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니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영화 <넘버 3> 중)
2024-12-13
글 : 송경원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주간지는 괴롭다. 대체로 실시간, 일간보단 사유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지만 때때로 극한 직업이 된다. 12월12일 목요일 아침 어느덧 네 번째 버전의 ‘편집장의 말’을 쓰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이 오늘 마감 끝날 때까지 온전히 유지될 거란 자신이 없다.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맞춰 새로 글을 쓰는 중이다. 목요일 마감날 다 정리된 뒤 쓰면 되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냐고 묻는다면,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 도저히 뭐라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2월7일 토요일, 대통령 탄핵 표결이 무산된 이후 분노와 슬픔에 잠겨 첫 글을 썼다. 돌이켜보니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을 간과한 어리석음의 결과다.

계엄, 내란, 탄핵 정국의 격변 속에 한주를 버티며 주간지 호흡이나마 시국을 따라가고자 예정된 기획기사를 변경했고 긴급하게 현장취재도 시도했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것 같았던 11일 수요일, 윤석열 퇴진을 촉구하는 영화인들의 긴급 성명과 거리의 목소리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글을 고쳤다. 이젠 됐다. 충분하다. 솔직히 뭔 일이 터져도 더이상은 못 고치겠다는 심경으로 출근하던 목요일 아침, 윤석열이 네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끝났다고 안도했던 내 잘못, 상상력이 부족했던 내 탓이다. 현실은 언제나 영화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작자의 정신세계를 내가 아는 현실의 언어로는 더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당장 더러운 말을 들은 귀부터 씻어내고 싶은 기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의사도 아니고 인지장애, 망상장애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순 없다. 하여, 영화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지금부터 윤석열과 그 일당에 전하고 싶은 말을 영화 속 대사를 빌려 전한다. 일단, “니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넘버.3>). 그렇게 사니까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도 처음엔 “사람이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미쓰 홍당무>)라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듣고 깨달았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내부자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더불어 이 상황에서도 침묵하는 방관자와 동조하는 부역자들, “누구냐, 넌?”(<올드보이>) “밥은 먹고 다니냐?”(<살인의 추억>) 설마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짝패>)라는 얄팍한 생각은 아니길 바란다. 나라 망하게 생겼는데 “뭣이 중한디? 뭣이 중허냐고?”(<곡성>)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생활의 발견>)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메기>)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변호인>)

이 대사들은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 명대사 100선으로 꼽은 귀한 말들이다. 괜히 버틴다고 아까운 시간 버리지 마시고, 연말연시 이 영화들을 차례로 감상하며 시네마테라피부터 받아보시길 권한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