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스 감독은 희미하게 들떠 보였다. 그는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본인의 회고전(5월10~29일)에 들렀다가 칸에 도착했다. 줄리앤 무어, 에드 라흐만, 크리스틴 바천, 케이트 블란쳇 등의 오랜 영화 친구들이 퐁피두를 방문하거나 카탈로그에 기고해 축하했다. 그중에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된 <메이 디셈버>의 제작자이자 배우인 나탈리 포트만도 있었다. “마치 이제 내가 죽나 싶었다!” 회고전 카탈로그를 기자들에게 건네며 헤인스는 뿌듯하게 털어놓았다. 10번째 장편 <메이 디셈버>는, 나이 차가 큰 커플을 가리키는 제목대로, 30대 중반 여성이 13살 소년과 사랑에 빠져 실형을 살고 끝내 가정을 이룬 실화를 영화화하려는 배우(나탈리 포트만)가 20년 후 세 자녀의 부모가 된 둘의 집을 취재차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타블로이드 언론의 표적으로 긴 시간을 살며 ‘절대적 사랑’의 신화로 방어해온 그레이시(줄리앤 무어)와 조이(찰스 멜튼)의 관계는 침입한 제3자의 시선에 의해 조용히 흔들린다. <메이 디셈버>는 고전 멜로드라마에 대한 사랑으로 점철된 <파 프롬 헤븐>과 달리 불협화음과 거리두기의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스코어 위에 세워진 영화”라는 감독의 표현처럼, 미셸 르그랑의 원곡을 편곡한 불길한 메인 테마는 촬영 현장의 BGM이자 편집의 가이드로 쓰였고 영화 곳곳에서 먼 북소리처럼 관객을 흔들어 깨운다.
- 나탈리 포트만이 <메이 디셈버>의 시나리오를 제안했을 때 어떤 점에 이끌렸나.
= 매혹적이고 문제적이었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읽어가면서 계속해서 캐릭터들을 재고해야 하는 시나리오의 방심할 수 없는 속성을 프레임에 옮길 영화적 대응물을 찾아내야 한다고 느꼈다.
- <재키>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이 이 영화에서 배우로 분해 극 중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을 재연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재키>의 경험을 포트만이 가져온 부분이 있나.
= 하지만 달리 보면 나탈리 포트만의 캐릭터인 배우 엘리자베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줄리앤 무어가 연기한 그레이시가 90년대 미국에서 타블로이드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에서 유래한 인물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자유롭게 각색하긴 했지만 미국 관객이라면 메리 케이 르투르노 사건의 면면을 기억할 것이다. 극 중 그레이시는 주부이자 제빵사지만 르투르노는 교사였고 사모아계 13살 소년과 관계를 맺어 정신치료를 동반한 2년형을 선고받았고 보호관찰로 풀려난 동안 첫아이를 낳았다. 상대방 소년을 만나지 않는 것이 가석방 조건이었으나 다시 관계를 맺다 재투옥돼 7년형을 살았고 감옥에서 두 번째 아이를 낳았다. 둘은 결국 결혼해 두딸과 가족을 이뤘고 몇년 전 르투르노가 암으로 죽기 직전 이혼했지만 남편이 끝까지 간호했다. 그들은 서로의 인생에서 연인으로서나 인간으로서나 마지막까지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부적절하게 시작된 관계에 관한 많은 질문을 낳는 이야기다.
- 순이와 우디 앨런과 비슷한 경우 아닌가? 논란은 컸지만 둘은 여전히 함께라는 점에서.
= 하지만 우디 앨런은 체포되거나 감옥에 가진 않았다. 메리 케이 르투르노는, 터너는 복역으로 사회에 진 부채를 갚았지만 어린 남자와 맺어진 여성으로서 어린 여성 또는 남성과 함께인 남자보다 여전히 훨씬 높은 사회적 분노를 샀다. 우리는 남자는 원래 그런 일탈을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일탈의 선택지조차 차별이 있는 것이다.
- <메이 디셈버>는 세 주요 인물 중 누구의 이야기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절묘한 균형을 의도한 것인가.
= 시나리오가 보여준 그 균형이 좋았다. 우리는 처음엔 이야기로 관객을 데려갈 안정된 인물이 엘리자베스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엘리자베스의 동기와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의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그레이시와 비슷한 자질이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영원히 우리만큼 못 알아차리겠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난폭한 음악을 선택했다. 마르셀루 자르부스가 작곡한 이 스코어는 사실 미셸 르그랑이 작곡한, 1971년 조셉 로지의 금지된 로맨스 드라마 <사랑의 메신저>에 쓴 음악을 극적으로 편곡했다. 왜 이 음악이어야 했나.
= <사랑의 메신저> 자체는 <메이 디셈버>와 관계가 없다. <사랑의 메신저>에서 르그랑의 음악은 확 도드라지고 이야기를 앞질러나가며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될지 일련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메이 디셈버>는 이 음악이 일으키는 경계심에 걸맞은 더 많은 대답과 불길한 예감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음악은 영화에 녹아들지 못하도록 한 걸음 물러서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생각했다.
- 줄리앤 무어와 당신의 첫 작품이 <세이프>(1994)니까 곧 협업 30주년이 된다.
= 내 영화 인생 최대 행운은 내 커리어 초반에 줄리앤을 만나 함께 걸어왔다는 점이다. 이후 줄리앤이 영화 매체에서 보여주는 작업-현장에서는 보지 못한 미세한 제스처와 표정을 매일 촬영분에서 발견하도록 하는-에 끊임없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영화 매체에 관한 줄리앤의 눈금은 너무나 초감각적이다. 게다가 줄리앤은 나와 비슷한 종류의 스토리에 이끌린다. 사람들에게 이대로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강한 캐릭터보다 인간의 연약하고 위험한 측면에 관심이 있다. 눈앞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거의 연기하기 불가한 인물을 스크린에서 표현하는 침착함은 우리가 보통 영화에, 주인공에게 기대하는 더 크고 좋고 밝고 아름다운 무엇과 완전히 다르다. 줄리앤은 우리의 가장 약하고 겁에 질리고 자신 없는 면을 드러낸다.
- <메이 디셈버>에서 당신은 멜로드라마의 문법과 일종의 유희를 벌이고 있으며 종종 소프 오페라에 가까워진다. 풍자를 의도했나.
= 사실 이번 영화는 내 유일한 코미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좌중 웃음) 무척 어두운. 진짜의 슬픔이 여기 있는데 배우들은 모두 진지한 연기를 하면서도 갑자기 약간의 과장된 제스처를 던져 이 어두운 이야기를 보며 웃고 즐겨도 된다고 관객에게 허락한다.
- 늘 함께하던 촬영감독이 아닌 크리스토퍼 블로벨트(<퍼스트 카우>)와 작업한 <메이 디셈버>의 화면은 종종 매우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시각적 레퍼런스들이 있었나.
= 많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었다. 조지아주 사바나의 타이비 아일랜드에서 미술감독이 찾아낸 그레이시의 집에는 늪지의 우유색 빛과 직사광선을 필터링하는 미닫이 유리문이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에도 영화 내내 비슷한 필터를 써서 사바나 특유의 희부연 빛과 장소의 느낌을 담았다.
- 본인이 쓰지 않은 시나리오를 다룰 때 자기화하는 어떤 일관된 선이 있나.
= 애초에 나를 이끌리게 한 무엇이 일관성일 터다. <메이 디셈버>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를 하나만 고르라면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편지를 읊조리는 신이다. 이 장면에 닿기까지 거울숏들을 역으로 설계해 나갔다. 잉마르 베리만과 <페르소나>와 <겨울빛>도 많이 생각했다.
- 리브 울만(잉마르 베리만의 배우이자 파트너)도 지금 칸에 있다.
= 오 마이 갓! 꼭 만나야 한다. 베리만이 <메이 디셈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드리고 싶다. (감독이 조르자 영화사 관계자가 방도를 알아보겠노라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