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를 절찬하는 이유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데뷔작이라는 것. 요즘 한국영화의 신인감독들은 너무 물렀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너무 쉽게 타협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세련되고, 매끄럽고, 원숙하고, 장르적 규칙을 적절하게 수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 잘 다듬어진 데뷔작을 보는 일은 나름대로 좋은 일이지만, 희열을 주지는 못한다. 나는 지금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허름한 코아아트홀에서, 전혀 낯선 이름의 홍상수 감독이 만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 나오자, 유난히 바람이 몸을 휘감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세상이 조금 더 회색으로 보였다. <지구를 지켜라!>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나오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느낌은 이상하게 즐거웠다. <지구를 지켜라!>는 잡동사니다. <지구를 지켜라!>는 혼란스럽다. <지구를 지켜라!>는 황당하다. 그게 바로 <지구를 지켜라!>의 매력이고, 위대함이다. 거장의 걸작이라고 절대 말할 수는 없지만, 데뷔작으로서 <지구를 지켜라!>는 최고의 영화다.
<지구를 지켜라!>를 지배하는 것은, 비주류의 B급 감성이다. 우디 앨런을 좋아하고, 스탠리 큐브릭의 를 차용하고 있지만, 장준환의 영화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웅크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B급 정서다. <지구를 지켜라!>는 적당히, 라는 단어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끝까지 모든 것을 몰고 나간다. 논리? 일관성? 세련됨? 은근히 그 모든 것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것은 광기와 혼돈이다. 누구에게도 말해줄 수 없는 마지막 반전을 보고 나면, 혼란스러워진다. 씁쓸하면서도, 멋지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B급영화의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정서라고 부르고 싶다. 미이케 다카시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형사와 중국계 갱의 지독한 전쟁을 그리고 있다. 형사는 갱의 유일한 동생을 죽이고, 갱은 형사의 가족을 모두 죽인다. 그들은 이제 마지막 싸움을 시작한다. 권총에 기관총, 로켓포까지 동원하며 싸우던 그들은 거의 죽음 직전이다. 총상을 입고, 팔이 떨어져나갔다. 노려보던 그들은 으…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기를 모은다. 그리고 손에서, 거대한 광선을 발사한다. 마치 <드래곤 볼>의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아 발사하듯이. 그 광선이 충돌하고, 일본 열도는 거대한 폭발에 휩싸인다. 이럴 수가! 이전까지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너무나도 황당한 결말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그려낸다. 그런데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아니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또 있다. 더 황당한 좀비영화 <와일드 제로>에서는 기타를 메고, 칼을 휘두르며 오토바이를 타던 주인공이 건물 옥상에 올라간다. 거기에는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것 같은 거대한 UFO가 있다. 머리 위를 날아간다. 주인공은 칼을 빼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UFO에 꽂아넣는다. 그러자 그 칼에 UFO가 두동강이 난다. 그 황당함, 너무나도 어이없어서, 너무나도 멋진 그 결말. 그런 게 바로 B급영화의 정신이다. 알렉스 콕스가 <리포맨>에서 보여주듯,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 있는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좋다. 그 무엇 때문에 벌어지는 지독한 혼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리포맨>은 즐겁다. <고무인간의 최후>도 마찬가지다. 결코 하나의 논리나 주의만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혼돈의 세계가, B급영화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고 그것이 바로 힘이다.
<지구를 지켜라!>의 폭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역시 그렇다. <지구를 지켜라!>의 폭력의 강도는 꽤 센 편이다. 촬영하기에 가장 힘든 장면이었다고 말하는 연구소에서의 격투장면도 꽤 잔인하다. 고문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병구의 작업실 표본병에 들어 있는 손과 발, 이상한 장기들도 끔찍하다. 폭력의 희생자인 병구는, 다시 폭력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한다. 납치하고 살인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병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는 혼돈으로 가득 찬, 종횡무진의 영화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 촬영과 미술, 세트 등은 무척 잘 다듬어져 있다. 그것은 장준환의 연출력 때문이지만, 또한 B급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제작비 덕분이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가 주류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영화계는 정말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곳이다. 신인의 ‘괴상한’ 데뷔작에 수십억원의 투자를 감행하는 제작자의 용기와 결단력에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낸다.