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기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계에 처음 입문한 ‘1980년대생’이다. 촬영팀 서드에서 세컨드에서 퍼스트에서 촬영감독으로, 미술팀원에서 팀장에서 미술감독으로, 편집 어시스턴트에서 편집감독으로 성장한 뒤 영화의 한 파트를 책임 진 경험이 여러 번 있는 재능 있는 스탭들이 자문단의 추천을 받았다. 논의 과정에서 촬영, 미술, 편집 외에 의상, 분장 등 다른 파트에서도 다양한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1980년대생으로 범주를 한정할 경우 아직 팀장 및 실장급 이력만 있거나 아직 영화가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다른 카테고리와의 통일성을 위해 고심 끝에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음악감독의 경우 최근 영화음악이 기존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 형태로 진행되는 케이스가 늘어났다는 특수성을 고려했다. 기성 뮤지션들의 이름이 명단에 대거 포함될 경우 자칫 ‘영화인’의 정의가 불분명해져 이번 특집의 취지가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유진 | 미술 |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데뷔해 최근 <킬링 로맨스>와 <잠>을 작업한 신유진 미술감독은 공간에 감정의 공기를 주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비주얼 아티스트다. <킬링 로맨스>에서 조나단(이선균)의 큰 저택이 답답했던 건 자신에게 집착하는 조나단을 숨 막혀 하고 그곳을 감옥처럼 느끼는 여래(이하늬)의 마음을 디자인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미지의 콸라섬을 만들 때는 독창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설정을 집어넣었다. 의외로 생활감 구현은 그의 장기이기도 하다.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대 이름은 장미>를 맡았을 때는 자신의 옛 살림 도구들을 세트에 채워넣어 시대성을 제대로 살렸다.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다가 미술 스탭 모집 공고에 혹해 영화계로 뛰어든 신유진 미술감독은 한 작품만 끝내자는 마음으로 버티다가 어느덧 필모그래피에 10편 이상이 쌓였다. 2019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는 언젠가 “흑백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꿈에 응원을 보낸다. /이유채
강국현 | 촬영 |
2015년 <무뢰한>이 공개됐을 때 관객들은 김혜경으로 분한 전도연의 섬세한 연기를 극찬했다. 그리고 김혜경의 컴컴한 심연을 그대로 외현한 <무뢰한>의 프레이밍에 박수를 보냈다. 2019년 <벌새>가 공개됐을 때 관객들은 1994년을 사는 중학생 소녀의 시선을 더없이 정확히 담아낸 강국현 촬영감독의 이름을 또 한번 영화 밖으로 소환해냈다. 이경미 감독의 단편 <오디션>으로 처음 영화 촬영의 세계에 들어온 강국현 촬영감독은 암청색 화면만큼이나 서늘하고 음울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줄탁동시> <미쓰백> 등의 영화 촬영을 맡았다. 하지만 그는 <벌새>와 <내가 죽던 날> <소울메이트>처럼 여성주인공들이 느끼는 극도로 섬세한 감정의 결을 서정적으로 시각화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카메라맨이다. 강국현 촬영감독의 활약은 스크린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21년 TV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촬영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전방위 플레이어인 강국현 촬영감독의 날갯짓은 계속될 예정이다. /정재현
정이진 | 미술 |
정이진 미술감독은 조화성 미술감독이 이끄는 화성공작소에 합류하며 영화미술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유독 한 시절을 그림으로 살려내는 데 주력해야 하는 시대물에 많이 참여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소품팀장이었고, <역린> <밀정> <마약왕> 등의 미술팀에서 활약했다. <낫아웃> <거래> 등 이정곤 감독의 작품에서 분명한 자기 색을 보여준 정이진 미술감독은 지난해 <거미집>의 미술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조홧속인 유신 검열시대에 영화 ‘거미집’을 완성해야 하는 소동극 <거미집>에서 1970년대 영화에서 볼 법한 세트와 소품에 시대의 공기는 물론 영화의 직접적 상징인 ‘거미집’의 컨셉까지 엮어냈다. 평단은 <거미집>에서 정이진 미술감독이 보인 호연에 즉각 응답했다. 제44회 청룡영화상과 제10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미술상을, 제24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기술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름을 앞으로도 주시해야 한다. /정재현
조형래 | 촬영 |
<길복순> <콘크리트 유토피아> <킹메이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4등> 등 아슬아슬하고 스릴 넘치는 장면들은 조형래 촬영감독의 본능적인 감각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독립영화 <4등>을 보고 유려한 촬영에 반한 변성현 감독이 조형래 촬영감독을 수소문해 찾은 건 유명한 일화다. 극의 전반적인 흐름과 장면의 주요 포인트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조형래 촬영감독은 신선하고 도전적인 방식을 고집했다. 특히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소재나 미술적 감각이 기성 홍콩·일본 누아르를 계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창조할 수 있도록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콘티 작업을 임했다. 그러니 조형래 촬영감독은 행운이나 임기응변, 즉흥적인 기술에 기대기보다 철저한 계획과 계산 아래 움직이는 외골수다. 프레임 안에 인물간의 이해관계와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 한꺼번에 담아내는 것 또한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결과다.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과 시도 안에서 프레임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감이 커진다. /이자연
한미연 | 편집 |
한미연 편집감독은 흔치 않은 80년대생 여성 편집감독으로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2015년 영화 <대배우>로 편집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쌓은 그는 <댓글부대>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최근 개봉 영화의 편집 크레딧에서 이름을 쉬이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편집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에게 제41회 청룡영화상 편집상을 안기면서 중요한 작품이 됐다. 돈 가방을 탐내는 여러 인물의 개별 서사가 깔끔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건 그의 공이 크다. 한미연 편집감독은 원래 영화 연출 전공이었으나 곧 연출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에 입학해 편집을 전공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과도 연이 깊다. <설국열차>에서 현장편집 어시스턴트를 맡았고 <옥자>와 <기생충>의 현장 편집에도 참여했다. 2020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편집 철학을 전한 바 있다. “좋은 편집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야 한다.” /이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