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가 차기작으로 자체 경신 제작비 최대의 SF영화를 선보이는 전례 드문 이벤트를 워너브러더스가 허투루 넘길 리 만무하다. 수완 좋은 스튜디오 일원들은 미키만이 아니라 ‘디렉터 봉’까지 상공으로 띄워 올려 고공 행진에 나선 참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런던 월드프리미어를 마치고 곧장 날아와 오전 9시 베를린 한가운데 자리한 호텔에 모습을 드러냈다. <씨네21>과 잠시 동석한 뒤 기자회견과 갈라 상영까지 치르고 나면 LA, 한국 등 당면한 초고속 세계 투어가 그를 손짓하는 하루. 창밖에 나치 독일 패권의 문턱이자 분단 시절 동서독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브란덴부르크문이 서 있고, 곁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가 뿌리내린 도시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그곳에서 ‘송강호화’한 로버트 패틴슨의 낙천적인 복제인간과 봉준호 최초의 로맨스 서사에 관해 논하자니 감독과 기자가 통과해야 했던 시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득한 간극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미키 17>에 관한 대화는 행성 식민 지배, 복제인간 1인을 향한 학살, 반복되는 파시즘적 역사를 경고하는 독재자 캐릭터 등에 다가감으로써 감독의 숙소를 선정하는 베를리날레의 안목에 동의하게 만들었다. 베를린 현지 시간 2월15일 아침에 이루어진 봉준호 감독과의 짧은 대화를 옮긴다. <미키 17>을 되짚는 봉준호 감독의 코멘터리는 이후 더 상세히 전할 예정임도 밝힌다.
- 한국 개봉을 준비하면서 번역 자막에 각별히 공들였다고요.
제가 한글로 쓴 초고를 샤론 최, 최성재씨가 1차 번역을 한 뒤 미국 다이얼로그 폴리시 작가를 붙여서 각색을 한 게 출발이죠. 찍다보니 현장에서 배우들이 약간의 애드리브로 ‘더하기 빼기’를 했고요. 미국영화인데 시나리오를 한글로 썼으니까 이게 되게 특이한 케이스잖아요. 자막도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제가 좀 거들어드린 거죠. 이 장면에서 내가 최초에 써둔 한국어는 ‘번식’이었다, 하는 식으로. 번역 과정에서 적확한 영어 표현을 못 찾아서 어쩔 수 없이 약간 바꾼 대사 중 한글 자막에선 원래 표현대로 되돌려놓은 것도 있고요. 맥락은 같으니까. 저랑 성재씨, 노련한 여성 번역가 두분까지 넷이서 나란히 앉아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쭉 만졌어요.
- <기생충>이 남긴 뜻밖의 유산 중에는 “1인치의 장벽”이라는 표현으로 외국어 자막 수용도가 낮았던 영미, 유럽권의 인식 변화를 재고하는 오스카 수상 소감이 있었습니다. 마침 <미키 17>은 인간과 크리퍼의 통역 대화라는 모티프가 중요한데요. 미국 워너브러더스와 하나의 거대한 통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외국인 감독으로서 약간의 메타적 농담도 곁들인 설정인가요. (웃음)
하하, 어쩌다 레이어가 많은 인생이 된 건가.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말이죠. <설국열차>와 <옥자> 때 이골이 날 정도로 해봐서 그런지 이번엔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했어요. 다 우리 팀원들 덕분이죠, 뭐. 이번처럼 감독이 직접 관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언어에 대한 불편함이나 통번역 걱정은 크게 안 할 것 같아요. 외화의 경우 오역에 대해서 한바탕 소동이 인다거나 특정 번역가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모든 장면을 다 같이 보면서 훌륭한 번역가들을 서포트했으니 이번 <미키 17>의 한글 자막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 베를린 팔라스트 계단을 내려오면서 외신기자들과 “봉 감독님 영화 중에 이렇게 스위트한 터치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었던가”라는 단상을 주고받았습니다.
진짜죠? 놀리는 게 아니라. 드디어 이런 얘기를 듣는 날이 오다니, 살다 살다!
- 외견상 차가운 금속성의 영화를 상상해온 사람들도 있을 테니 그 괴리에 더 주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어지는 일들의 실체는 잔혹하기 그지없으니까요.
기쁨과 함께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미키가 착하잖아요? 그런데 그 착한 애가 마지막에 파괴되지는 않죠. 그런 게 일종의 위로가 될 수도 있고요. 파괴될 법한 세상인데 파괴가 안되는 거지.
- 미키 18을 놓고 보면 성정이 마냥 순하지는 않은데요, 독재자 응징을 위해서 폭력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예측 불허의 또라이 쌍둥이가 나온 거죠. 그런데 18도 변화해요. 자꾸 누구를 죽이자고 하더니 탄생 이후 짧은 시간이지만 신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성숙해진다고 해야 하나, 캐릭터 아크가 있죠. 이 친구가 은근히 형처럼 17을 보호해주려는 듯한 기질도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로버트 패틴슨 배우가 1인2역을 한 거지만 저한텐 1인4, 5역쯤 돼요. 로버트가 정말 섬세하게 잘해줬죠.
- 클라우드에 백업해둔 최신 기억을 새로 프린트된 몸속에 넣으니 복제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니플하임 행성 내 최초의 ‘멀티플’인 미키 17과 18로 보건대 멀티플끼리도 인격이 다를 수 있군요.
제 나름의 유머로서 힌트를 드리자면 초반부에 니플하임 과학자, 의료진이 미키를 뒤로하고 자기들끼리 막 시시한 게임을 하면서 놀고 있잖아요? 약간 어리바리한 남자 직원 하나가 휴먼 프린팅 기계 앞을 지나가다가 발이 걸려요. 그때 미키 머리에 연결된 줄 하나가 툭 빠지는데 아무렇지 않게 다시 끼우죠. 그 줄이 빠지면서 18이 그렇게 된 거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끼린 그렇게 얘기했는데, 인간이란 변수 앞에서 기술은 때론 허무하다는 거죠. 아무리 미래의 첨단 테크놀로지라고 해도 갑자기 30분간 정전이 되거나 누구 하나가 선을 잘못 뽑으면 오작동하는 건 간명한 이치 같아요. 익스펜더블 시스템이 가동될 현실이 찾아온다면 18 같은 존재가 반드시 나올 겁니다.
- 복제의 불완전성이 탄로나면서 그동안 연구진이 죽인 수많은 익스펜더블이 한 사람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라는 방증도 됩니다. 문득 더 서늘해지는 대목이었어요.
미키 1과 미키 18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믿음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죠. 결과적으로 <미키 17>은 미키가 16번 죽고 17에서 이제 멈추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미키와 나샤가 동화처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17로서 같이 늙어가기로 한 것만은 확실하니까. (혼잣말을 하며) 아, 가만있어봐. 그래서 제목이 <미키 17>인 건가? 누구는 제목을 미키 18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어쨌든 전 영화 타이틀을 세 가지 버전으로 심었습니다. ‘MICKEY 17’로 문을 연 영화 제목이 플립 시계처럼 표시되는데, 글자가 팔락이면서 슬쩍 숫자가 18로 넘어가죠. 영화 마지막에는 그의 본래 이름 ‘MICKEY BARNES’로 돌아가고. 17번째 몸이지만 자기를 되찾은 것이었으면 했어요.
죽이는 그룹, 살리는 그룹
- 원작 소설에서 무료해서 도박에 빠졌던 역사학자가 영화에선 마카롱 가게를 창업했다가 빚더미에 앉은 청년 자영업자가 되었으니 한층 짠해졌다고 할까요.
바보. 아니다, 바보까지는 아닌데 어수룩하고 착해서 살면서 늘 손해 보는 애라고 할까….
- 자본가 정치인이 행성 식민 지배를 일삼는 <미키 17> 세계관에서 주인공은 가장 반자본주의적 인간인 거네요.
스티븐 연 배우가 연기한 티모와 정반대죠? 티모는 어느 우주선에 티오가 있는지 딱 알아보고 제자리 챙기고 법정에서도 자기 변호 잘하는 그런 사람인데 미키는 손해를 보고서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는 성격이니까. 그렇게 보면 미키 18은 그동안 17 안에 쌓인 화를 대신 풀어주는 존재일 수도 있지 않을지…. 손해 보고 뒤통수 맞고 그래도 달려들 줄 모르니 18 눈에 17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 <설국열차>는 원작 그래픽노블의 뼈대만 남기고 사실상 봉준호의 오리지널리티로 재구축한 작업이었습니다. <미키 17>은 상대적으로 소설의 디테일들이 살아 있지만 인물의 출신 성분이나 결말부 등 결정적인 부분이 역시나 새롭습니다. 소설의 출판 전부터 판권 계약해 영화화를 준비한 경우인데 시나리오 각색의 좌표를 열어두는 것이 초창기부터 중요한 요건이었나요.
원작에 충실한 각색이란 걸 제가 해본 적이 없어서.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각색도 있을 것 같고요. <살인의 추억>만 해도 대학로에서 대히트한 김광림 선생님의 훌륭한 희곡 <날 보러와요>에서 3분의 1, 그리고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내용이 3분의 1, 그다음 제가 상상해서 넣은 것들이 3분의 1. 이렇게 뒤섞여 있죠. <설국열차>는 핵심 컨셉을 가져왔지만 인물 구성부터 그들이 가진 믿음, 작중 동력이 되는 사건들을 대폭 바꾸었고요. <미키 17>은 그만큼은 아닌데 역시나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토니 콜레트가 연기한 일파 캐릭터가 완전히 새로 생겼죠.
- 한국 관객이라면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나보다 둘이 더 무시무시하고 우스꽝스럽다고 해두죠. 필리핀의 마르코스 부부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 같은 역사 속 선례도 있고. 레퍼런스가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과거의 역사 속에서 수집한 것에 가까워요. 관객이 우리 주변 가까운 곳을 돌아본다면 그것을 제가 억지로 막을 수는 없고, 또 완전히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 아니할 수 없지는 아니하다’! (웃음) 다만 이건 명확히 해두죠. 2021년에 썼고 2022년에 촬영한 영화입니다.
- 지구에서 소위 탈락한 시민들이 값싼 노동력이 되어 우주 식민지 개척에 동원되는 풍경은 2021년보다 2025년 관객이 볼 때 더더욱 피부에 와닿는 상상력이기도 하겠습니다. 우주산업 경쟁에 뛰어든 일론 머스크도 떠오르고요.
마셜(마크 러펄로)의 뺨에 총알이 비껴가는 장면을 본 미국 기자들이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을 반영한 거냐, 예언이라도 한 거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시차를 짚어둘 수밖에 없더군요. 제가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출국한 무렵이 초고를 처음 탈고한 때인데 일단 프로듀서들한테 던지고 베니스로 갔거든요. 그래서 정확히 기억하는데 2021년 9월이죠. 이미 그 시나리오 속에 지금의 인물들, 대사들, 디테일들이 거의 대부분 들어 있었어요. 이후에는 되게 미세한 부분만 고친 거지.
- 한편 우리의 독재자들보다 뛰어난 생명체도 등장해요. <미키 17>의 크리퍼들은 볼모로 잡힌 종족을 되찾으려 할 때조차 우주선 주위를 감싸고 돌면서 비폭력 시위를 고수하고, 서로 공평한 선에서 더이상 타협 불가능한 외교적 협상안을 제시하죠. 아름다웠습니다.
네, 마마 크리퍼가 아주 뛰어난 정치가예요. 진짜 무슨 다수당 원내대표를 할 만한 체급 아니겠어요?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협상의 결과를 이끌죠. <미키 17>엔 두개의 커뮤니티가 있어요. 마셜이 이끄는 인간 그룹과 마마 크리퍼의 비인간 그룹입니다. 한쪽은 미키라는 복제인간을 반복적으로 죽이는 방식으로 무자비하게 나아가는데 다른 한쪽은 베이비 크리퍼 하나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모두 뛰쳐나오죠. 저는 <미키 17>의 벌판이 무엇보다 이 대조를 위해 쓰였으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