡아내며 생생한 표정을 화면에 담아낼 수 있었다.

김옥빈의 화이트, 박정민의 딥그린, 유해진의 옐로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의 한복을 만들 때 배우 고유의 색과 에너지를 읽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해온 이진희 의상감독은 <일장춘몽> 역시 각 배우들의 아이덴티티를 의상의 색상에 반영했다. “김옥빈씨가 연기한 ‘흰담비’는 이름에서부터 컬러가 정해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동양적이면서 서양적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을 가진 캐릭터라 화이트가 적합했다. 유해진씨의 경우 회의 때 감독님이 노란색이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주셨다. 놀이와 광기를 상징하는 노란색이 유해진씨가 가진 광대적이면서 해학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페이소스와 잘 맞았다. 박정민씨는 지금까지 작업하며 만났던 배우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그의 딥한 분위기가 다크한 그린과 잘 어울렸다. 검객이 처음 등장할 때 흙과 이끼를 뚫고 나오는데, 그 역시 딥한 그린 톤과 방향이 맞았다.” 그 밖에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옷의 질감에도 차등을 뒀다. 흰담비가 과거 무예의 고수였음을 보여주는 신은 “야생적인 느낌을 전하기 위해 가죽이나 거친 마 같은 질감으로 포인트를 주고, 가면은 닥섬유와 종이로 만들어 거친 느낌을 살리는” 식이다. 한국 전통 하면 조선시대를 떠올리고, 거기서부터 연상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일부러 시대 배경을 모호하게 잡아서 고조선·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를 통틀어 보여주는 유니버스를 만든 <일장춘몽>은 검객을 조선시대 이전의 인물로 설정했다. 때문에 “옷의 폭이 크고 보다 풍성한 조선 초기의 의복이 아닌, 고려시대나 그 이전 삼국시대 무사들이 입었던 스타일”로 방향을 잡았다. 유해진이 연기한 장의사의 서민적이면서 광대적인 이중적인 요소는 “기본적으로 담담하지만 가죽으로 포인트를 줘서” 완성했다.

저승사자의 이중 갓과 명부로 만든 옷

<일장춘몽>의 저승사자들은 전통적인 사후세계가 등장하는 영화의 세계관을 보여줌과 동시에 판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리꾼 역할을 한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두개의 갓을 겹쳐 쓰고 등장하는 이색적인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의상으로 저승사자들의 룩을 선택한 이진희 의상감독은 <전설의 고향>에서 봤을 법한 의상을 피하기 위해 사료를 찾아봤다고 전한다. “저승사자는 창백한 얼굴, 검은 입술, 큰 키에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고 그가 끌고 다니는 안개 때문에 다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휴먼 스케일(인공 환경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하는 인간 신체의 물리적 척도)을 보여주기 위해 갓을 두개로 겹쳤다. 생경한 느낌을 주면서 전통적으로 갓이 발달한 문화를 반영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더불어 저승사자의 옷을 자세히 관찰하면 죽은 사람의 이름들이 명부처럼 새겨져 있다. 저승사자의 직업적 특성을 보여주면서 붓글씨로 일종의 무늬를 만드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스우파> 모니카가 안무감독을 맡은 클라이맥스 군무

검객과 흰담비가 혼례를 치르면서 벌어지는 신명나는 춤판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 모니카가 등장한다. “나는 모니카 선생님의 팬”이라 밝힌 박찬욱 감독이 그에게 <일장춘몽>의 안무감독을 제안했고, 영화에도 직접 출연하게 된 것이다. 무덤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춤을 추게 만들 법한 음악으로 장영규 음악감독은 “판소리 목소리가 딜레이 에코처럼 계속 울리는 사운드”를 상상했다. 소리꾼 박수범과 전효정의 노래는 댄서들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독특한 영화적 리듬을 만든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신명나게 몸을 움직이고 음악이 가장 극대화되기 때문에 색채 자체도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가장 화려하게 담기게끔 미술을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앞 장면에 비해 컬러가 좀더 과감하고 표현적으로 쓰였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댄서들에게 카메라의 위치에 맞춰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이 장면을 찍었다. “크기가 작고 이동성이 높은 카메라였기 때문에 댄서들 사이에 들어가 촬영팀이 함께 움직이며 찍는 일이 가능”했고, 클라이맥스의 군무는 세대의 카메라를 동원했음에도 큰 문제 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 축제 분위기에 걸맞은 원색의 강렬한 한복은 조선 초기의 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조선 후기 민화는 명채도가 높지만, 초기에는 원색적이지만 명채도가 낮으면서 깊이 있는 컬러를 보여준다. 그래서 일본에서 나온 조선 초기 민화집을 구해 그동안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컬러에 집중해 구현했다.”(이진희 의상감독) 디테일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서양복에 비해 한복의 선은 굉장히 모던하고 단순하다. 때문에 “어떤 색을 입히느냐에 따라 과감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한복의 특성이다. 그 결과 <일장춘몽>의 한복은 형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컬러의 과감함 때문에 기존 사극에서 느끼지 못한 생경한 감각을 전달한다.

사진제공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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