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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도 통역이 되나요? <미키 17> 속 도로시가 현실 세상에 필요한 이유
한 눈에 보는 AI 요약
<미키 17>은 반복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주인공 미키의 소외된 삶을 조명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이며, 외계 생물 크리퍼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 도로시는 이러한 소외된 존재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정의와 윤리를 실현한다. 미키와 크리퍼의 대화는 단순한 전투를 넘어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영화는 언어를 통한 소통과 공감이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 미키 17과 죽음 노동의 현실
    1. 미키는 반복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익스펜더블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
    2. 그의 처지는 지구에서 소외된 삶과 유사하며, 죽음을 업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경멸받음
  2. 미키 17이 지닌 소수성
    1. 미키 17은 유일한 존재로, 우주선 내에서 철저히 고립된 상태
    2. 타인과 관계를 맺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존의 어려움을 겪음
    3. 크리퍼와 유사하게 혐오와 멸칭으로 불리며 소외됨
  3. 도로시와 언어의 역할
    1. 도로시는 미키의 죽음을 다르게 바라보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물
    2. 크리퍼의 언어 패턴을 분석하며, 외계 생물과의 소통 가능성을 발견
    3. 통역기를 통해 미키와 크리퍼 간의 대화를 가능하게 함
  4. 언어를 통한 이해와 희망
    1. 미키와 크리퍼의 대화는 단순한 전투를 넘어 상호 이해의 과정
    2. 외면받던 존재들이 언어를 통해 정화되고, 새로운 관계 형성
    3. <미키 17>은 언어와 소통이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강조

*<미키 1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키 17>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대사는 아마도 이 말일 것이다. “미키, 죽는 기분은 어때?” 외계 행성에 정착하는 인류를 위해 위험한 실험을 대신하는 ‘익스펜더블’은 한마디로 죽음 노동자다. 반복해 죽음으로써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숭고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한다. 사실 미키가 이 자리를 자원하기까지 익스펜더블은 오랫동안 공석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을 하며 죽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익스펜더블은 보험 가입도, 산업재해 보장도, 노동조합 가입도, 연금도 받을 수 없어 제도적 보호로부터 거리가 멀다. 익스펜더블에게 주어지는 설움은 지구에서의 미키의 삶과 일견 닮아 보인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가족의 끈끈함, 맹목적인 사랑, 존재의 인정을 경험해본 적 없는 그는 인간적인 소속감을 느끼기가 어렵기만 하다. 이처럼 법과 규칙이 외면한 사람은 주변부로부터 가볍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미키에게 죽음에 대한 기분을 묻는 질문은 순수한 궁금증이나 관심보다는 죽음을 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죽어도 괜찮은 처지의 사람에 대한 비아냥과 멸시, 경멸과 모욕에서 빚어졌을 것이다.

미키 17이 지닌 소수성

16번 죽고 휴먼 프린팅 기계에서 다시 태어난 미키 17은 딱 한명이다. 이것은 멀티플(복수의 복제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금기된 영화의 기본 규칙이자 미키 17과 미키 18의 조우가 의미 있는 사건이 되기 위한 바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키가 지닌 소수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필요에 따라 무리지어 다닌다. 미지의 행성으로 향하는 인간이 그룹을 형성하고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는 것은 생존문제에 직결된다. 이 공간에서 독립을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권력을 점유한 독재자 뿐이다. 그와 달리 미키는 가장 난잡하고 경시되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혼자다. 익스펜더블의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제외하곤 없다. 물론 그의 곁에도 몇 없는 동료가 있지만 티모(스티븐 연)는 모두가 선망하는 플리터 조종사 자리를 차지했고 사랑하는 연인 나샤(나오미 애키)도 “소수 정예의 만능요원”으로 불린다. 칼로리 단위로 철저히 나눈 식량처럼 이곳 생활은 공평해 보이지만, 오랜 계급제로 기울어진 채 굴러간다. 그러니 같은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도 미키의 발걸음이 더 무겁고, 힘겹다. 이주민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 곁에 홀로 놓인 이방인, 모두가 개척자의 눈을 반짝거릴 때 두려움으로 최전방에 서는 실험체. 우주 한가운데서 손목이 잘려나가는 순간에도 그것을 구경하듯 차 마시며 대화 나누는 사람들의 기괴한 풍경은 미키의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것과 같지만 상호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영화 속에서 미키의 처지와 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크리퍼. 버려지고 마는 ‘소모품’(Expendable)으로 불리는 미키와 ‘징그러운 것’(creepy+er)이라고 불리는 크리퍼는 배려 없이 (혹은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혐오가 깃든 이름으로 존재한다. 아기 크리퍼의 죽음에 분노한 크리퍼들이 비행선 앞으로 모여들었을 때 나샤의 말처럼 “울면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지만 독재자 마셜(마크 러펄로)은 이들이 전쟁을 자극한다고 오독한다. 미키와 크리퍼를 둘러싼 언어는 그런 식이다. 너그럽게 이해할 의지가 없고, 궁극적으로 이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언어들. 질문보다는 선언, 별명이 아닌 멸칭, 기다림보다는 말 끊기. 그리고 그때 이 둘 앞에 도로시(팻시 페런)가 나타난다.

언어로 정의를 구현하는 일

둥글둥글한 안경이 눈에 띄는 순박한 미소의 연구원 도로시. 미키가 지금까지 맞닥뜨린 여러 죽음을 몽타주로 나열하는 과정에서 그는 미키에게 생애 가장 짧은 생존 시간을 안내해준다. “10분이랬죠?”라고 되묻는 실험체에게 돌아오는 천진난만한 도로시의 답. “아뇨! 다행스럽게도 15분이에요.” 소폭이나마 연장된 미키의 수명을 기뻐해주는 모습은 “어차피 죽을 건데 뭐”라는 말로 일관하던 다른 팀원들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도로시는 타인을 이해할 줄 안다(바로 막 출력된 미키의 맨몸에 살포시 수건을 올려주는 것도 도로시다). 멀티플이 발각되고 난 후 마셜에게 잡혀가는 복도에서 도로시는 다소 뜬금없이 크리퍼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크리퍼의 울음소리에는 특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다고. 이것을 분석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이는 짧은 사이에 또 다른 생물학적·기술적·지정학적 가능성을 캐치해낸 것이다. 그러고선 부르르르 입술을 굴리며 크리퍼의 소리를 모사한다. 곧 독재자를 대면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도로시는 외계 행성 생물체의 언어를 터득했다. 그리고 다시 부르르르, 이번엔 미키가 같은 언어를 쓴다.

미키 17과 미키 18이 마셜의 미션을 받아 크리퍼와의 전투에 나가게 되었을 때, 도로시는 통역기를 내민다. 크리퍼의 언어를 인간의 것으로 독해해주는 것이다. 왜 도로시에겐 이국·이종의 말을 이해하는 게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다른 이의 울음소리를 외면하지 않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고사항, 최대한의 윤리가 이 안에 정박해 있다. 싸우기 전에 상대방을 이해하려 시도하는 것.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나누는 것. 실제로 기괴하게 생긴 마마 크리퍼와 미키 17의 대화는 생각보다 뭐랄까… 둥글다. 죽음, 피, 멸종. 거대하고 사나운 단어가 오가지만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온화하다. 이에 대한 이유는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카이(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의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미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미키를 늘 찌르고 괴롭혀온 바로 그 질문. 하지만 애도의 깊이를 알아챈 미키는 카이에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통역기를 들이밀며 어떻게든 이야기해보려는 미키의 사투는 마마 크리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도로시가 순수한 관심과 호기심을 통해 크리퍼가 고등동물이란 걸 알아챘듯(그래서 새끼의 죽음으로 크리퍼들이 슬픔에 마비됐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간파했듯), 식민 지배 위기에 놓인 마마 크리퍼 또한 자신들에게 다가서려 심지를 뻗는 유일한 인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받기 어려웠던 죽음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맞교환할 수 있는 거래를 내세움으로써 이 언어적 가교는 더 큰 빛을 발한다. 언어로 오욕된 존재들이 언어로 정화하는 과정. 이것이 <미키 17>이 가리키는 정치 전략이자 목적지로서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