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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란> 배우 이수혁

- 개봉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먼저 만난 적 있다. 전주의 경험이 어떻게 남아 있나.

일정이 빡빡했지만 즐거웠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로 영화제를 찾은 거였다. 예상보다 관객 여러분이 정말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만큼 질문에 답도 잘하고 싶어서 한마디 한마디를 엄청 고심해서 했던 기억이 난다.

- 인물 자체도 극의 정서도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나.

‘감독님이 어떤 분이실까’ 하는 호기심이 맨 먼저 들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 포인트를 짚어내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강동인 감독님을 만났고 같은 걸 보고 자란 또래라 그런지 잘 통했다. 신나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한 작품을 끌고 가야 하는 연출자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주시니 신뢰가 갔다.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는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여느 때보다 컸다. <파란>이 내겐 첫 영화 주연작이고 감독님에겐 첫 장편이니까. 우리가 처음 의논했던 대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잘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 태화는 새 삶을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수혁 배우에게는 그가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출발한 곳이 ‘살인자의 장기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였다고 들었다. 나도 거기서부터 캐릭터를 만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죄의식을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기로 한 사람의 심리는 어떨까.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것에서 오는 감정이 또 있을 텐데 그 감당 못할 심정이 또 무엇일지 여러 방면으로 고민을 거듭했다. 아마 태화는 아버지의 일부가 자기 몸속에 있다 보니 결국 아버지의 죄로부터 자신이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거기다 호흡에 예민한 클레이 사격선수이지 않나. 숨 쉴 때마다 아버지가 느껴져 무척 괴로웠을 거다.

- 태화는 피해자의 딸인 미지(하윤경)에게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지를 찾아 도움을 주려 한다. 태화가 왜 그렇게까지 행동한다고 해석했나.

다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버지의 뺑소니 사고와 그 사고로 사람이 죽은 일 모두 말이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그렇게 빨리 죗값을 대신 치러서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을 거라고 봤다. 그러니까 태화는 어쩌면 선인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일 수도 있다.

- 감정을 대체로 속으로 삭이는 인물이라 대사가 적고 매우 정적이다. 그렇지만 내적으로 감정의 파란을 겪는 사람이라는 걸 관객에게 설득해야 하는 인물이라 도전적인 캐릭터다.

감정선을 잘 따라갈 수 있는 시나리오의 덕을 많이 봤다. 오랜 통증의 고통과 아버지의 일 그리고 미지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생기는 변화까지. 일련의 사건에서 태화가 어떤 상태일지가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느껴졌고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다. 감독님과 워낙 소통이 원활하니까 수시로 물어보면서 즉각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했다.

- 오프닝 시퀀스의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카메라가 경기에 나선 태화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쫓아간다. 이렇게까지 맡은 역할을 뒷모습으로 관객에게 소개하는 건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시퀀스를 찍을 당시에 어땠나.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된 시퀀스이다 보니 도움받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관객이 내 등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 뒷모습만으로 태화가 힘들지만 의지가 남은 인물이라는 걸 표현할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여기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호흡이 중요하다 보니 태화와 같은 병이 있는 분들이 어떻게 숨을 쉬는지 자료조사도 하고 연습도 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 콕 집어 ‘영화’에 나오는 게 꿈이었다고 말해왔던 당신은 영화기자의 호기심을 당기는 배우였다. 그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

아주 어릴 적부터 영화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아침잠이 그때도 많았는데 일요일 아침만큼은 TV에서 하는 디즈니 영화를 본다고 일찍 일어났다. 전날부터 설레서 잠도 못 잔 채로, 소파에 앉아 새벽 뉴스를 보면서 영화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 극장을 자주 다녔다. 영화 감상문 숙제에 늘 진심이었고. 비디오 대여점도 빼놓을 수 없다. 거기서 수많은 명작을 빌려 봤다. 비디오 윗부분을 검지로 싹 빼서 꺼낼 때, 비디오가 내 앞으로 딸려나오던 순간의 즐거움이 생생하다. 반납한 테이프를 다시 감아주는 기계가 신기해서 한참 쳐다보던 순간도. 극장도 대여점도 영화 애호가인 부모님과 함께 다녔는데 그때 두분의 손을 잡고 가족이 좋아하는 장소로 향하던 추억이 소중하다. 그 이후로도… 돌아보니 내 인생에 영화가 없었던 적이 없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 맞다. 2009년에 <씨네21> 라이징 스타로 인터뷰했을 때다. 당시 기사를 가지고 왔다. (웃음)

(기사를 읽으며) 맞네. 이때 아마 진심으로 말했을 거다. 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었고 영화 공부도 더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강동인 감독님처럼 좋은 연출자를 만나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 여기 보면 영향받은 감독으로 팀 버튼빔 벤더스가 있다. 이 두 고독한 방랑자에 대한 애정은 이제 어떠한가.

여전히 정말 좋아한다. 특히 팀 버튼.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챙겨 봐야 하고. 요즘엔 특정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파기보다는 IMDb 차트를 참고하면서 두루두루 본다. 차트 순위를 늘 예의 주시하는데 (지금 1등이 뭔가) <쇼생크 탈출>일 거다. 2위가 <대부>고 다음이 <다크 나이트>. (맞다) 매번 거의 비슷하다.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흔치 않다.

- 배우 중에는 크리스천 베일, 게리 올드먼, 빈센트 갈로를 얘기했다. 빈센트 갈로가 들어가 범상치 않은 리스트가 됐는데 짙은 감정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한 게 아닐까 싶다.

연기적으로 백지상태였다 보니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에 잘한다는 남자배우들의 작품은 DVD로 다 구매하고 자막이 없어도 연구하듯이 봤다. 지금 이 리스트에 이름 몇몇을 추가하자면 우선 브래드 피트. 그를 가장 앞자리에 둬야겠고, 라이언 고슬링라이언 레이놀즈도 있다. 그리고 티모테 샬라메. 요즘 너무 멋있다.

- 최근 좋게 본 영화로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꼽았다. 얼마 전 재개봉했을 때 보러가기도 했나.

물론이다. 평소 영화는 집에서 OTT로 보는데 영상미나 사운드가 특히 중요한 작품은 아이맥스나 돌비 상영관을 찾아간다. <서브스턴스>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그랬다. 어떤 영화든 보기 전에는 그냥 재밌게 봐야지 하는 마음인데 일단 시작하면 공부하는 자세가 된다. 최근에 다큐멘터리 시리즈 <Watch 아메리칸 맨헌트: O. J. 심슨>을 봤는데 편집이 신기하고 좋더라. 바로 다음 에피소드를 틀 수밖에 없게 하는 이 강력한 편집의 힘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진지한 작품만 얘기했나. <슈퍼배드> 같은 귀여운 애니메이션도 좋아한다.

- <동네의 영웅>의 취업준비생 찬규, <일리 있는 사랑>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목수로 사는 준,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차주익 팀장까지. <파란>을 보고 전작들을 다시 보고 나니 현실에 발붙인 인물과도 조화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버스에서 졸다가 내릴 때를 놓치기도 하고, 옆구리 터진 김밥을 어떻게든 말려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도 편안하더라. 꽤 긴 필모그래피를 쌓은 지금 시점에선 대중에게 친숙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끼진 않나.

없다.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절실했던 시절에는 그러기도 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생각은 희미해진다.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거고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내 식대로 풀어내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파란>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찍었다. 사격선수, 형사 등 내가 맡는 캐릭터들의 직업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공개를 앞두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직업이 다 다르다. 이수혁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알아봐주는 관계자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감사하고 기쁘다. 앞으로도 이렇게 묵묵히 하다보면 어느샌가 내 길이 더 넓어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 눈에 보는 AI 요약
이수혁은 영화 <파란>을 통해 첫 주연을 맡으며 깊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캐릭터 태화를 통해 죄의식과 고통을 내면적으로 표현하며 연기적 성장을 경험했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품어온 그는 지금도 다양한 장르와 감독의 작품을 탐구하며 연기에 몰두하고 있다. 현실적인 캐릭터에 대한 자연스러운 접근과 함께, 앞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통해 스펙트럼을 넓혀가고자 한다.
  1. 첫 주연작 <파란>과 전주국제영화제
    1. 이수혁은 첫 주연작 <파란>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해 관객과의 소통을 진지하게 준비
    2. 감독과의 교감을 통해 세대 공감과 리더십에 신뢰를 느껴 출연 결심
  2. 캐릭터 태화에 대한 접근
    1. 태화는 살인자의 아들이자 장기 이식자로서 죄의식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
    2. 피해자 가족에게 책임감을 느끼며, 이기적이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로 해석
  3. 연기 과정과 도전
    1. 감정 표현이 적은 캐릭터를 호흡과 움직임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
    2. 오프닝 시퀀스에서 뒷모습만으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고민과 연습
  4. 영화에 대한 애정과 성장
    1.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자람
    2. 팀 버튼과 빔 벤더스 등 감독과 배우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연기적 성찰 지속
    3. 최근엔 <더 폴>, <서브스턴스>, 다큐 등 다양한 장르를 탐색
  5. 배우로서의 방향성과 태도
    1. 현실적인 캐릭터와의 조화를 통해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연기 추구
    2. 이제는 스펙트럼보다 주어진 역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데 집중
    3. 다양한 직업군의 캐릭터를 맡으며 연기 폭을 넓혀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