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문제적 감독 4인의 차기작 맛보기 [7] - 이재용 ②
2002-07-12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이혜정
이재용 감독 인터뷰

"우아하고 에로틱한 사랑 이야기"

-어떤 영화인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요부와 바람둥이와 정절녀가 벌이는 사랑게임이라고 하면 될까. 기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보다 게임을 벌이는, 사랑에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축이고 덧붙여 그 시대 조선이라는 변방 유교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비애 같은 게 담기면 좋겠다. 또 중요한 건 에로틱하려고 한다. 꼭 벗어서가 아니라 에로틱함은 한복에도 있고, 버선발에도 있고, 목에도 있다. 여러 면에서 우아하고 에로틱했으면 한다. 아주 통속적인 이야기가 있고 에로틱한 코드가 있고. 그 안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넣을 거다.

-원작이 <위험한 관계>라면 현대극으로 꾸밀 수도 있을 텐데, 왜 사극으로 가는가.

=이 영화는 사극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사극 중에 맘에 드는 사극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미술적, 이야기적으로 멋있는 사극을 해보고 싶었다. <정사> 끝내고 두 번째 영화를 고르던 중, 바흐의 바로크 음악 듣다가 우리 사극에 저런 음악이 들어가면 어떨까 싶었다, 보통 사극하면 대금, 가야금이 나오고 방자와 향단 스타일의 유머가 등장하고, 당파싸움이나 여인의 한이 나온다. 꼭 안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가 전에 봤던 스티븐 프리어즈 <위험한 관계>가 떠올랐다. 남자 여자 사랑 배신 음모 퇴폐적 정서 등등, 그런 게 다 담긴 동서고금을 막론한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다듬은 아이템이다.

-각색이 힘들지 않았는가.

=이 영화의 출발점은 고증이다. 제대로 고증해내면 그게 더 현대적 감각에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흔히 말해져온 한국적인 미, 한국적인 정서 같은 걸 잘 아는 세대가 아니다. 막연한 느낌만 있는 세대다. 그런 내가 한국적인 미를 담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내 궁금함이다. 한국적인 게 뭔지, 그동안 주입받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의심해보는 데서 출발하는 거다. 그것도 한국인이라서 하는 게 아니고. 단지 내가 여기서 낳고 자라서다. 그 때문에 열등감도 있고, 그 열등감을 다스리는 방법일 수도 있다. 또 우리 사극 중에 사대부들의 일상을 다룬 게 없는 것 같다. 왕실 얘기 아니면, <뽕>류의 해학극이거나, <춘향전>처럼 양반과 상놈의 만남을 다룬 것들이었다. 조선적인 이야기가 사대부 사회 안에 있을 텐데, 그걸 찾아보려 한다 그래서 SF영화를 찍는 것 같다.

-스타일이 두드러졌던 <정사>나, 캐릭터와 일상사를 중시한 <순애보>와 비교해보면 이번이 꽉 짜인 드라마를 전달하는 첫 영화인 것 같다.

=드라마를 전달하는 데 자신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튼튼한 원작이 있다는 게 듬직하다. 그로 인해 내 이야기를 더 넣을 수도 있고.

-같은 원작의 여러 영화가 있었다. 어떤 게 가장 좋았는가.

=스티븐 프리어즈 것이 제일 좋았다. 원작에 충실하고, 대사의 맛이 살아난다. 무엇보다 배우들 연기가 압권이다. 로제 바댕 것은 재미없어 보다 말았다. 미국쪽 평을 보니까 <위험한 관계>의 글렌 클로즈는 사자처럼 연기했고, <발몽>의 아네트 베닝은 매춘부처럼 했다고 하더라. 미국적 시선인지 몰라도 맞는 말 같다. 이 영화에서 조씨부인은 글렌 클로즈 같을 거다. 예쁜 글렌 클로즈. 글렌 클로즈가 예쁘지는 않지 않은가. 남자도 <위험한 관계>에서 존 말코비치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위해 몇몇 남자 배우를 떠올려봤다. 아마도 그중에서 여자 쓰다듬을 때 손이 예쁜 남자를 고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놉시스

유교사상과 신문화가 충돌하던 18세기 말 영정조 르네상스기의 조선. 조씨부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어깨 너머로 사서삼경을 깨쳤지만, 여자로 태어난 것에 한과 불만을 지니고 있다. 겉으론 사대부 현모양처의 삶을 살면서, 남몰래 남자들을 정복해가는 사랑게임을 즐긴다. 그녀의 사촌동생 조원은 시, 서, 화에 능하지만, 권위적인 주류 가치관을 비웃듯 고위관직을 마다하고 뭇 여인들에 탐닉한다. 어릴 적 첫사랑의 대상이기도 한 사촌누이 조씨부인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긴 채 사랑게임의 은밀한 동업관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조씨부인은 남편의 소실로 들어올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어린 소옥을 범해줄 것을 조원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조원의 마음은 9년간 수절하며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과부 숙부인에게 가 있다. 나름의 신념을 갖고 천주교 모임에도 나가는, 학처럼 고고한 숙부인을 유혹하려는 조원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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