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올해 칸의 남자라 부를 만하다. <잠>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 두편의 영화로 칸에 초청된 이선균은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들을 동시에 선보이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 중이다. 2014년 감독주간에 <끝까지 간다>로 처음 칸을 찾았고, 2019년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칸을 휩쓴 바 있지만 올해는 더욱 각별하다. 배우 이선균의 첫 블록버스터영화인 <탈출>은 새로운 도전이자 어떤 역할을 맡아도 중심을 잃지 않는, 믿고 보는 배우의 증명이다.
- 오전에 <잠>에 이어 심야에 <탈출>까지, 하루에 2편의 영화를 연달아 선보였다.
= 너무 기분 좋고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부담이 적지 않았는데 관객을 만나고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한시름 놓았다. <기생충> 때의 경험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올해는 여러 가지로 남다르다.
- 아내와 두 자녀, 온 가족이 함께 칸을 찾았다.
=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좀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고. (웃음) 좋은 추억을 선물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잠>은 아무래도 호러 장르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무서워했는데, <탈출>은 액션이 많은 블록버스터라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 둘 다 영화의 의도에 부합하는 반응이라 만족스럽다.
- <탈출>에서 대통령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 역을 맡았다.
=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속도감 있게 내달리는 장르영화라 복잡미묘한 표현보다 기능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데 그럴수록 간명한 것들이 필요했다. 캐릭터를 표현할 때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키워드를 잡고 싶었는데 이번엔 ‘정무적 판단’이라는 키워드를 잡았다. 수단보단 목적이 앞서 있는 사람이고 그로 인해 딸과도 소원해진 상태다.
- 에코 시리즈로 불리는 개들은 전부 CG로 만들었다.
= 완성된 개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웃음) 현장에선 보이지 않는 대상을 두고 연기를 해야 하니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배우들 각자의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조금씩 달랐을 거다. 그래서 어떻게 리액션할지에 대해 많은 논의를 나눴다.
- 블록버스터영화로선 첫 출연인데 소감이 어떤가.
= 일단 제안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 그동안 해온 영화들과 결이 달라 이런 역이 맞지 않을 거라는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웃음)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아무래도 규모가 큰 장르영화일수록 전형적인 패턴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어떻게 극복하고 현실감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숙제처럼 주어졌다. 재미를 놓치지 않는 가운데 일상의 느낌을 주고 공감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현장에서 불분명하게 다가왔던 것들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장면에서는 매우 사실적으로 구현된 걸 보면서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 딸 역할을 맡은 김수안 배우와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 얼굴을 마주보고 가장 오래 호흡을 맞추는 역할이라. (웃음) 빠른 속도를 위해 인물관계는 다소 신파적으로 보이도록 강조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연기할 때는 오히려 담백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너무 힘주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했다.
- 올해 칸이 배우 이선균의 전환점이 될까.
= 공교롭게도 올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는 작품들이 꽤 있을 거 같다. 배우로서 아무래도 이미지가 소모되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봉 시기는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좋은 대본과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능하다면 반복하지 않고 다양하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