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특히 베스트10, 50, 100처럼 숫자에 제한을 두고 대상군 중 일부를 뽑아내야 하는 작업은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누락된 인물이 없도록 가능한 한 자료를 모두 살펴봤는지, 선정 기준을 제대로 설정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도 결국 특정 작품이나 사람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두고 논박이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네21>이 창간 29주년을 맞이해 ‘한국영화 NEXT 50’을 선정한 이유는 바로 지금이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이후 다음 세대를 논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단지 오컬트 장르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젊은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져서가 아니다. 전세계 영화산업에서 한국영화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가장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국제영화제에서도 인정받으며 작가로 대우받는다는 점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봉준호와 박찬욱은 재미있는 장르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다. 한편 2000년대 중반부터 CJ ENM을 위시한 투자배급사 중심의 영화제작 시스템이 산업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영화계의 중심이 된 세대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취하는 행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확인한 청년들이었고, 주류 산업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는 길을 각자 택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이제 그들은 장편영화 1~3편을 연출한 감독이거나, 최근 몇년 새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가 됐거나, 충무로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대표 제작자나 프로듀서로 부상하거나, 시장에서 일 잘하기로 선호되는 스탭들로 성장했다. ‘한국영화 NEXT 50’은 우위를 논하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대표성을 띤 50명의 이름을 모은 뒤 지금 한국영화의 지형도를 살피는 작업에 가까웠다.
리스트 선정 및 제외의 이유
다만 아쉽게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한 이름들이 있다. <다섯 번째 흉추>를 만든 박세영 감독은 일부 자문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공포를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직접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다루는 신체 호러물이란 장르의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깔을 창조하는 힘”(조명진 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을 보여주는 박세영 감독은 “독특한 감각과 세계관을 장착한 이단적인 영화 만들기가 한국영화에 역동성을 더하리라 기대”(김영우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된다. “익숙한 공간과 사물을 낯설고 새롭게 보여주는 감각이 탁월해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찾아보게”(이경미 감독) 하는 힘을 갖춘 1996년생 젊은 신예다. 하지만 긴 논의 끝에 <다섯 번째 흉추>가 중편에 가깝기 때문에 장편영화 한편 이상을 연출한 감독군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고, 독창적인 실험을 이어가는 차세대 시네아스트로서 그를 따로 특별언급하기로 결정했다. 퀴어 애니메이션 <그 여름>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은 “동시대성과 시공간을 포착하는 탁월한 감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낼 것으로 기대”(김영우 프로그래머)를 모았다. 현재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 준비 중인 <이 별에 필요한> 이후가 더 궁금한 감독이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과 <미나리>의 정이삭은 ‘한국영화’의 정의를 재논의하게 한 후보였다. 한국의 영화산업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한국영화’라고 칭할 때 할리우드에서 차기작을 찍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일단 제외하자는 쪽으로 정리됐다.
배우는 선정 기준을 확정하는 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분야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로 범주를 한정할 경우 한국영화 다음 세대를 논할 때 가장 필요한 이름들이 제외될 수밖에 없었고, 1980년대 이후로 범위를 확장하면 이미 확고한 톱으로 자리매김한 배우들(강동원, 공효진, 김남길, 김수현, 류준열, 박서준, 박정민, 변요한, 손예진, 송중기, 송혜교, 신민아, 안재홍, 이제훈, 임시완, 전지현, 정유미, 조승우, 조인성, 조정석, 주지훈, 천우희, 한예리, 한지민, 한효주, 현빈 등)이 대거 리스트에 포함되면서 특집의 취지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긴 논의 끝에 1990년대 이후 출생자 혹은 주연작 5편 이하의 배우에 한정해 이름을 추렸다. 차세대 배우로 호명된 20명 중 구교환과 손석구, 정해인, 전여빈은 1980년대생이다. 특히 남자배우는 30대 이후에도 ‘라이징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평균 연령대가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최현욱은 논의 초반부터 선정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이름이었지만 아직 영화를 찍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제작자-프로듀서는 한국영화에서 종종 혼동되는 개념이다. 제작자가 시나리오 개발부터 캐스팅, 투자 유치, 프로덕션 관리까지 영화 제작 전반을 책임지는 위치라면 한국에서 프로듀서는 현장에서 예산과 스케줄을 관리하는 이들을 대체로 일컫는다. 제작자-프로듀서의 경우 꾸준히 차기작을 내놓는다거나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작업 스타일, 실제 현장에서의 평가 등을 중심으로 이름을 모았다.
스탭은 촬영, 미술, 편집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스탭들을 추렸다. 이들은 서드에서 퍼스트에서 감독으로, 팀원에서 팀장에서 감독으로, 어시스턴트에서 감독으로 성장해 각자 파트를 이끄는 핵심 스탭으로 자리매김했다. 음악감독은 이민휘, 프라이머리, 김해원 등 자문단으로부터 여러 인물이 거론됐지만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최근 영화음악이 기존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칫 ‘영화인’의 범주가 너무 넓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한편 ‘작가’는 마지막까지 명단을 확정하지 못했던 분야다. 시나리오작가에 한정했을 때는 충분한 인원이 나오지 않았고, 드라마 및 웹툰을 아우르는 ‘IP 작가’로 범위를 확장하자는 대안이 나왔을 때는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없는 작가를 포함해도 될 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갈렸다. 결국 차세대 시나리오작가를 5명 이상 호명할 수 없는 것 자체가 현 한국영화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결론을 내리며 최종 리스트에서 작가군을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