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2023년을 빛낸 올해의 해외영화, 관습을 벗어난 기성감독들의 시도
2023-12-22
글 : 임수연

1위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더 포스트> 이후 5년 만에 올해의 해외영화 1위에 또 한번 올랐다. 존재 자체로 영화가 된 거장은 처음으로 만든 자전적 드라마를 통해 “더이상의 증명이 필요하지 않은 위치에서조차 또 한번 자기를 갱신”(남선우)하며 “다시 작은 사람이 되어 느껴보는 거대한 영화”(김소희)를 만들어냈다. “유대인 가족 드라마로서의 재미도 갖춘”(남선우) <파벨만스>는 “파경을 다룰 때조차 품위를 잃지 않으며, 때로는 감독 본인(을 반영한 주인공)까지도 포함해 수치를 아는 인물을 감쌀 줄 아는”(남선우) 우아함을 기저에 깔고 있다. “꿈꾸는 눈을 컴컴한 극장에서 지켜보는 황홀경”(이유채)으로 시작해 “누군가의 죽음을 포함해 가족 구성원간 내밀한 사건과 고양된 감정을 채집하려는 욕망을 솔직하게”(김성찬) 담아내며 “겹겹이 벗겨낸 뒤 허물없는 알맹이를 보여준 아릿한 회고록”(박정원)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파벨만스>는 영화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수공업적 감각을 복원”(김예솔비)하며 “자르고 붙이는 일은 무언가를 생성하는 만큼 어떤 세계(들)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김예솔비)는 진실은 얼마나 가혹한가. <파벨만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카메라 뒤에 선 이의 자책과 자성을 쇄신의 동력으로”(남선우) 삼으며 “영화를 하는 삶에 관한 축복이자 회의를 동시에”(이보라) 성찰하며 “영화의 윤리성에 관한 한 다신 없을 세련되고 영리한 접근”(김성찬)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더이상 스필버그의 초기작들이 이전처럼 보일 것 같지 않은”(듀나) 새로운 렌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이렇듯 “창작자의 삶에 스민 영화를 영화적으로 보여준”(홍수정) <파벨만스>는 궁극적으로 “영화예술에 대한 숭고한 내면의 고백”(이지현)으로 가닿는다. “저주와 축복 사이에서 결국 저주로 기운 듯한 예술가의 초상인 감독 스필버그가 내리는 영화의 정의, 서술하는 영화사, 재현하는 영화 만들기”(김성찬)는 역설적으로 “한치의 오차 없이 아름다움으로 넘실거리는 할리우드 고전주의자의 성취”(김소미)가 된다. 35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제 “스필버그가 없어지면 영화도 함께 없어질 것만 같아서 무서운”(이우빈)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2위 어파이어

<어파이어>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역사 3부작’ (<바바라> <피닉스> <트랜짓>)에 이어 펼쳐내는 ‘원소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운디네>가 물을 모티브로 했다면 <어파이어>는 불의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소환한다. 혹자는 “에릭 로메르를 강하게 떠올리게 만드는 테마와 구조가 익숙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 미학을 표현해내는 솜씨는 유럽의 환한 여름을 체험하게 만들고 시각만으로 여름날의 촉각까지 전하는”(배동미) 정수를 보여준다. 서사적으로는 “창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또 다른 영화로 여러 면에서 정곡을 찌르면서”(듀나) 정서적으로는 “타올라 재가 되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마음 한편 그을림 같은 외로움과 부끄러움, 그리움”(박정원)을 담는다. 그렇게 “슬픔의 무능함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이보라) <어파이어>는 “분기하는 순간마다 마음을 무너뜨리는 시간의 영화”(김소희)가 된다. 동시에 “타오름과 꺼짐, 달뜸과 가라앉음, 삶과 죽음 사이를 활보하는 인물의 움직임”(김성찬)을 매력적으로 담아내며 결국 “사랑과 색채와 예스러움으로 기억될”(김성찬) 다층성이 흥미롭다. “영화가 상정할 수밖에 없는 바깥은 여전히 매혹적”(소은성)이기에, “영화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이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에 대한 2023년의 대답이 여기에 있다”(송형국)고 답해도 될 만큼 압도적이다. 가히 “자유로움까지 겸비한 페촐트의 새 지평”(이우빈)을 열었다.

3위 이니셰린의 밴시

불현듯 반목하는 두 남자의 감정선으로부터 폭력의 역사와 계급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 내전 막바지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 “비장하고 우아하며 숭고하기까지 한, 골계적 동족상잔사”(정재현)다.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가 낳은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마틴 맥도나는 “단 두 사람의 관계만으로 개인과 사회와 역사의 비극을 모두 꿰뚫는 솜씨”(허남웅)를 보여주는, “미시의 설정으로 거시의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뽑아낼 줄 아는”(허남웅)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관계를 빌려 실존을 묻고, 실존을 위시해 생의 폭력성을 논하는 이 영화의 유려한 화술“(남선우)로부터 “연결돼 있는 줄 알았지만 오래전에 끊겨버린 현대인의 관계론”(송형국)을 펼쳐낸 그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런 우화를 펼쳐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영화”(이현경)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하지만 <이니셰린의 밴시>의 성취를 단지 각본에 국한하는 것은 <킬러들의 도시> <쓰리 빌보드>의 감독이 보여준 연출력을 그가 희곡 작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축소 평가하는 것이다. “자칫 관념적으로 겉돌 위험이 있는 각본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엿듣고 싶은 논쟁으로 승화시킨 연출력“(남선우)은 마틴 맥도나가 “작가주의 감독을 넘어, 연기 연출을 잘하는 감독을 넘어, ‘영화 연출’을 잘하는 감독의 자리를 점했다”(정재현)는 것을 증명한다.

4위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야케 쇼 감독은 최근 일본영화 뉴 제너레이션의 상징적인 존재로 손꼽힌다. <플레이백>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주온: 저주의 집> 등이 연달아 한국 관객을 만나면서 어느덧 국내 시네필 사이에서도 하마구치 류스케 이후 가장 ‘핫한’ 이름이 됐다. 그의 작품이 <씨네21> 올해의 영화 베스트에 꼽힌 것은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처음이다. 선천적으로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복서 오가사와라 게이코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팬데믹을 품고 나아가는 용감한”(오진우) 기세로 “사라져가는 것들과 그 위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는 것”(소은성)을 스크린 위에 담아낸다. 오롯이 혼자서 감각하던 복싱에서 감응과 소통이 싹트는 순간을 고요한 리듬으로 탁월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괴물>과 더불어 올해의 ‘음향’상을 수여해야 마땅한”(정재현) 기술적 성취 또한 눈부시다. 궁극적으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아날로그의 끝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끝없이 복고(復古)하려 버티는 이들을 어루만지며 쇠락하고 퇴색해가는 아날로그의 종말을 수호하고 배웅하려”(정재현) 든다. “말하지 않고도 영화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가”(김소미) 라는 질문을 치밀하게 파고들며 작은 체육관의 공기와 미소시간에 집중하던 이미지는 그렇게 “언어와 멀어지는 대신 근육으로 파고드는 정동의 영화”(이보라)를 갈망하고 있다.

5위 괴물

“사카모토 유지의 두드러지는 각본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스며드는 연출의 틈 없는 접합”(이유채)을 느낄 수 있는 <괴물>은 “새로운 형식과 따뜻한 관점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도전이 두드러진”(이자연) 작품이다. “‘나만의 진실’ 안에서 숨 쉬고, 숨죽이며 평생을 궁리하는 인간”(남선우)을 비유한 제목이 다소 도식적일 수 있지만,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3개의 장을 만들고 불과 물 이미지를 누빔점으로”(배동미) 삼는 탄탄한 구조가 뒷받침되면서 정교한 형식미로 승화된다. 여기에 “감독, 각본, 음악, 연기 등 영화의 각 요소를 담당하는 주체의 역량이 잘 조화”(김성찬)되면서 “이야기가 단단해질수록 외로움의 감각이 증폭되고, 죽음의 그림자가 명백해질수록 현실의 기교가 더욱 강해지는”(이지현) 조응을 보여준다. 그렇게 “관객의 주의를 힘 있게 이끌어 의도한 곳으로 정확히 데려다놓으며”(김성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영화로 보여주는”(홍수정) 데 성공한 <괴물>은 단연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정수”(이현경)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지평을 여는 영화”(홍수정)다. “일본 사회를 비판하지만 결국 사적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는 체제 순응적 감독”(배동미)이라는 편견을 정면으로 부수는, “도시를 집어삼킬 만한 태풍을 불러와 일본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배동미)고 호소하는 엔딩 역시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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