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5
2023-12-22
글 : 조현나

1위 괴인

압도적인 지지다.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올해의 영화 1위에 오른 것도 이례적인데 2위와의 격차마저 상당하다는 게 놀랍다. <괴인>은 “등장인물, 상황 설정, 스토리 전개 등 어느 것 하나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을 선사하는 독특한 영화다”(홍은애). 제목 그대로 괴이한 매력과 개성으로 평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 낯설고도 유일한 영화는 “예측 불허의 전개, 낯선 스릴”(이현경)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 자체는 특이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차 지붕이 찌그러진 게 신경 쓰이던 한 남자가 범인을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남자의 주변을 둘러싼 작은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이렇게 상투적이고 빤한, 혹은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기어이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해내고 만다는 것이 이 영화의 범상치 않은 힘을 증명한다. “드라마적이지 않은 서사의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리듬”(소은성)이야말로 <괴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 결과 <괴인>은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에서 기인할 법한 고정관념과 선입견 등 예상하는 것들을 지속해서 지양하며 그 자리를 무의미함으로 대체한다”(김성찬). 동시에 “우습지만 씁쓸한 상황을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펼쳐 보인 뒤, 종국에는 청년 실업, 세대 갈등, 자립준비청년 등 한국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코멘트도 놓치지 않는다”(배동미). 결국 “별다른 것 없이 매번 예상을 벗어나 저만치 훌쩍 가 있는 괴인들의 기이한 리듬”(정지혜)으로 관객을 유혹한 끝에 “설계도를 쉬이 짐작할 수 없는 체험”(김소희)을 선사한다. “불안과 안정 사이의 아슬한 경계를 오가는 탐구자이자 놀이꾼의 영화”(박정원)를 보고 난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 이 영화가 경주하는 심리적 반경은 ‘사건’을 초과”(남선우) 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엔딩을 지닌, 2023년 한국영화계의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해야 할 영화”(오진우)라는 찬사는 빈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가장 탁월한 영화는, 이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이우빈)이며 2023년에는 <괴인>이 있다.

2위 비밀의 언덕

“픽션으로 논픽션의 세계를 능가하고 싶은 발칙한 욕망”(정지혜)으로 빛나는 <비밀의 언덕>은 “이야기꾼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데뷔작”(정지혜)이다. “초등학생의 글짓기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창작의 윤리, 발화의 윤리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배동미) 이 영화는 “어른들보다 더 세상을 잘 아는 어린이들을 능동적으로 그려냈다”(이자연). 하지만 익숙한 성장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혹독한 성장의 민낯과 이를 감싸 안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믿음”(이현경)을 되새기는 이 영화는 “소녀의 성장담이라기보다 인간사의 경계를 찾아나선 탐색 지도”(송형국)에 가깝다. 비결은 “창작자의 내면을 가차 없이 후벼 파는”(듀나) 통찰력에 있다. “<비밀의 언덕>은 그 발원지로 가족을, 격전지로 학교를 가리키는 동시에 편집자로서의 ‘나’를 알고 있다. 일련의 기획과 연출, 저술과 발표를 거쳐 명은(문승아)이 도달한 지점은 성인 관객의 자기 인식마저 점검하게 만든다. 이 과정을 폭로하듯 들춰내기보다 인물 내면의 진화로 담아내는 카메라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남선우) 그리하여 어린이의 맑은 눈과 창작자의 불타는 심장을 동시에 표현하는 영화는 “어린이가 보지 못하는 어른의 세상과, 어른이 보지 못하는 어린이의 세상을 모두 에두르고 조망”(정재현)한 뒤 “자전의 시대를 향한 통렬한 반추”(김소희)를 이끌어낸다. 짧은 상영시간 동안 관객와 함께 자라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어여쁜 영화다.

3위 너와 나

<너와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올해 최고의 로맨스였고, 정말 재미있는 청소년 영화이기도 했고, 진지한 주제와 어둠 속에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은,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듀나)다. 하지만 이 모든 언어의 총합으로도 <너와 나>가 한국 사회에 전하는 울림을 모두 담기란 불가능하다. “꿈에서 깨어 쓴 일기에 적힌 슬픈 모험담”(김소미) 같은 이 영화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억누르고 있을 트라우마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대면한다. 슬픔을 세련되게 풀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조현철 감독은 “너무 노골적으로 눈물 흘릴 자리를 마련하기보다 모두가 공통되게 알고 있는 경험과 기억을 은유하면서 시나브로 슬픔에 젖어들게 한다”(이자연). 평자들의 지지와 찬사 역시 대부분 이 영화의 사려 깊은 태도와 따뜻한 시선을 향해 있다. “무상하다가도 조급해지고, 기진하다가도 안달이 나는 10대 고유의 왕성한 감각도 영화 전체에 생생히 살아 있다. 어쩌면 이는 비극의 당사자를 애도하는 영화를 넘어, 기꺼이 애도 주체의 친구가 되는 감각까지 되살려보려는 조현철 감독의 눈물겨운 분투일지도 모른다.”(정재현) 조현철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떠나간 이들은 형태를 달리했을 뿐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 달라진 형태를 카메라의 힘을 빌려 붙잡아낸 이 작품은 “영화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영화적인 방식”(송형국)으로 기억될 것이다.

4위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던져준 올해 유일한 상업영화”(오진우)로서 당당히 4위에 올랐다. 대지진이라는 재앙 이후 홀로 우뚝 선 아파트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압축한 최상의 무대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생존과 욕망과 권력의 회로를 징그럽게 그렸다”(황진미), “휴머니즘, 욕망, 윤리 따위의 뜬구름이 아닌 대한민국의 표면 그대로를 직시하려는 시선”(이우빈) 등 대다수의 평자들 역시 이 점을 최대 매력으로 손꼽았다. 엄태화 감독의 섬세한 손길로 거듭난 디스토피아는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라 단단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관찰한 끝에 지금 한국 사회라는 바닥에 뿌리를 내린다. “밀도 높은 시나리오, 아파트 광고를 연상시키는 위트 있는 촬영, 현실 아파트를 옮겨놓은 듯한 미술, 배우들의 고른 연기까지 모든 면에서 수준급. 실력 있는 감독, 스탭, 배우들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지금 한국영화 역량의 최고치”(배동미)를 선보인다. 그렇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현실 기반의 디스토피아 이미지에, 동시대 한국인의 불안감을 반영한 문제의식에, 거대 예산의 작품을 만들면서 흔들리지 않는 감독의 개성까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연출력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유토피아’를 건설했다”(허남웅). “형식적 민주주의가 한계를 드러낸 2020년대, 현대판 부족주의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송형국)에 동조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공동 5위 거미집, 우리의 하루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과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가 공동 5위에 올랐다. “영화 만들기의 좌충우돌을 토로하는 작품은 많지만, <거미집>은 회한마저 중독의 영역으로 재발견하게 이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남선우) 특히 “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유독 많았던 한해, 철저히 영화적으로 유사 시대를 회고하면서 지금 시대가 불러낸 과거의 망령을 물리치는 위령제와 같았던 작품”(김성찬)이라는 점이 평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무엇보다 영화가 지닌 적나라한 미장아빔의 고전주의적 형식이 아름다워서 좋다.”(이지현) 그리하여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거미집>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영혼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루만진다”(김철홍). 한편 미니멀의 극치를 달리는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도 <우리의 하루>는 각별하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두 인물을 병치하면서, 두 사람의 개별 이야기가 사소한 행위(라면에 고추장을 넣어서 먹는)와 말(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만으로 서로 겹쳐 보이는(마치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 같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홍은애). 그렇게 “오답들 사이에서 헤매는 즐거움”(오진우)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연결을 가장하는 시대에 분리의 디톡스”(김소희)처럼 다가온다. “연하디연한 풀잎들, 눈부신 햇살, 그 앞의 우리(들). 태연히 이 하루를 감당할 작은 존재들.”(정지혜)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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