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반대말이 진정 절망일까. <화란>은 희망의 반대말이 체념과 상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리는 지옥도다. 폭력이 일상화된 집,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는 네덜란드를 막연히 낙원으로 여기며 탈출을 꿈꾼다.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했던 소년에게 유일하게 손 내밀어주는 이가 지역 폭력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이다. 치건은 연규에게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바라보지만 그가 손을 내밀수록 상황은 시궁창 속으로 빠져든다. 김창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첫 장편영화 <화란>은 감독의 뚝심이 느껴지는, 한국영화에서 익숙한 듯 보기 드문 색의 영화다. 오랜 시간 영화 현장을 경험한 김창훈 감독의 의지는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와 하이스토리에 가닿아 마침내 희망의 싹을 틔웠다.
-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다. 축하한다.
= 빈말이 아니라 꿈인지 생시인지 잘 분간이 안된다. 너무 떨리고 설레고 정신이 없다.
- 첫 장편이라 믿기 힘들 만큼 쉽지 않은 소재와 무거운 이야기다.
= 시나리오를 쓸 당시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사는 게 참 뜻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는 게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들을 보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 무거운 생각과 관점들이 많이 반영됐다. 시나리오를 읽고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님이 바로 연락을 주셨는데 한동안 현실적인 문제로 진행이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대표님이 ‘창훈아, 우리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을 주시는 거다. 이후 송중기 배우에게 시나리오가 전달되고,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주면서 제작이 현실화됐다.
- 바닥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표현하기 힘든 디테일이 살아 있다.
= 기분 좋은 칭찬이다. 기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수렁에 잠기는 이야기다.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됐는지 자주 질문받는데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인물의 관계성,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 전체적인 태도나 분위기, 이를테면 골목길의 느낌 같은 것은 내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거기에 범죄 세계가 연루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더해 복합적인 형태로 만들어냈다. 범죄영화, 갱스터, 누아르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취향도 반영됐다.
- 중반까지 동네의 냄새까지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공간을 그려냈다.
= 명안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진짜 실제 하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게 중요했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곳, 평생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감옥 같은 곳, 그러면서도 먹고 자고 쉬는 삶의 터전이 주는 이상한 안락함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연규의 집은 내가 어려웠던 시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모티브로 했다. 치건의 아지트는 그들만의 왕국, 요새를 상상하며 디자인했다. 세계 자체가 고여 있다는 느낌, 갑갑함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 송중기 배우를 제외하고 주연인 홍사빈 배우도 첫 장편이고 동생 하얀 역의 김형서 배우도 첫 영화다.
=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웃음) 경력이 중요하진 않았고 역할에 얼마나 잘 맞는지 그 느낌을 더 중점적으로 봤다. 덕분에 마음을 터놓고 함께 만들어가다 보니 서로에 대한 어떤 확신과 믿음이 생겨났다. 이후에 내가 할 일이라곤 배우들이 가진 상상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 정도였다.
- 첫 장편이 결실을 맺은 소감은.= 책임감. 그리고 희망.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응원과 격려를 받은 기분이다. 연규가 꿈꿨던 ‘화란’처럼 내게도 막연했던 희망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좋은 인연과 기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