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자유로운 해방, <검은 수녀들> 전여빈
2025-01-21
글 : 이유채

의학만이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바오로 의사 신부(이진욱)의 제자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그가 병실을 떠나면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무슨 AI 같아.” 그만큼 원칙대로 행동하며 경직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앞에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나타난다. 악령 들린 소년 환자 희준(문우진)을 구하겠다는 유니아를 얼떨결에 도왔으나 그는 아직 금기를 깰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죽어가는 소년에게 동질감과 유니아의 간절한 의지를 느낀 미카엘라는 그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현재 배우 전여빈은 극장가의 타오르는 여인이다. <하얼빈>의 독립투사 공부인 역으로 가슴을 뜨겁게 했던 그가 이번엔 <검은 수녀들>의 미카엘라 수녀로 분해 다시 한번 속에 있는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한다.

-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사람들의 합심으로 뭉클한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대본에 대한 감상을 나눠준다면.

재밌게 본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다시 잇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기대감을 안고 읽었고 만족스러웠다. 같은 목표를 가진 인물들이 한 다리씩 겨우 건너 마침내 가려던 성에 다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 연대의 과정에 동참하고 싶었다. 미카엘라 역할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대사가 많거나 도드라지는 액션을 하기보다는 주변 상황과 인물에 작게 반응하는 캐릭터인데, 그 미세함을 살리는 연기를 해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미카엘라는 명암을 오가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려고 애써온 과거가 있기에 기본적으로 어둡지만 유니아의 옆에선 귀여운 동생의 면모를 보인다.

미카엘라가 보여주는 다른 모습들이 나 역시 좋았다. 원래 미카엘라는 자기 안의 해결되지 않은 큰 의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늘 괜찮은 척하는데 유니아를 통해 그 막을 찢고 나온다. 서툴고 어린 모습을 내비쳐도 되는 사람을 만나 성장하려는 캐릭터에게 어떻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 미카엘라의 내면세계를 헤아리는 작업이 필수였을 것 같은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카엘라의 고민이 특별한 무언가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콤플렉스라고 정리하니 의외로 간단하게 풀렸다. 우리 각자 ‘이 나이쯤엔 이 정도 돈을 벌어야 해’ 하는 강박이 있지 않나. 그것과 같은 불안을 미카엘라가 느낀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그가 거기서 헤어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 “어릴 적부터 존경해온” 송혜교 배우와의 밀착한 작업은 어떠했나.

혜교 언니의 눈이 굉장히 서정적이라 보고 있기만 해도 울컥했다. 그런 배우를 상대로 만나 다시금 배운 게 있다. 인간 전여빈은 언니 송혜교의 눈을 보고 흔들려도 되지만 유니아에게 반발심을 가진 미카엘라는 그래선 안됐다. 유니아와의 신 안에 개인적인 정서가 개입된 건 아닌지 나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 신에서 내가 마땅히 해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매 순간 대본으로 돌아갔다.

- 서부 느낌의 모자와 옷을 착용한 <하얼빈>과 베일을 쓴 수녀복 차림을 한 <검은 수녀들>이 연달아 개봉하면서 의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두 의상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나.

의상을 대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부인(<하얼빈>)의 의상은 당시 서양 복식을 그대로 구현한 옷이었는데 입으면 척추가 쪽 펴진다. 꼿꼿한 자세에서 그의 기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또 공부인의 어두운 차림은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소년이 온다>의 한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옷이었다. 남겨진 여인의 심정을 표현하는 데 그 의상의 공이 컸다. 수녀복도 이번에 처음 입어봤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정말 편안했다. 몸에 조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파자마처럼 가볍게 툭 떨어지더라. 몸의 해방감을 느끼면서 사실 미카엘라는 이렇게 자유로운 상태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그 점이 연기에도 투영됐다.

- <거미집> <하얼빈> <검은 수녀들>을 전여빈의 조력자 3부작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든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려는 영화인(<거미집>), 대한 독립을 위해 모인 동지(<하얼빈>), 한 아이를 살리려는 사람(<검은 수녀들>) 중 한명을 연기했다. 맡은 캐릭터처럼 공통된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일에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편인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는 시기를 지나고 있긴 하나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배우가 된 뒤 분명히 알게 된 지점들이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이 작업은 절대 혼자서 이뤄낼 수 없고 함께 온 마음을 다해 달려나가야 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배우에게는 반드시 혼자 짊어져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고 그걸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부분으로서 제대로 쓰이고 싶다는 갈망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그게 내 원동력인 것 같다. 현장에서 그런 욕망이 종종 채워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정말 행복하다. 그런 꿈 같은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열심히 하게 된다.

- 정통 멜로드라마 <우리 영화>를 한창 촬영 중이다. 희귀난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성배우 이다음 역이라 에너지 소비가 클 것 같은데, 요즘 전여빈은 어떤가.

죽음이 삶과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면서 죽음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영화>를 찍으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체감했다. 그래서 다음이에게 미안해질 때가 너무 많다. (눈물을 글썽이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과연 내가 다음이의 고통과 마음에 진정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 이 불안을 잠재울 방법을 찾는 게 이번 작품의 과제다. 하나 더 있다면 <검은 수녀들> 때도 그랬듯, 다음이를 연기하면서 느끼는 슬픔이 배우로서 내가 표현해야 할 인물의 감정이 맞는지 혹시 인간 전여빈의 것은 아닌지 분별하는 것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