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브루탈리스트>의 이모저모, 브래디 코베부터 영화를 둘러싼 잡음까지
2025-02-13
글 : 정재현
글 : 조현나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루탈리스트>는 총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감독, 주조연 배우, 각본, 촬영, 미술,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영화산업 업계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일 터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떠받드는 알짜배기 자재를 모아 소개한다.

감독 브래디 코베에 주목하라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거머쥔 자. 그리고 이르지만 모든 영미권 매체가 일제히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감독상 예측 1순위로 지명한 자. 브래디 코베는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상처에 함몰된 소년 브라이언을, <멜랑콜리아>에서 커스틴 던스트에게 집착하던 후배 팀을 연기한, 어쩌면 관객들에게 배우로 더 친숙할 이름이다. 2015년 로버트 패틴슨, 베레니스 베조 주연의 <더 차일드후드 오브 어 리더>를 만들며 감독으로 데뷔한 코베는 2018년 내털리 포트먼 주연의 <복스 룩스>를 연출하며 평론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코베의 영화 세계는 미국이 뒤집어쓰고 또 뒤집어씌운 비극을 해부한다. 가령 <더 차일드후드 오브 어 리더>는 소년의 시선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정부가 전면에 나서 체결한 승전국들의 평화협정이 어떻게 전체주의를 촉발했는지 탐구했다. <복스 룩스> 역시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이 모티브임이 자명한 집단 테러의 피해자, 팝 스타 셀레스트(내털리 포트먼)가 트라우마를 안은 채 미국 사회에서 생존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브루탈리스트>는 미국이라는 초국가적 개념이 현대 미국을 일군 전후 이주자들에게 입힌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경향에 관해 코베는 <르 시네마 클럽>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야말로 역사를 경험하기에 적합한 매체”라며 “영화를 통해 추악한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주지하고자 한다”는 연출론을 밝혔다.

브래디 코베는 7년에 걸쳐 <브루탈리스트>를 제작했다. 당초 조엘 에저턴, 마리옹 코티야르, 마크 라일런스와 함께 <브루탈리스트>를 만들려던 코베는 약속된 투자금 유치가 무산되자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헝가리로 촬영지를 옮긴 후 새로 배우들을 모아 작품을 완성했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했어도 “독립영화에 주로 출연한 탓에 수입이 변변치 않았”던 코베는 <브루탈리스트>를 통해 비로소 “정산이 기대될 만큼”의 원동력을 얻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앞으로 내가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브루탈리스트> 이후 차기작을 만들 시간을 벌었다. 적어도 앞으로 몇년간은 걱정 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게 돼 기쁘다.” /정재현

배역과 하나가 된 에이드리언 브로디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피아니스트>로 29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오스카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 기록을 보유 중이다. 나치에 의해 삶이 망가진 유대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을 연기한 브로디가 21년 만에 유대인 수용소에서 탈출한 헝가리 예술가 라즐로 토스를 연기해 또 한번 오스카 트로피를 조준한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공교롭다. 브로디 역시 슈필만을 연기했던 경험이 라즐로를 연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했으며, 두 작품이 모두 “세상에 존재하는 불관용과 압제가 어떻게 인류로부터 아름다움을 앗아갔는지를 살피는” 이야기이자 “고난의 역사를 ‘견딘’ 한 남자의 이야기”라 요약했다. 브로디와 라즐로 사이엔 헝가리라는 공통점도 있다. 브로디의 어머니인 사진작가 실비아 플라키가 헝가리 출생이며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조국을 탈출해 미국에 망명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이주의 역사를 들으며 난민의 역사를 체화한 브로디는 역할을 연구하며 또 한명의 가족을 떠올렸다. “라즐로랑 비슷한 나이인 내 할아버지 또한 라즐로처럼 평생 미국에서 헝가리 영어 억양으로 고통받았다. 할아버지도 배우를 꿈꾸셨다. 조부모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 /정재현

고전성을 더하는 영화의 촬영

브래디 코베 감독과 모든 작품을 함께한 촬영감독 롤 크롤리.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그 당시의 영화처럼 촬영됐다. <현기증>(1958) 등에서 주로 사용된 1.66:1의 화면비를 가진 비스타비전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는 통상의 35mm 필름의 두배 크기와 해상도를 자랑하는 터라 전용 필름과 카메라를 요구한다. 다행히 <브루탈리스트>팀은 아직 필름 촬영 문화가 남아 있는 헝가리에서 영화를 완성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기술적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한편 비스타비전은 1950년대 당시 고해상도로 촬영돼도 영사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일반 35mm 필름에 축소 인화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서며 시네마스코프와 70mm 필름 상영이 와이드스크린의 주류를 이루며 종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50년대 방식으로 촬영된 2020년대의 영화인 만큼 35mm 비스타비전 전용 필름으로 촬영한 이후 70mm 필름에 인화해 상영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영화 밖 비화 하나. 비스타비전 카메라는 현재 몇개 남아 있지 않는 탓에 <브루탈리스트> 촬영이 끝나자마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자신의 차기작 작업을 위해 이 카메라를 빌려갔다고 한다. /정재현

AI 기술이 가미된 연기에 상을 수여할 수 있을까?

<브루탈리스트>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이는 업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는데, 지난 1월11일 <브루탈리스트>의 편집을 담당한 다비드 얀초가 <레드 샤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라즐로, 엘리자베스를 연기한 에이드리언 브로디, 펄리시티 존스의 일부 헝가리어 대사에서 악센트를 살리기 위해 리스피처의 AI 음성 변환 기술을 사용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AI 기술 덕에 작업 속도를 높이고 디테일을 더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업계에서 격한 반향이 일었고 브래디 코베 감독은 AI 기술은 배우들이 헝가리어로 나눈 대화에서 특정 모음과 단어를 정확히 다듬는 데에만 사용했으며 “두 배우의 연기는 오롯이 그들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3년 할리우드 배우·작가 조합 파업의 이유에 AI 기술의 인간 대체에 관한 우려가 반영되었음을 고려하면 <브루탈리스트>의 AI 기술 활용이 현재와 같은 반응을 일으킨 것은 놀랍지 않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배우상 후보로 거론된 에이드리언 브로디, 펄리시티 존스가 오는 3월,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 각별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현나

건축 그 자체인 영화 속 음악

대니얼 블룸버그

<브루탈리스트>의 음악감독은 뮤지션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 대니얼 블룸버그다. 그는 <브루탈리스트>의 공동 각본가인 모나 파스트볼드의 연출작 <다가올 세상>(2020)을 통해 처음 영화음악을 맡았고, 이후 브래디 코베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와 함께 숙식하며 작업에 돌입했다. 블룸버그는 에반 파커, 악셀 되르너 등 유럽 재즈 신에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 중인 전설들의 공연을 직접 찾아다니며 재즈를 기반으로 한 스코어의 영감을 얻었다. 여러 자재가 모여 하나의 건축물을 이루는 것처럼 여러 요소를 집적해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블룸버그와 코베가 세운 공동 목표였다. 이를테면 영화를 여는 음악인 <Overture: Ship>엔 혼란스러운 미국행 증기선의 풍경처럼 금관악기인 튜바와 여러 목관악기가 서로를 넘나들며 관객의 청각신경을 긁는다. 라즐로가 잠시 배의 갑판에 올라서는 순간에도 환희에 찬 금관악기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지만 그 기저엔 비틀대며 하강하는 불안한 멜로디가 깔린다. 라즐로가 의자를 만들 때 흐르는 <Chair> 또한 톱을 켜는 듯한 신시사이저 연주와 못을 박는 듯한 타악기 연주가 얽히며 공정 자체가 음악으로 형상화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블룸버그가 영화를 위해 처음 작곡한 곡은 <Construction>이다. 그는 프리페어드 피아노(현에 이물질을 부착해 음질과 가락을 바꾼 그랜드피아노.-편집자)를 활용해 이 곡을 만들었다. 건축 현장에서 들릴 법한 곡의 타악기 소리는 실제 악기가 아닌 그랜드피아노의 현 위에 나사못, 클립 등을 올려 만든 결과다. 이 곡은 대리석 채석장에서 라즐로가 해리슨에게 유린당한 후에 이어지는 라즐로의 고뇌를 강하게 추동한다. /정재현

라즐로의 천재성과 트라우마가 반영된 건축물

<브루탈리스트>라는 영화의 제목은 1950년대 영국에서 등장해 1970년대까지 유행한 건축양식 ‘브루탈리즘’에서 가져온 것이다. 브루탈리즘 건축은 장식이 배제된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이 대표적인 특징인데, 브래디 코베 감독과 각본을 공동 집필한 모나 파스트볼드는 해당 건축에 감명받아 작품에 깊숙이 끌어들였다. 브레디 코베 감독은 건축학자 장 루이 코엔에게 영화에 관한 자문을 구했으며 헝가리 출신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가 미국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라즐로 토스란 인물을 창조해냈다.

라즐로의 실력은 그가 미국으로 이주한 뒤 사촌 아틸라의 사업을 도우며 가구를 디자인하고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서재를 설계했을 때 일찌감치 드러난다. 이는 프로덕션디자이너 주디 베커의 솜씨였으며 그는 이후에도 20세기 필라델피아의 시대상을 반영한 세트들과 “라즐로의 삶과 투쟁을 상징하는 센터”를 구현해냈다.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기리는 동시에 공공건물로서 활용 가능한 센터를 지어줄 것을 의뢰한다. 라즐로는 독일의 예술학교인 바우하우스를 졸업했다는 설정이었기에 센터는 바우하우스와 브루탈리즘 형식이 나란히 반영된 건축물이어야 했다. 주디 베커는 센터를 디자인하기 위해 마르셀 브로이어의 휘트니 미술관, 해리 위스의 워싱턴 DC 지하철 시스템 등 브루탈리즘,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작품을 연구했으나 본연의 새로움을 위해 지나친 참고는 지양했다고 전한다. 또한 “라즐로의 천재성과 트라우마가 센터에 반영되길 바랐기 때문에”(주디 베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구조도 참고했다. 센터에는 중부, 동부 유럽 건축에서 흔히 발견되는 십자가 모티프가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천장의 구조물을 활용해 정오가 되면 십자가 형태의 빛이 건물 안으로 비추게 되는 형식이다. 이는 주디 베커가 어린 시절, 동네의 시너고그(유대교에서 집회와 예배의 장소로 쓰는 회당) 꼭대기에 다윗의 별이 달려 있던 걸 기억해 반영한 것이다. 예산 문제로 센터 전체를 짓는 건 불가능했지만, 예배당 계단을 비롯한 일부 실내 구역을 제작한 뒤 카메라 프레이밍을 통해 건물의 규모과 전체 형태를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조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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