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확장과 세공의 기술,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태프 인터뷰 - 촬영, 미술, 음악, 편집의 세부
2025-02-13
글 : 최현수 (객원기자)
글 : 김현승 (객원기자)

성공한 시리즈의 속편 프로덕션은 숙련된 스태프들에게도 까다롭고 난도 높은 과제다. 다행히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는 규모와 디테일을 한번에 잡아내면서, 연출자와 오랜 호흡까지 자랑하는 베테랑들이 포진해 있다. 김지용 촬영감독, 채경선 미술감독, 남나영 편집감독, 정재일 음악감독이 전하는 파트별 작업의 핵심 과제를 소개한다.

김지용의 촬영

<헤어질 결심>의 짙은 안개와 <남한산성>의 시린 한기. 김지용 촬영감독은 장르를 불문하고 이미지의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관찰자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황동혁 감독과 <오징어 게임> 시즌2로 재회했다.

어둡고 낯선 기존의 광경들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새로 합류한 김지용 촬영감독은 시나리오를 읽고 어둠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라면 같은 사람이 동일한 공간에 돌아가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어둠이란 칠흑 같은 화면이 아니라 화면에 담긴 그림자의 양”을 의미한다. 가령 인공광이 많은 숙소 장면에선 “인물을 침대 사이에 배치해 그늘을 만들었고” 소등된 취침 장면에선 “천장에 달린 돼지 저금통의 조명을 활용해 단조롭지 않은 대비”를 형성했다. 지난 시즌과 유사한 장면들조차 김지용 촬영감독은 “반복과 변주”를 활용해 낯선 구도를 포착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속 영희의 클로즈업에선 “전보다 더 기괴하고 잔인한 얼굴을 강조”했고 “기훈(이정재)이 숙소에서 깨어나는 장면도 같은 장면처럼 보여도 전혀 다른 느낌”을 부여하고자 했다.

체험과 관조의 카메라

<오징어 게임> 시즌1의 흥행으로 시리즈에 등장한 게임을 체험하는 콘텐츠들도 등장했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이에 부응하듯 “시청자가 참가자의 일부가 되어 게임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시즌2의 촬영 기조로 택했다. “카메라가 최대한 인물에 가깝게 붙기 위해 기본적으로 카메라 한대가 움직이는 동선을 설계”했다고. 덕분에 “게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상승을 택한 동선이 매력적이었다”고 밝힌 7화의 무장 혁명 장면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역동성을 구현”할 수 있었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참가자의 시점 외에도 “모니터로 게임장을 감시하는 컨트롤룸의 시선”과 ‘둥글게 둥글게’ 게임으로 대표되는 “관조적인 부감의 시선”까지 총 세개의 시선이 시리즈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세 가지 다른 관점에서 오는 시각적인 차이들이 드라마를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붉고 푸른빛의 대비

“무수한 대비로 이뤄진 이야기.” 김지용 촬영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그는 투표 제도로 대변되는 색채적 대비에 집중했다. “외부 세계에 있을 때조차 오징어 게임의 영향권 안에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병정을 발견하고 들어간 클럽이나 기훈의 모텔도 붉은 계열과 차가운 계열로 조명의 대비를 주었다.” 특히 시청자들의 극찬이 이어진 1화 딱지남(공유)과 성기훈의 러시안룰렛 신은 김지용 촬영감독이 가장 심혈을 들여 찍은 장면이다. “모텔 방에 활용된 붉은 조명이 딱지남의 얼굴뿐만 아니라 눈동자에 반사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마치 눈망울에 피눈물이 고인 듯한 찰나의 장면을 포착하려 했다. 모든 조명을 여유 있게 설계해서 한번에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최현수 객원기자

채경선의 미술

채경선 미술감독 초현실적인 공간과 강렬한 색감. <오징어 게임>의 독창적인 미장센을 직조한 채경선 미술감독은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과 제26회 미국 미술감독조합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시즌2에서도 여전히 파격적인 상상력을 시각화했다.

인물의 심리가 담긴 핑크 모텔

<오징어 게임> 시즌2는 LA행을 포기한 채 오징어 게임 관계자를 쫓기 시작한 성기훈(이정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그의 은신처인 핑크 모텔에서 “게임장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분홍빛 악몽에 갇혀 있는” 기훈의 심리를 느꼈다고 한다. 따라서 분홍빛 소파부터 핑크색 수건까지 “모텔에 있을 법한 소품을 활용해 적재적소에 분홍색을 배치해” 그의 불안감을 묘사했다. “화장실 벽면에 붙은 야자수 시트지”를 통해 “해외에 있는 딸을 향한 미련”을 드러냈고, “모텔 창문에 붙인 구름 모양의 선팅지”는 “황인호(이병헌)의 고시원처럼 기훈의 모텔이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임을 암시했다. 핑크 모텔은 “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기훈을 초대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채경선 미술감독의 세심한 의도가 곳곳에 스며든 결과물이다.

축제의 탈을 쓴 새로운 게임장들

독창성이 돋보이는 게임장 디자인은 <오징어 게임>의 주된 흥행 요인 중 하나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두 번째 게임인 ‘5인 6각 근대 5종’이 “비석치기처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주 하던 놀이”들이었다며 “이웃사촌이 모두 모인 유년의 추억”이 깃든 운동회를 컨셉으로 정했다. “천장에는 만국기를 달고 병정들이 시체를 옮기는 양쪽 문은 청백전을 떠올리게 하는 캐노피를 설치했다.” ‘둥글게 둥글게’는 “화려하게 펼쳐졌다가도 사그라드는 인생과 닮은 불꽃놀이”의 공간인 놀이공원을 떠올렸다고.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관람객이 말을 타는 구조라면 오징어 게임에선 참가자들이 오히려 말처럼 보이길 원했다.” 유혈이 낭자한 게임장은 “크레파스의 10가지 주요 색상을 50개로 확장시켜 만든 방”과 “천개의 전구를 심은 조명”을 배치해 한낮의 축제 같은 역설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익숙한 공간에 변화와 확장을 더하다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중요한 변화는 투표 제도다. “큰 파장을 일으킬 참가자들의 선택”을 명료하게 시각화하는 것이 과제였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찬성과 반대 색상을 두고 고민한 끝에 “직관적이지만 명확한 대비의 빨강과 파랑”을 택했다. 바닥에 빛나는 OX 조명은 “게임이 끝난 밤에도 여전히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느낌을 주기 위한 선택이다. 이는 “한밤중에도 발광하는 횡단보도 안전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세모 병정 노을(박규영)의 등장과 7화의 무장 혁명은 관리자의 공간을 확장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더 높은 계급의 숙소는 “등급에 따라 변하는 호텔 객실에서 착안해 공간이 지닌 권력”을 녹여냈다. “컨트롤룸으로 향하는 길을 구현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끝없는 보라색 계단의 연속이 마치 기훈에게 고지처럼 보이도록 표현했다.” /최현수 객원기자

남나영의 편집

남나영 편집감독은 류승완, 김지운, 이병헌 등 한마디로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꾸준한 러브콜을 받는 베테랑 감독이다. 황동혁 감독과는 <오징어 게임> 시리즈 이전부터 <수상한 그녀>와 <남한산성>에서 협업했다.

변칙적인 리듬감

크리스마스이브부터 다음해 크리스마스이브까지, 7부작 편집에 1년이 걸렸다. 다음 시즌 작업과 병행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길고 긴 대장정이다. 남나영 감독은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이 달라지는 시리즈물 특유의 변칙적인 리듬”을 살리기 위한 고민이 많았다고 말한다. 극 전체의 주인공은 기훈(이정재)이지만, 초반 에피소드는 딱지남 역의 공유의 표정연기가 돋보이는 장면들 위주로 채워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살아남은 캐릭터들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췄고, 중간중간 바다 위에서 섬을 찾는 황준호 대위(위하준)를 교차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작보다 분량이 늘어난 ‘OX 투표’ 장면도 공을 많이 들인 부분 중 하나다. 메인 경기와 달리 인물들의 행동이 제한적이기에, 다양한 앵글과 조명 선택에서 황동혁 감독과 가장 많은 소통을 나눴다.

‘시리즈다운’ 편집이란

영상 예술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종합예술이다. 남나영 편집감독은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두고,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을 감각적인 편집의 비결로 꼽았다. 영화와 시리즈물의 차이점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다. 2시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와 달리 시리즈물은 훨씬 더 긴 템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게다가 OTT 콘텐츠는 시청자가 언제든 영상을 끌 수 있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생소하거나 루즈할 수 있는 영화적인 편집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나영 감독은 이번 작업에서 폭넓은 시청자층을 고려하여 “조금 더 친절하게, 심지어 설명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접근했다고 전한다.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오징어 게임>이라면 더욱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치밀함의 추구

피비린내로 가득한 <배틀로얄>의 세계관이 마니아층의 말초신경을 뜨겁게 달군 지도 20년이 지났다. ‘데스 게임’이 마이너 장르에만 국한되던 과거와 달리 이제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후속작은 전 시즌과 차별화된 매력적 요소를 지녀야 한다. 남나영 감독은 이번 시즌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인물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연출”을 꼽는다. 편집 역시 그에 따라 더욱 집요한 리듬으로 완성됐다.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각 캐릭터의 서사를 확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정서가 충돌하는 과정에 주목한다면 고조된 감정이 폭발하는 다음 시즌을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김현승 객원기자

정재일의 음악

<기생충>의 바로크풍 O.S.T에서부터 동심을 자극하는 <오징어 게임> 테마곡에 이르기까지, 정재일의 음악은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늘 새로운 모습으로 영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크고 작은 줄기들 사이의 균형

“연출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음악으로 옮기는 일종의 통역자.” 다양한 질감의 소리를 세심하게 다룰 줄 아는 정재일 음악감독의 능력은 <오징어 게임> 시즌 2에서도 빛났다. 인물 관계도는 전작보다 복잡해졌지만, 정재일 감독의 음악은 켜켜이 쌓여 깊어진 감정들을 고스란히 아우른다. 두 번째 시즌이지만 부담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작업하는 곡의 수도 늘어났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개별 에피소드 사이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 첫 시즌부터 계속 이어져왔다. 어떤 작품이든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의 텍스처가 있어야 한다. 상징적인 테마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변주되는 시즌제 드라마라면 더더욱 그렇다. 동시에 각각의 인물이 지닌 고유의 개성을 살리면서 각 에피소드만의 유니크함을 드러내야 한다.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그대에게>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음악이 인상적으로 사용된 장면은 많지만 그중 압권은 5인 6각 경기가 펼쳐진 다섯 번째 에피소드다. 빠른 컷 편집과 함께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환희에 찬 인물들을 뒤덮는다. 평소 피아노로 곡 작업을 하는 정재일 감독이지만 빠른 속도감과 도발적인 사운드를 위해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다. 황동혁 감독이 처음 <그대에게>를 선곡했을 때 스태프 대부분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결과물을 보고 스튜디오에 있던 모두가 폭소하며 “좋은 연출가는 역시 선곡도 잘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그대에게>를 해외 시청자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재일 감독은 “누가 들어도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곡이고, 또 누가 들어도 응원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분명히 가닿을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와 음악의 상승작용

폭포같이 음악을 쏟아붓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단 한곡의 도움도 없이 막을 내리는 영화도 있다. 정재일 감독은 적재적소에 간결하게 쓰인 음악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고 말하며, 알렉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예로 들었다. 밴드는 물론 오케스트라와 국악까지,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그가 말하는 영화음악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정재일 감독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을 언급하며 영화와 음악이 만들어내는 상승작용에 주목한다. 타르콥스키의 손을 거친 <마태수난곡>은 이미지와 결합하며 ‘<희생>의 <마태수난곡>’으로 재탄생한다. 영화와 음악이 만나 새롭게 형성되는 제3의 감정과 정취야말로 영화음악이 가진 강점이다. /김현승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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