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작선
공모를 통해 선정된 국내 신작 다큐멘터리들의 섹션. 죽은 이의 목소리를 내뿜는 진도의 당골레(무당)에서부터 월드컵의 이면에 숨은 사람들, 장애로 고통받고 분노하는 사람들, 특이한 신혼여행을 한 특이한 신혼부부까지 평범하지 않은, 혹은 평범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한 이들의 가지각색 이야기들.
<영매-산자와 죽은자의 화해>
영매, 흔히 무당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관한 아카데믹하면서도 감성적인 장편다큐멘터리. 영매들의 여러 인터뷰와 실제 굿장면들, 영매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굿장면은 묘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켜,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꼭 굿판 어딘가에 앉아 굿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에 빠지게 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을 이어주고 대화를 시켜 화해를 이끌어내는, ‘좋은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외롭고 힘든 삶을 사는 영매들. 그들의 모습은 때로는 무서움을, 때로는 슬픔을 자아낸다. <행당동 사람들>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냅둬>의 박기복 감독의 신작. 진도의 씻김굿에서부터 포항의 풍어제 굿까지 여러 다양한 굿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평범하기>
연출자 최현정은 대학의 과 동기 박주용과 방 2개짜리 집에서 생활을 함께하며 이 다큐를 찍기 시작한다. 박주용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나, 인생의 어느 부분은 남자로, 어느 부분은 여자로 살아왔다. 이들의 ‘동거’ 생활이 끝난 뒤 현정은 영화작업에 딜레마를 느끼고 9개월간 한국을 떠나 있는다. 돌아왔을 때, 주용은 가슴제거수술을 받고 남자로서의 삶을 선택, 여자친구와 결혼약속도 하고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현정은 주용과 서로에게 상처를 일으키는 싸움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이들간의 미묘한 심리전이 드리워져 있다. 중앙대 영화과 졸업작품. 3년의 촬영과 2년의 후반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폐허, 숨을 쉬다>
청계천 삼일아파트 뒤 재개발지역. 언제 포크레인이 집을 덮칠지 모르는 곳이지만, 85살의 하오종 할머니는 이웃집들이 허물어지고 생긴 폐허에 밭을 일군다. 파도 기르고, 부추도 기르고, 아무리 이웃들이 헛일이라고 말려도 “고구마를 수확할 때까지는 밭을 엎지 않기로 했다”는 인부들의 약속만 믿고 매일 호스로 물을 뿌린다. 그 행위는 너무나 확고하고 자연스럽다. 떠나면서 “이제 겨우 땅에 물이 올랐는데 아깝다”고는 하지만 파를 수확하니 상자 그득하다. “이래서 힘들어도 하지”라고 말하는 할머니. 그를 통해 이 다큐는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환경과 생명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발 만져주는 여자>
이보다 더 이상한 신혼여행이 있을까. 아니, 이보다 더 희한한 사람들이 있을까. 귀농을 선택한 한 여자와 시골에서 천연염색을 하며 사는 한 남자가 공짜로 얻은 시골의 폐가를 신혼집으로 정하고 전통혼례를 올린 뒤 여자의 후배와 함께 제주도에서 신혼여행을 하는 이야기. 티베트 여행을 꿈꾸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여자는 “요 며칠 사이 십년은 늙은 것 같다”라고 후배에게 하소연하고, 남자는 여자가 키스를 잘 안 하려 하자 삐져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흔한 제주도 신혼여행과는 판이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민박집에 짐을 푸는, 무전여행에 가까운 신혼여행.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여행기는 한편의 컬트로드무비 같다.
<그들만의 월드컵>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외쳤던 지난 6월. 그 한달간 한국 땅에서 일어났으나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을 들춰내는 도발적인 작품. 최저임금 인상투쟁을 한 노동자들, 강제추방 위기에 놓인 외국인노동자들, 장애인 이동권 확보운동을 하는 장애인들, 축구공을 만들다 실명한 인도의 소녀 등 많은 이들의 아픔이 모자이크로 구성된다. <반변증법>의 김곡 감독과 <삼천포 가는 길>의 윤성호 감독이 나누는 ‘대담’과 ‘안티 반미시위’를 했던 활빈단 소속 아저씨의 인터뷰, 감독 부모의 한국전 관람풍경 등도 흥미로운 부분. 다만,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다소 작위적으로 편집한 듯해 아쉽다. <뻑큐멘터리>로 주목을 받았던 최진성 감독의 신작.
<선희야 노올자∼>
선희는 홍대 조치원 캠퍼스를 개 한 마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정신장애아. 감독은 아이가 그러는 연유를 알아보고자 아이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선희의 부모가 선희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확인하고는 행정기관, 보호시설 등을 방문하여 선희의 삶을 개선할 방안을 강구한다. 그러나 사회의 허술한 제도만을 확인하게 될 뿐. 여전히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캠퍼스를 떠도는 선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마련해주지 못한다. 그저 작품을 통해 답답한 현실을 하소연할 수밖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배려를 애타게 촉구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