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2022 드라마의 경향과 트렌드
2022-12-15
글 : 김소미
법정물의 인기와 BL의 부상 그리고…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법대로 시청하라

슈퍼히어로 대신 검사와 변호사가 드라마를 주름잡았다. “법정에 오를 만큼 첨예한 갈등이 서사적으로도 재밌을뿐더러 매회 사건 중심이어서 시리즈 전체를 다 보지 않아도 에피소드별로 완성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강점”(배동미)에서 법정물의 인기 요인을 찾거나, “땡처리인가 아부인가”(유선주) 하며 잠시간 팔짱 끼고 바라보게 하는 올해의 트렌드다. 위에서 내려온 입김의 유무야 알 수 없지만, 아래에서 올라온 울분의 흔적은 법정물들이 들춰낸 불편한 진실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일상에서 불평등, 혐오, 증오, 차별, 배제를 경험한 대중의 정서가 심판과 추궁의 욕망, 혹은 변호의 권리를 바라고 있다고.

<소년심판> 소년부 판사 _김혜수

<군검사 도베르만> 군검사 _안보현

<어게인 마이 라이프> 환생 검사 _이준기

<닥터로이어>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 _소지섭

<왜 오수재인가> 스타 변호사 _서현진

<빅마우스> 생계형 변호사 _이종석

<법대로 사랑하라> 세입자 변호사 _이세영

<천원짜리 변호사> 수임료 천원 변호사 _남궁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국선 전담 변호사 _정려원, 이규형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 로펌 대표 _김선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_박은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쏘아올린 작은공

장르적 표면이 어떻든 드라마들의 관심사가 현실의 문제의식들에 한층 밀착한 한해였다.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등장인물뿐 아니라 그가 속한 약자의 범주를 주목하도록 한 뒤,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김성찬)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특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 속 장애인 담론에 대한 해석 투쟁이 벌어졌다는 점”(위근우)에서 대중 담론을 이끌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사회적 소수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버린”(조혜영) 새로운 풍경은 반갑지만, 대중문화에서 ‘용인’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예외적인 유능함이나 지적장애 성폭력 피해자 신혜영 에피소드 등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작품 바깥에서 다각도로 재고될 필요가 있다. 물론 “논란을 이끌어낸 자체가 유의미하다”(조현나)는 진단도 가능하다. 한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에피소드식 구성의 대중적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도 트렌드를 보여준다. “사건으로의 진입이 빠르고 에피소드가 1~2회 안에 정리되는 전개, 갈등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 플롯과 악당의 부재, 전체적인 톤이 밝은 점”(김송희) 등이 한국 TV드라마 스토리텔링의 새 경향을 적절히 가리킨다는 평가가 나왔다. 창원 팽나무가 실제 천연기념물에 지정되거나 해양수산부가 국내 수족관의 돌고래 21마리를 모두 바다쉼터로 돌려보내겠다는 계획을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등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단순히 유행을 만드는 것을 넘어 사회적 선순환의 트렌드를 이끌어냈다”(이자연).

# OH! ENA

지상파도, 종합편성 채널도 아닌 케이블 채널에서 17.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이 나왔다. ENA 개국 이래 최고치다. 지상파에서 편성될 수도 있었지만 스튜디오 지니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ENA 채널로 가게 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결과적으로 6화부터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달성했다. 직전까지 ENA의 역대 최고 시청률은 리얼리티 연애 예능 <나는 SOLO>의 가구 시청률 1.13%였다. 2022년 방송산업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은 “플랫폼 춘추전국시대의 경쟁에서 결국 답은 기본기라는 걸 입증한 성공 사례”(진명현)이자 “좋은 콘텐츠 하나가 채널을 통째로 먹여살릴 수 있다는 증거”(송경원)로 자리 잡았다. 예능 중심 채널에서 드라마 명가로의 입지를 노리는 ENA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제2의 ENA가 2023년에 또 나올까. 1등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훌륭한 작품에 반응해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의 개방성과 눈높이를 확인시킨 이번 사례는 드라마 기획·투자·제작에 있어 “개별 프로젝트의 규모와 스타 배우 캐스팅이 아닌 작품 퀄리티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임수연)는 공감대를 콘텐츠 업계에 형성했다. 이는 곧 “작품 내적으로 좋은 기획과 소재 발굴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김현수)이라는 밝은 미래를 전망하게 한다.

#검디검은 현실의 그림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부조리가 작중 인물의 정서, 사건의 핵심으로 자리한 경우가 많았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 중심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캐릭터를 구성해 계급적 관심을 지니도록 안내했고, <작은 아씨들>은 한국 사회에 축적한 독재, 군사주의, 천민자본주의 등의 문제를 관통했으며, 이 밖에도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약한영웅 Class 1> <몸값>과 <좋좋소> 시리즈, <안나 감독판> 등이 표방하는 장르 및 주제와 상관없이 저변에서 청소년, 계급, 차별, 부의 불평등, 디아스포라 등에 관해 노골적으로나 은연중에 설파”(김성찬)했다. 이러한 경향을 여성 서사로 수렴해보면 “빌딩 미화원들이 주식 내부자거래를 하고(<클리닝업>), 남의 인생을 가로채 살고(<안나>), 700억원을 횡령하는(<작은 아씨들>) 등 <구경이>(2021)에 이어 좀 이상하거나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가보지 않은 곳에 멀리 가는 자유도가 높아진”(유선주) 것으로 바라볼 여지도 있다. 욕망 사회의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로 한 건 비단 여자들만이 아니라, 10대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 학교는><약한영웅 Class 1> 등 “호러, 스릴러, 법정, 멜로, 액션 등 전통적 장르들의 무대가 학원으로 이동하는 경향”(김혜리)은 드라마 속 학교가 비정한 사회 풍경의 압축판으로 기능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변화다.

<시맨틱 에러>

#BL, 수면 위로 올라온 서브컬처

수면 위로 올라온 서브컬처 중 BL의 존재감이 가장 강력했다. 2월16일 공개된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박재찬, 박서함이라는 신인배우의 절묘한 외모 합과 관계성, “사회파 드라마가 아닌 말랑말랑한 캠퍼스물의 장점을 살린”(임수연) 연출에 힘입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올해 <시맨틱 에러>가 제시한 새로운 비전에 관해서는 “웹툰, 웹소설 시장에서 이미 견고한 팬덤을 구축했으나 영상산업에서는 여전히 음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BL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린 작품”(장영엽)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BL의 대중화 가능성을 증명”(김선영)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팬들을 모두 흡수하면서 드라마의 팬덤으로 시장성을 입증한 희귀한 사례”(김송희)이자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시맨틱 에러>가 앞으로 드라마 시장에 긍정적 자극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드라마 신에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관객의 반응으로 입증되었다. 두 번째, 웹소설 팬들이 드라마 팬으로 유입되는 연결성이 작동하고 있다. “BL 웹소설 소비층이 얼마나 집요하면서도 까다로운지를 가늠해볼 때”(김송희) 이는 달리 말해 원작의 소구 포인트를 정확히 이해하고 확장할 능력이 있는 젊은 영상 창작자(김수정 감독)들이 등장하는 신호탄으로도 보인다. “<시맨틱 에러>의 성공은 노림수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진중한 태도와 그들이 가진 절박함이 박자를 갖춰 대중을 움직인, 지극히 운명적으로 탄생한 결과”(복길)라는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다. 따라서 세 번째, <시맨틱 에러>는 “BL 드라마가 주류 미디어에 등장했다는 면”(오수경)에서 퀴어 드라마가 아닌 BL 드라마만의 새로운 접근법을 논의하게 만든다. 현재 BL물 제작 붐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소비하는 계층이 헤테로 여성임을 감안할 때 BL물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타자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기획적 고민”(박현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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