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올해의 남녀 주연상은
김혜리 릴리 글래드스턴은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에서 모나리자 같았다. 조르주 드 라투르의 그림도 생각났고. 대담하고 카리스마틱한 존재였다. 궁합은 좋았지만 예측 가능한 조합이었던 드니로ꠓ디카프리오와 달리 릴리 글래드스턴은 재발견의 대상이었다. 한편 2017년 칸영화제에서 <토니 에드만>이 극찬을 받았었고 영화의 성공에 큰 공을 세운 잔드라 휠러의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었는데 올해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아나토미 오브 어 폴>까지 두편이나 있으니 이번엔 수상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잔드라 휠러의 연기는 일관된 롱숏 속에서 어떤 자세와 움직임만으로 유머에서 공포를 오가는 여러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우리로 치면 김선영 배우처럼 사람 자체가 유니크한 아우라를 품고 있다.
김소미 잔드라 휠러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만성적인 불만족의 뉘앙스를 좋아한다. 자신을 구성하는 한축이 이미 무너졌는데도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사람의 고집스러움과 애잔함이 잘 담긴 얼굴이랄까. <아나토미 오브 어 폴>의 주인공은 우리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고 냉담한 면도 있지만, 잔드라 휠러가 굳은 얼굴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송경원 수상은 어려울 것 같지만 <파이어 브랜드>의 주드 로도 인상적이었다. 조니 뎁이 <잔 뒤 바리> 속 베르사유의 소품 같은 인상이었다면 주드 로는 자기 육체로 영국 왕실을 표현한다.
김혜리 주드 로가 자기 외모에 방해를 받고 있는 성격 배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절대군주 헨리 8세의 거대한 몸집을 하고 나온 주드 로를 알아보지 못해서 한동안 놀랐다. 시대적으로 왕의 몸 자체가 가졌던 권위를 스크린에 옮긴다는 점에서 알베르트 세라의 <루이 14세의 죽음>도 떠올리게 한다. 포식자로서의 주드 로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좀더 주도권을 잡고 있는 쪽은 알리시아 비칸데르다. 퀸으로 불렸던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포를 경험하며 살았는지 첫 장면에서부터 엄청난 위협에 짓눌려 있는 비칸데르의 얼굴이 말해준다.
김소미 <괴물>은 안도 사쿠라가 문을 열지만 사실상 두 소년의 지분이 더 크다. 이 소년 커플의 장점이 외양부터 성격까지 저마다 절묘하게 보완적인데, 구로카와 소야는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를 연상시키는 고레에다의 전통적 페르소나형이고 그보다 낯선 선택으로 느껴지는 히라기 하나타는 <벌집의 정령> 시절의 아나 토렌트를 떠올리게 한다.
6. 피날레를 기다리며
송경원 영화제 중반을 지났는데 각자 남은 후반부는 무엇을 기대하는지.
김혜리 김소미 기자는 이번에 초심자의 운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고? 경애하던 감독들을 지척에서 만나고 사랑도 고백했다고.
김소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왕빙의 <유스(스프링)>이었는데 상영관 가운뎃줄에 도열한 감독과 제작진 바로 앞줄에서 영화를 보고 박수를 보탤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송경원 선배와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 전까지는 이게 꽤 드문일인 줄도 몰랐다. 그냥 ‘칸에 오면 다 이렇구나’ 생각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폴른 리브스> 상영도 비슷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데드팬 코미디의 수호자로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중요한 동지이자 <폴른 리브스>에서 직접적으로 인용되는 <데드 돈 다이>의 감독 짐 자무시를 뤼미에르 로비에서 만난 일이다. 순간 기자의 본분을 잊고 10대 시절의 우상에게 사사로운 애정만 잔뜩 고백하고 돌아왔다.
김혜리 지금 대담하는 시점까지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폴른 리브스>가 평점 1위를 달리고 있는데 확실히 의외다. 심사위원장 루벤 외스틀룬드의 취향은 아닐 것 같다. 과연 켄 로치가 황금종려상 3관왕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칸에 온 게 2016년인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켄 로치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올해도 받는다면 정말 끈질긴 인연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루벤 외스틀룬드가 3관왕은 내 것이라고 공표했으니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웃음)
김소미 개인적으로는 켄 로치와 함께 후반부 상영의 주요 주자가 될 알리체 로르와커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이탈리아영화를 재생시키고 있는 로르와커의 이번 신작은 <행복한 라짜로>보다 더 페데리코 펠리니적인 분위기가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송경원 사실 칸은 지금 올해 워너브러더스 출신의 새 조직위원장 이리스 크노블로흐로 인한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올드 보이들을 불러 모아 화려한 축제를 성대하게 치르고 이후부터는 적극적인 방향 전환을 꾀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한 신호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비경쟁부문의 인기작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컨셉이고 이전 시리즈들의 작가진이 다같이 모여 시리즈 전체의 조립을 위해 애썼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잘 떠나보내주는 법에 대한 의식이 강한 영화였다. 올해 영화제도 이와 비슷하게 거대한 이별의 셀레브레이션인 것 같다.
김혜리 너무 섣불리 떠나보내주진 말자고. 다들 얼마나 더 오래 버텨줄지 끝까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